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9.26 08:33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권영택 롯데글로벌로지스 포천대리점 대표

권영택 롯데글로벌로지스 포천대리점 대표는 '국내 1호 택배박사'다. 그는 국내 택배산업의 왜곡된 구조를 바로 잡기 위한 공론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상우 기자)
권영택 롯데글로벌로지스 포천대리점 대표는 '국내 1호 택배법학박사'다. 그는 국내 택배산업의 왜곡된 구조를 바로 잡기 위한 공론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상우 기자)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만약 택배 서비스가 멈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사회적 대혼란이 불 보듯 뻔하고, 정부는 이를 수습하고자 각종 대응책을 쏟아낼 것이다.

이미 택배 서비스는 국내 물류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국내 유통 시장 규모는 602조원대(유로모니터 기준)로 추산되며, 이 중에서 이커머스 거래액만 210조원대(통계청 기준)에 이른다. 어림잡아도 국민 3분의 1 이상이 택배 서비스를 통한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택배 시장은 이러한 위상에 걸맞지 않게 곳곳에 시한폭탄을 떠안고 있다. 권영택 롯데글로벌로지스 포천대리점 대표는 택배 시장이 오랫동안 ‘사각지대’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사양산업으로 전락할 처지라고 진단한다.

◆운송회사가 ‘브로커’에 나서는 이유

권 대표는 ‘국내 1호 택배 법학박사’다. 현장에서 보낸 27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낸 논문(택배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 방안)이 박사학위로 이어졌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기 전까지 택배 시장의 문제점을 애써 외면했다. 시간이 지나면 시장의 문제점이 공론화되면서 누군가 총대를 잡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꿈쩍없는 현실과 직면하면서 ‘누군가가 아닌 내가’라는 결심으로 바뀌게 된다.

권 대표는 국내 택배 산업이 임계점에 다다른 심각한 수준이라고 단언했다.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처리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법 제도가 이러한 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택배 물류센터는 도심에 지을 수가 없습니다. 창고시설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도심에 방치된 주차장만 활용해도 엄청난 변화가 이뤄질 터인데, 법 제도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운송비 증가와 배송 시간 지연, 인력 조달 등 사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물류시설법과 건축법을 손봐야 할 당위성은 차고도 넘쳤지만,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아무도 손대지 않는 실정입니다.”

권 대표 사업장에서 택배 분류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 (사진=김상우 기자)
권 대표 사업장에서 택배 분류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 (사진=김상우 기자)

근린생활시설에 속한 편의점이 택배 서비스를 영위하는 것도 모순된다. 엄밀히 보면 법적 규제를 받아야 하지만, 노점상과 같이 합법도 불법도 아니라는 식의 사회적 용인이 이뤄지고 있다.

택배차량 허가제 역시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화물차를 합법적으로 운영하려면 노란색 ‘배’자 번호판을 받아야 하지만, 당국은 화물차 물량 조절 등을 이유로 번호판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이로 인해 신규 번호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해 물류 총파업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국내 약 45만대 수준의 화물차 중 약 23만대가 번호판을 빌려 운송에 나서는 지입차주로, 일부 운송회사는 영업용 번호판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개인 차주에게 번호판을 달아주는 대가로 적게는 2000만원에서 많게는 3000만원 수준까지 거래대금을 받는다. 여기에 월 30만원 수준의 지입료까지 추가로 받는 실정이다. 결국 운송회사의 ‘브로커’ 역할에 지입차주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택배 노동자들 20~30%가 신용불량자일 만큼,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수천만원을 내고 배자 번호판을 사들이기가 만무해요. 이렇다 보니 일반 차량으로 택배 영업을 하는데, 이게 또 배자 번호판을 받은 개인사업자들에게는 화가 나는 상황입니다. 번호판을 받지 못한 택배 종사자들은 신고가 들어오면 꼼짝없이 벌금을 물어야 하죠. 물량은 늘어나는데 일손은 부족하고, 대리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택배 물품은 바코드로 인식이 이뤄진 후 화물차에 실린다. (사진=김상우 기자)
택배 물품은 이동라인에 따라 바코드 인식이 이뤄진 후 화물차에 실린다. (사진=김상우 기자)

◆일본과 3배 차이…쥐어짜기가 부른 ‘과로사’

현실과 동떨어진 택배요금도 업계의 큰 고충이다. 현재 소형(1~5㎏) 택배요금은 약 2300원 수준이지만, 우리와 생활 수준이 비슷한 일본은 8000원대다. 일본은 배송 인력의 절대적 부족과 같은 여러 환경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금의 단가를 형성했다.

