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0.19 15:39
18일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의실에서 ‘해외 동향에 비추어본 한국의 행정데이터 연계 활용의 현황과 개선점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18일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의실에서 ‘해외 동향에 비추어본 한국의 행정데이터 연계 활용의 현황과 개선점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한국이 복지사회를 지향하면서 사회보장제도 수도 몇백 종이 넘었다. 각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노인돌봄, 임대주택, 모성보호육아지원 등 각종 사회서비스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관련 제도를 도입할 때 세운 목표를 과연 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갈수록 커지는 실정이다.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의료급여, 저소득층 학비 지원 등으로 구성되는 소득보장 제도에서도 효과 검증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기적인 점검과 확인을 통해 성과를 내는 방향으로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지 않는다면 관련 예산은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신광영 한국행정데이터연구자네트워크 대표는 18일 “근대 국가는 보다 정확한 사회현실에 대한 진단과 이해 그리고 그에 기초해 정책을 추진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며 “20세기 중반 이후 컴퓨터 혁명을 통해 대규모 데이터의 수집과 축적, 분석이 용이해지면서 과학적 분석뿐만 아니라 정책의 실효성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각종 데이터 활용이 현대 국가의 역량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고 밝혔다. 

신 대표는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의실에서 열린 ‘해외 동향에 비추어본 한국의 행정데이터 연계 활용의 현황과 개선점 토론회’ 인사말을 통해 “행정적인 목적으로 수집된 자료들이 표준화되고 통합돼 행정뿐만 아니라 학술연구의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정책 효과 분석의 과학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북유럽 국가에서는 연계된 행정데이터가 센서스 조사를 대체했다”고 소개했다.

한국은 전자정부 운영과 공공데이터 개방에서 세계 1~3위권 국가이지만 연구를 위한 마이크로 행정데이터의 구축, 연계, 활용에선 뒤처진 처지다. 지난 2020년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인정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 등 ‘데이터 3법’이 국회에서 의결되면서 통계작성과 과학적 연구 등을 위해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도 가명정보 결합이 허용되었지만 개별 부처와 기관 단위에서만 관리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관 이기주의와 기관별 칸막이로 인해 데이터 공유와 활용 과정에서 정부 부처 간의 적극적 참여는 기대하기 힘들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물론 공공기관 간의 데이터 협력과 분석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공과 민간 간의 협력은 말할 것도 낙제점에 가깝다. 행정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기득권으로 인식한 채 유지하려는 관료주의가 여전한데다 데이터 연계 분석에 따른 평가결과에 대한 우려도 겹친 탓으로 분석된다.

유승희 포용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이날 “일찍이 덴마크와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고유의 개인식별 주민번호를 암호화해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여러 기관의 행정데이터를 연계해 통계와 정책연구에 활용해왔다”며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유럽연합 국가들도 마이크로 행정데이터의 연계 활용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출처=이현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회보장 행정데이터의 활용과 사회보장정책의 근거 강화를 위한 과제' 발제문
(출처=이현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회보장 행정데이터의 활용과 사회보장정책의 근거 강화를 위한 과제' 발제문

설문조사는 우선 표본 구축과정에서 오류 편향을 갖기 마련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비해 효율은 낮다. 응답 거부와 응답 착오, 개인정보 인식 강화에 따른 민감 항목 응답 기피 등으로 인해 정확성이 떨어진다. 장기간 조사대상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이에 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갖고 있는 인구와 가구, 소득, 재산, 사회보장 수급 정보 등을 가명처리한뒤 개인 단위로 결합한 통합행정자료를 뜻하는 '사회보장행정데이터'는 신뢰도가 높다. 국세청이 보유한 각종 소득자료도 정확성에서 으뜸이다. 인공지능시대를 맞아 귀중한 자산이다.

유승희(왼쪽) 포용사회연구소 이사장과 양정숙 국회의원이 18일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유승희(왼쪽) 포용사회연구소 이사장과 양정숙 국회의원이 18일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한국은 올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전년 대비 1단계 하락한 28위를 기록했다”며 “AI 시대를 맞아 세계를 선도하고 일류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무엇보다 행정데이터 활용과 연계, 결합과 생성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바른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모든 행정기관이 최신 통계에 따라 정확한 자료를 만들어야만 향후 적극적인 활용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각 기관별로 원활하게 행정데이터를 함께 쓸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할 것이다.  

유종성(왼쪽) 가천대 초빙교수와 이현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18일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유종성(왼쪽) 가천대 초빙교수와 이현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18일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미국은 2018년 수립된 증거기반 정책수립 기초법(일명 증거법)에 따라 기관 간 데이터 공유에 대한 합의를 촉진하고 장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유종성 가천대 초빙교수 겸 불평등과사회정책연구소장은 이날 ‘해외 동향에 비추어 본 한국의 행정데이터 연계활용의 현황과 개선방안’ 발제를 통해 "미국은 공공데이터 포털인 Data.gov 외에 증거기반정책법에 따라 2022년 행정데이터를 비롯한 연구용 마이크로데이터의 표준신청절차(Standard Application Process; SAP) 통합 포털인 ResearchDataGov.org를 개설했다"고 전했다. 그는 “SAP 포털은 국립과학재단과의 계약 아래 미시간대학교 ICPSR에 의해 구축됐고 인구조사국 등 16개 연방통계기관들이 보유한 데이터 검색 및 신청, 연구자 제공 데이터도 연계가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행정데이터 연계·활용 개선방안과 관련, 유 소장은 “부처간 데이터 칸막이가 해소되고 연구용 마이크로 행정데이터가 적극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세기본법의 비밀유지 및 목적외 사용금지 조항 개정 ▲연금통계DB에 국세청 소득 정보 제공 ▲결합키 생성에 주민등록번호 사용금지 조항 폐지 ▲북유럽처럼 모든 개인에 대해 개인ID번호를 익명화한 anPIN 부여 ▲금융, 기타, 연금, 양도, 퇴직소득 등 인별합산 공개 ▲기초지자체 단위 및 연령(1세)별 자료 필요 ▲통계청의 적극적 역할 ▲연구기간 종료후 자료 파기 지양 등을 주문했다.

이 같은 제안에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찬성 의견을 냈다. 서 의원은 “개인정보보호와 국세기본법의 기밀유지 및 목적외 금지 조항 등의 이유로 부처간 데이터 공유에 어려움이 있다며 ”개인정보를 어느 정도 선까지 공공정보로 볼 수 있는지 등의 논의를 거쳐 실정에 적합한 개선이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정부는 부처별로 도입을 희망하는 정책의 타당성은 물론 실행안까지 국책연구기관 등으로부터 받은 뒤 담당 공무원들의 관행과 직관, 경험을 통해 최종 방안을 마련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이런 행정이 반복되는 것은 곤란하다. 미국이나 북유럽 국가처럼 정책근거를 강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국민을 대표로 추출한 표본을 가명정보처리한뒤 자료 추출과 결합, 정제, 활용을 통해 정책 집행으로 인한 변화를 수치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 증거를 토대로 정책을 결정한다는 자세가 확립된다면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예산 지출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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