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0.04 18:35
이웅혁(가운데)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가 4일 국회 토론회에 참석, 발제자의 주제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웅혁(가운데)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가 4일 국회 토론회에 참석, 발제자의 주제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현재 시민들은 국가가 사전에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 무차별 범죄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을 무엇보다 원한다. 고립되어 있거나 범행경력이 있거나  또는 망상적 사고가 있는 젊은 층을 찾아내 이들의 일정한 성취 실패로 인한 불쾌감정의 축적을 제거하고 공격적 태도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이 교수는 국민의힘 정책위원회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주최로 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이상동기 범죄 대응을 위한 긴급토론회’에 참석, 이같이 강조했다. 이상동기 범죄는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는 특성을 지닌다. 동기가 없거나 뚜렷하지 않다. 피해자나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시민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범죄 목적이 명백한 성폭력이나 절도, 테러 등은 이상동기 범죄에 들어가지 않는다. 무차별범죄 또는 증오범죄라고 부르기도 한다.

분당 서현역 AK플라자에 칼부림으로 인한 부상자들이 쓰러져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분당 서현역 AK플라자에 칼부림으로 인한 부상자들이 쓰러져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7월 21일 신림역 4번 출구 근처에서 33세 조선이 저지른 칼부림으로 2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8월 3일 22세 최원종은 서현역 AK플라자 분당점 출입구 앞도로에서 모닝 승용차로 인도를 돌진, 행인 5명을 친뒤 백화점으로 들어가 칼로 9명을 찔렀다. 차량 충격으로 뇌사 상태에 빠졌던 60대와 20대 여성 두 명은 끝내 숨졌다.

불특정 시민들을 상대로 한 범죄가 연이어 발생한뒤 호신용품은 한때 인터넷 쇼핑몰 검색 순위 1위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양호하다는 한국의 치안 신화가 붕괴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8월 초순부터 중순까지 모방범죄를 예고하는 글이 온라인에 난무했다. 경찰의 특별치안활동이 강화되고 취약지역에서 주민과의 합동순찰이 이뤄지면서 최근 들어 이상동기 범죄는 일단 수그러든 상태다.

이상동기 범죄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2년 여의도에서 30세 남성이 전 직장동료를 칼부림한뒤 지나가는 행인을 공격했다. 2016년에는 34세 남성이 노래방 화장실에서 여성을 죽였다. 당시 범인은 조현병 환자로 여성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문제는 '묻지마 살인' 빈발을 피상적으로 다루거나 싸이코패스 점수 매기기식 관심이 잠시 제기되었을 뿐 사회안전 체제 확립을 위한 원인 분석과 데이터 기반의 예방대책은 끝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취업난과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현실에서 국회와 범 정부 차원의 구체적 해결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향후 이상동기 범죄는 다시 늘어날 우려가 높다. 

윤정숙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범죄분석·조사연구실장이 4일  ‘이상동기 범죄 특성 및 대응방안’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윤정숙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범죄분석·조사연구실장이 4일  ‘이상동기 범죄 특성 및 대응방안’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윤정숙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범죄분석·조사연구실장은 이날 ‘이상동기 범죄 특성 및 대응방안’ 발제를 통해 2014년 내놓은 묻지마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결과를 재인용, 전체 48명 중 20대가 9명, 30대는 15명, 40대는 16명이라고 전했다. 2021년 대검찰청 범죄분석에선 폭행과 상해죄를 저지른 범죄자 연령에서 50대가 21.6%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20.9%를 뒤를 이었지만 이상동기 범죄자의 경우 20대와 30대를 합산한 비율이 50.1%로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것이다. 월 평균소득이 전무한 사람이 35명이었고 100만원 미만이 6명으로 전체의 90.4%에 달했다. 범행동기로는 ▲환각·망상 18명 ▲재미·자기과시·이유없음 17명 ▲분풀이·스트레스 해소 16명 순이었다. 범죄유형으로 만성분노형이 45.8%을 차지했고 정신장애형은 37.5%, 현실불만형은 16.7%를 기록했다.

윤 실장은 만성분노형에다가 전과경력자로서 재범위험성이 높은 범죄자에 대한 사회내 관리체계가 없다고 지적했다. 영국이 2000년 형사사법 및 법원업무법 내에 다기관협력 공공보호방안(Multi-Agency Public Protection Arrangements:MAPPA)를 마련, 시행하는 것처럼 교정기관과 보호관찰소, 경찰 간에 각종 정보의 공유와 관리를 통해 출소 이후에도 단절없는 연속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만 정신보건법은 경찰과 소방은 자타해 우려가 있는 사람을 발견 즉시 근처 의료기관에 호송해 치료를 받게 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대만의 강제적 규정에 비해 한국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으로 자타해 우려가 있는 경우 지자체장에게 진단과 보호를 신청할 수 있다는 임의적 규정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행정입원은 인권침해의 위험성이 우려돼 소극적으로 실시되고 있고 보호의무자 입원도 본인 동의가 없으면 서비스가 개시되지 않는다”며 “비자발적 강제입원에 대한 제도적 공백을 메꾸기 위해 ‘사법입원’ 제도가 논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대출(왼쪽) 국민의힘 의원이 4일 국회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박대출(왼쪽) 국민의힘 의원이 4일 국회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상동기 범죄를 막으려면 이와 관련된 기초적 국가 통계부터 구축해야 한다. 범죄자 유형을 구분하고 그에 알맞은 재활 및 교화, 갱생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웅혁 교수는 “경찰은 112 신고에만 의존하는 수동적 활동에서 탈피해 무차별범죄 예방을 위해 지방정부와 합동으로 고립자 해소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센터와 협업하는 등 선제적이고 창의적인 ‘문제해결 지향적 경찰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흉악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도 뒤따라야 한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무기형을 선고받아도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19명이 가석방되었다. 1997년 12월 사형 집행 이후 사형자가 없어진 현실에서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 종신형부터 도입할 때다. 흉악범죄자의 영구적 격리를 위해 필요한 조치다. 아울러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적 범죄 예고 행위를 공중협박죄로 처벌하고 공공장소 흉기소지죄를 신설하는 방안을 놓고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안을 서둘러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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