• 입력 2023.09.25 15:10

최재형 “종로구·중구 '고도제한' 규제부터 완화해야"

서울백병원 진료 마지막 날인 8월 31일 오후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에서 의료진 등 교직원들이 폐원 결정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1941년 '백인제외과병원'으로 개원한 이후 83년간 진료를 이어온 서울백병원은 이날 오후 5시까지 진료를 마치고 폐원했다. (사진=뉴스1)
서울백병원 진료 마지막 날인 8월 31일 오후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에서 의료진 등 교직원들이 폐원 결정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1941년 '백인제외과병원'으로 개원한 이후 83년간 진료를 이어온 서울백병원은 이날 오후 5시까지 진료를 마치고 폐원했다. (사진=뉴스1)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야구 명문' 장충고 응원단에 여자가 입성하게 됐다. 지난 3월 남녀공학 전환으로 서울 장충동에 있는 장충고등학교에 여학생이 78명이 1학년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1933년 4월 경성원예학교 개교이후 90년 만에 여학생이 처음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선배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학교가 부족했던 시절 고교 야간 과정에 여학생이 다녔던 때도 있었지만 오죽하면 하는 탄식이 절로 쏟아졌다.

장충고는 고교평준화와 공동학군제가 실시됐던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8개 반에 60명씩, 총 1440명 가량이 다녔다. 도심에 있던 고교의 상당수가 신규 개발지역으로 이전하는 흐름에 동참하지 못했다. 결국 재학생이 2020년에 412명, 2022년에는 363명으로 격감하자 여학생 입학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게 됐다.

이처럼 인구 감소는 서울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도심공동화에 따라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는 신입생 감소로,  유서 깊은 병원은 환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백병원은 지난 8월 31일자로 진료를 중단하고 개원 8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중구에 있던 유일한 대학병원으로서 소아청소년과 진료와 중증환자 진료 등에서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서 서비스를 제공해왔지만 경영난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1970년대 중반 명동에 있던 성모병원을 시작으로 을지병원, 중앙대학교 필동병원, 이화여대 동대문병원이 이전을 이유로 폐원한 흐름이 뒤늦게 이어진 것이다.

서울백병원은 1932년 백인제 박사가 우에무라 외과의원을 인수한 이래 대한민국 외과 발전에서 기여해왔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지정병원으로서 위상이 높았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중구의 유일한 감염전담병원으로서 공공의료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하루에 3~40명 가량의 응급환자가 찾았던 서울백병원의 폐업으로 서울 중구에는 종합병원급 응급실이 국립중앙의료원만 남게 됐다. 야간과 휴일에 응급환자들이 갈 곳이 더 부족해졌다.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사진=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페이스북)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사진=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페이스북)

장여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교수 노조지부장은 25일 서울백병원정상화추진위원회가 주관한 토론회에서 “서울 종로, 중구, 용산구 일부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던 인제대 서울백병원의 폐원으로 서울 도심 중앙의 공공의료기관의 공백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장 지부장은 이날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발표한 ‘도심의료공백과 도심 공공의료의 역할‘을 통해 "도심 한복판에서 공간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위치의 장점을 살린 의료환경을 만들어 간다면 '만성 적자로 인한 무조건 폐원만이 정답'이라는 논리를 뒤집는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백병원 재개를 위한 청사진이 주목을 끌었다. 그는 "공간의 한계는 있지만 위치적으로 큰 장점을 가진 서울백병원을 중증 외상 환자를 위한 의료시설 중 복부 위장관과 뇌 손상에 특화된 준중증응급의료시설로 전환하고 지역주민을 위한 최소한의 의료시설로 유지하면 서울 시민 전체로부터 환영받는 공공의료를 실현하는 병원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서울 백병원 폐원으로 인한 의료공백과 서울 도심살리기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스1)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서울 백병원 폐원으로 인한 의료공백과 서울 도심살리기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스1)

김호정 단국대 건축학교 교수는 이날 ‘서울 구도심 재생의 과제와 비전’ 발제에서 “백병원 폐원은 구도심에서 반드시 필요한 또 하나의 필수적 기능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며 “도심의료공백은 도심 기능 약화와 거주성 악화 측면에서 상당힌 큰 문제로 오랜 기간 만들어진 자산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선진국 사례를 소개하면서 인구의 도심 회귀 가능성을 설파했다. 특히 도쿄의 도심 3구는 2000년 이후 연간 4% 인구 증가가 지속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서울백병원 인근 명동 구도심과 인접지역 회복을 위해 외국 관광객에 편중된 상업구조를 지양하고 새로운 지식생산활동에 기반한 산업구조와 도시생태계 조성을 제언했다.

김 교수는 “우선 보행관경을 개선하고 주거 공급으로 거주성을 강화하는 것이 첫 발걸음”이라며 “소규모 필지에 따른 개발제한이란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지구조를 합리적 방식으로 전환하되 새로운 형식의 도심형 복합용도 건축물 유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명동만을 중심상업지역으로, 관광특구로 다루지 말고 인접지역으로 지구단위 구역계를 확장해 넓은 의미에서 명동지역의 미래를 다루자는 발상이 눈길을 끌었다. 

지방은 물론 서울에서도 병상과 담당 의료진 부족에 따른 의료공백으로 아까운 생명을 잃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학교와 병·의원이 없어지면 정주여건 악화로 인구 유출이 더 빨라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게 된다. 도심을 살리는 대책이 나와야할 이유다.

이날 '서울 백병원 폐원으로 인한 의료공백과 서울 도심살리기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주최한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은 “생활기반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물론 거주여건 개선이 이뤄져야만 도심지역 인구 유출을 막고 다시 활성화할 수 있다”며 “고도 제한 등 종로구·중구 지역에 지나치게 부과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서울백병원 폐원은 민간 병원에 맡긴 공공의료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며 “도심공동화 극복을 위한 도시재생과 공공의료서비스 확대를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일(오른쪽 일곱 번째)용인시장이 8월 7일 용인시 처인구 중앙동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 개소식에서 내빈들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용인시)
이상일(오른쪽 일곱 번째)용인시장이 8월 7일 용인시 처인구 중앙동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 개소식에서 내빈들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용인시)

도심이 무너지면 외곽도 붕괴를 피할 수 없다. 역사유산 보호와 함께 해당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추구하는 도시정책이 나와야 한다.

민간 병원은 개설자가 기존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진료기록부만 잘 관리하면서 시·군·구에 폐업 신고를 하면 언제든지 문을 닫을 수 있다.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이 공언한 것처럼 도심 의료기관 존속을 위한 대책을 마련, 실행에 옮겨야 한다. 보건복지부도 민간 의료기관 의존도가 높은 현행 공공의료체계의 안정성과 효율성, 신뢰성을 높일 방안을 강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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