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1.08 14:11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The Sphere' 모습. (사진제공=기획재정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The Sphere' 모습. (사진제공=기획재정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 콘서트와 스포츠 경기 등 다양한 이벤트를 제작, 주최하는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The Sphere(전 MSG 스피어)는 공 모양(球) 형태의 건물 전체를 LED스크린으로 덮은 공연장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최초로 건립, 지난해 9월부터 운영 중이다. 외벽 화면을 농구공처럼 띄워 화제를 모았다. 더스피어는 외벽 스크린 등 최첨단 기술을 망라한 K-POP 전용 공연장을 하남시 그린벨트에 짓기 위해 지난 9월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관련 행정절차를 밟는데에만 42개월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스피어는 2025년 중 착공을 희망하고 있다. 12월 예정된 합의각서 체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2조원의 투자가 날아갈 판이다.

#2. 전남개발공사와 한국남부발전, 한국전력기술 등은 전남 신안 1단계 해상풍력발전사업 송전설비 구축 사업을 2022년부터 진행 중이다. 2028년 완공까지 1조원이 투자된다. 이와 직결된 신안 1단계 해상풍력 발전사업 투자규모는 18조원에 이른다. 2030년 해상풍력단지 가동에 맞춰 내륙으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신안 갯벌 습지보호지역을 가로지르는 송변전설비를 세울 계획이다. 신안에서 신장성까지 345kV의 공동접속설비 87㎞ 중 습지는 3.8㎞ 구간이다. 문제는 습지보전법에 따라 습지보호지역에는 해저송전선로 등만이 설치가 가능하고 공사기간이 짧고 비용도 적게 들어가는 횡단 철탑은 세울 수 없다는 점이다. 

추경호(가운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기재부)
추경호(가운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기재부)

정부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를 갖고 기업이 계획한 투자 프로젝트들의 신속한 가동을 돕기 위해 애로 유형별로 맞춤형 지원방안을 마련,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9월 상품수지는 74억2000만달러 흑자를 기록, 2021년 9월 이래 2년 만에 최대폭 흑자를 기록하는 등 최근 수출이 호전되고 있지만 고금리가 장기화되는데다 대외 불확실성도 커지면서 설비투자 부진은 이어지고 있다. 건설공사비마저 급등하면서 지난 3분기 건설수주는 작년 3분기보다 48.4% 줄었다. 세계 교역도 살아나지 않는 등 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이 산적한 상태다. 조속한 경기 반등을 유도하고 성장잠재력을 키우려면 투자 활성화가 뒤따라야 한다. 늦어지고 있거나 보류된 투자부터 조속히 재개되고  이미 계획된 투자는 당초 일정대로 집행되는 것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과도한 규제와 투자 여건 애로를 개선하고 행정절차 소요기간을 패스트 트랙(Fast-Track)으로 줄여주며 발주처와 사업자 간 사업분쟁은 제3자를 통해 조정·중재하기로 했다. 정부가 경제단체, 협회, 자자체 등으로부터 제기된 건의를 바탕으로 파급효과가 크고 시급한 18건에 대해 애로해소 방안을 마련한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하남 K-POP 전용 공연장을 착공하려면 지방공기업평가원의 신규 투자사업 타당성 평가(10개월), 국토교통부의 개발제한구역 해제(12개월), 경기도의 도시개발구역 지정(10개월), 경기도의 실시계획 승인(10개월)을 단계별로 모두 통과해야 한다. 정부는 대규모 외국인 투자사업이란 특성을 감안, 관계기간 협의체를 구성하고 각 단계별 기간을 줄여주며 관련 중복 절차 동시 추진을 통해 4개 단계를 각각 4개월, 8개월, 3개월, 6개월로 단축하기로 했다. 총 21개월에 행정절차를 마쳐 더스피어가 원하는 시기인 2025년 착공, 2029년 완공이 이뤄질도록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기업의 투자 프로젝트 가동 지원 추진 방향. (표제공=기재부)
기업의 투자 프로젝트 가동 지원 추진 방향. (표제공=기재부)