권 대표는 국내 택배 시장도 일본과 같은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택배 단가의 왜곡된 구조를 계속 방치한다면, 시장 와해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란 우려다.

국내 택배시장은 택배서비스사업자, 운영사업자(택배터미널을 통해 물품 분류), 운송사업자(분류 물품을 운송), 대리점사업자 등 6~8단계를 거친다.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불가피한 구조이지만, 인위적인 낮은 단가 책정에 사업자마다 ‘쥐어짜기’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전기요금의 잇따른 인상도 관련 사업자들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관리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택배 물류센터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아닌 일반용 전기요금을 적용받는다. 일부 대형업체는 시장의 이러한 열악함에 조금씩 국내 인프라 투자에 손을 놓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2300원대 택배 단가에서 부가세 약 200원을 빼면 2100원 정도인데요. 여기서 관리비를 제외하면 정말 남는 게 없어요. 단계별 사업자마다 10원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죠. 물류 인프라에 투자를 거듭한 사업자들은 계속 손해를 보는 상황입니다. 도서산간 지역이 택배에 취약한 이유도 지속적인 인프라 투자가 어렵기 때문이에요. 당국도 적정수준의 단가 인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물가 인상률 때문에 난색을 보고 있습니다.”

특히 권 대표는 최근 몇 년 동안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택배 운송 종사자들의 과로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적정 단가 인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앞서 정부는 2020년부터 주요 택배업체들과 과로사 방지를 위한 ‘택배 없는 날’을 체결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많이 바라지도 않습니다. 단가가 3500원 정도만 오르면 택배 노동자들의 업무시간을 8~9시간으로 묶을 수 있어요. 택배 하나를 2분 30초 안에 배송해야 수익을 내는 비상식적인 구조에서 무슨 수로 과로사를 방지할 수 있겠습니까. 세계에서 택배를 이렇게 빨리 처리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해요. 생존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계속 이어갈 순 없습니다.”

권 대표는 국내 택배 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다면,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사진=김상우 기자)
권 대표는 국내 택배 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다면,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사진=김상우 기자)

◆“정치권, 제스처로 끝나지 말고 개정안 현실화해야”

권 대표는 국내 택배 산업의 불합리하고 열악한 실정을 기자에게 계속 꺼내놓았다. 최근 정부가 택배업계의 고질적 인력 부족을 해결하겠다며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확대에 나섰지만, 이는 현장의 인력 수급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땜질식 처방이라는 판단이다. 여기에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 문제, 학계의 관심 미흡으로 인한 관련 연구 부재 등 산업 전반을 둘러싼 문제가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

“1970년대만 해도 섬유산업에서 나일론의 위세가 대단했잖아요. 지금은 어떻게 됐습니까. 다른 첨단 소재가 나일론을 대체해 산업 자체를 진일보시켰죠. 택배도 마찬가지라 봐요. 과거에는 산업의 일부분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시장에 없어선 안 될 물류 혈맥이 됐습니다. 시장의 요구에 부응한 물류 선진화와 서비스 고급화의 요구가 거셉니다. 다양한 산업과 연계해 막대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택배 산업을 더는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권 대표는 세부 해결책으로 현행 ‘생활물류서비스법’의 문제점을 개선한 개정안 마련과 함께 ‘택배서비스 산업육성 및 종사자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제시했다. 생활물류서비스법에서는 ▲택배 산업의 명확화 ▲생활물류서비스사업 종사자의 자격인정기준 완화 ▲영업점의 특성에 따른 자격기준 구분 ▲생활물류시설의 설치 및 운영기준 개선 ▲택배서비스 제공 과정에서의 개인정보 누출‧방지 ▲택배 산업 활성화를 위한 금융 지원 등을 제시했다.

또한 택배 서비스가 일반적인 사용자와 근로자의 고용관계가 아닌, 사업자와 별도의 위탁계약 형태를 취하는 특수고용형태를 가지면서 다양한 법률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갈등 상황을 중재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국토교통부 산하의 ‘택배분쟁조정위원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마디로 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구체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 택배 과로사 문제가 공론화될 때 저는 가슴이 메어 말이 안 나왔습니다. 비극적 사건이었지만 언론이 이제야 택배 산업을 공론화시키는구나 싶었죠. 제 박사논문도 비슷해요. 생소한 주제라 그런지, 학계에서 큰 관심을 보이더군요. 제 바람은 단순합니다. 언론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부와 국회 등 산업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이들이 문제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장기적 방안에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 내년 4월이 총선이잖아요. 정치권이 총선을 앞두고 관련 공약을 제시할 겁니다. 이번에는 정말 제스처로 끝나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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