세계 주요국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주면서 해외 유망기업이나 공장을 유치하는 판에 선순위 검토와 신속한 심의 등을 통해 인·허가 기간을 줄여 외국인 투자를 이끌어낸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정부가 행정절차 단축이란 성의를 보인 만큼 더스피어는 신속히 투자 결정에 나서야할 것이다. 이를 통해 최첨단 기술력을 뽐내는 글로벌 랜드마크 공연장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하남에 세워지면 해외 관람객 입국 등에 따른 막대한 부수효과가 기대된다.

습지보호구역이라고 횡단 철탑을 세워서는 무조건 안 된다는 습지보존법은 과도한 행정규제의 전형이다. 공기가 늘어나고 비용도 비싼 해저송전선로만을 고집한다면 해상풍력발전단지 가동 시점에 맞춰 생산된 전력이 내륙으로 원활히 공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 감안, 정부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이 일정 기준 이내에 있는 횡단철탑은 연안 습지보호지역에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내년 관련 연구용역과 유사사례를 토대로 습지보존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생산전력을 적기에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다.

지난 3월 9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공장에서 열린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에쓰오일)
지난 3월 9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공장에서 열린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에쓰오일)

단일 사업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외국인 투자로 평가받는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 추진에 걸림돌이었던 주차장과 야적장 확보가 해결되는 것도 눈여겨볼만한 결정이다. 2022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내 투자를 계기로 에쓰오일은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최첨단 석유화학시설 건설을 추진 중이다. 2024년말 본격적으로 플랜트를 구축하려면 기자재를 쌓아두기 위한 야적장과 하루 평균 1만100여명의 근로자가 이용할 주차장이 필요하다. 인근에 미활용 부지가 있지만 실사용 이후 임대를 허용하는 산업집적활성화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미착공 상태에선 빌릴 수 없다. 산업용지는 투기 방지 차원에서 건축 및 시설물을 갖춰 공장 등록을 마쳐야 임대가 가능하다는 법규가 발목을 잡아온 것이다.

정부는 연내 부지확보 애로 해소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우선 산단 내부에서 즉시 임대 가능한 여유부지를 탐색한뒤 빌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끝내 대체부지를 찾지못한다면 내년 상반기 중 산업집적법 개정에 나서 인근 미활용 부지를 쓸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2026년 준공까지 9조3000억원 투자효과를 누리고 연간 최대 320만톤의 석유화학제품을 만들어낼 시설 구축에 투입되는 인력을 고려해 법률 개정에 나서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산업 특성을 세부적으로 고려하지 못하거나 생산공정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못한 일률적인 규제는 법령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특례규정도 기존 상품이나 시설 위주로 일부 마련되었을 뿐 신규 서비스나 상품은 배제되기 일쑤다. 경미한 개발계획 변경도 관련 부처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면서 관련 절차가 지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규제가 표면으로 떠오르면 관련 행정기관들이 힘을 합쳐 투자가 진행되는 방향으로 개선하거나 혁파하는 것이 옳다.

지방자치단체나 공기업,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각종 건설투자사업도 예상하지 못한 돌발변수 등으로 지연되는 경우가 많지만 임의적으로 사업계획을 변경하면 나중에 감사를 받거나 배임 혐의로 기소될 수 있어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팽배한 실정이다. 지난 9월 출범한 '민관합동 건설투자 사업조정위원회'가 조정과 중재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성과를 거둔다면 지지부진한 투자가 제 궤도에 올라설 것이다. 필요한 경우 감사원의 사전컨설팅을 받도록 연결, 감사 부담을 없애주고 위원회 소속 전문가들이 합리적이고 실효적인 조정대안을 내놓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투자활성화는 발등의 불이다. 민관 모두가 총력전에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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