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차진형 기자
  • 입력 2023.11.23 06:10

최근 5년간 금융위에 제기된 소송건수만 387건…행정제재 불복도 급증
말로만 책임경영…툭하면 소송 남발에 사회적 비용증가·고객 피해 초래

대통령의 은행권 질타가 나온 이후 금융권이 좌불안석이다. 이자장사로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 기여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무엇보다 뼈아프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횡재세와 적정이윤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감독당국 역시 은행권 전체 이익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를 합친 것보다 크다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정치권, 금융당국까지 금융권을 향해 작심비판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금융권에 대한 지적이 합당한지를 되짚어 본다. <편집자주> 

금융감독원 표지석. (사진=이한익 기자)
금융감독원 표지석. (사진=이한익 기자)

[뉴스웍스=차진형 기자] 금융당국의 위세가 예전만 못하다. 금융회사의 불건전 경영, 내부통제 미흡 등을 이유로 각종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해당 회사가 이에 불복해 버티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특히 소송전으로 이어질 경우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수년이 걸려 감독당국의 신뢰 저하는 물론, 고객 피해까지 확산되는 등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금융위원회의 업권별, 유형별 피소 현황을 살펴보면 최근 5년 동안 금융위에 제기된 소송 건수는 총 387건에 달했다.

가장 많은 유형은 가산금·과태료 부과처분취소로 94건에 달했다. 이어 기관·임직원 제재 유형도 76건으로 높아 금융당국의 제재에 불복하는 사례가 많았다.

소송 비용도 늘고 있다. 최근 6년 동안 금융위가 피소 건으로 집행한 예산은 32억7600만원이다. 특히 올해 8월까지 집행된 소송 비용은 7억8600만원으로 이미 지난해 비용을 넘어섰다.

판결이 나온 151건 중 금융위가 승소한 건수는 97건이다. 10건 중 6건은 금융당국의 제재가 타당하다고 법원이 손을 들어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는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들어 소송전에 뛰어드는 분위기다. 40% 승률에 사실상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MG손해보험 대주주인 JC파트너스가 금융위를 상대로 제기한 '부실금융기관 지정 취소 소송'을 꼽을 수 있다.

당시 JC파트너스는 법무법인 세종을 선임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본안 심사와 함께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에선 JC파트너스가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법원 판결이 뒤집혀 금융위가 우위를 점했다. 이에 MG손보는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다.

JC파트너스는 지난 9월 재항고장을 접수해 3심이 결과가 남아있다. 이에 따라 MG손해보험의 새주인 찾기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법의 빈틈을 노린 행정소송도 비일비재하다. 금감원이 지난 2019년 DLF 상품에서 손실이 발생하자 우리은행장이었던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에게 중징계를 내린 사건이 대표적이다. 손 전 회장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진행한 결과 최종 승소했다.

승소 배경은 현 금융지주 지배구조법상 CEO를 징계할 사유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법원 역시 불완전판매 행위는 인정되지만 이에 대한 제재가 최고경영자까지 이뤄지는 건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사례가 빈발하자 금융당국과 정치권은 뒤늦게 법 개정에 나서고 있다. 국회 정무위는 지난 22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임원 및 대표이사에 대해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의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하면 행정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은행권에서 대규모 횡령 사고가 발생해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경영자가 없어 법으로써 강제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은행뿐만 아니라 다른 금융권에서도 내부통제 미흡으로 사건, 사고가 늘고 있다"며 "과거에는 최고경영자가 도의적 책임을 지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따지려는 CEO가 많아져 책임경영이란 말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금융 최고경영자에 대한 행정제재를 강화하는 법안 개정에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지금처럼 금융당국이 '종이 호랑이' 형국이라면 금융권의 잘못된 관행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큰 권력 기관인지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금융당국이 제재를 가하면 대드는 상황이 지속되면 감독당국의 신뢰 저하는 물론 고객의 피해도 눈덩이 처럼까지 커질 것"이라는 금융당국 퇴직임원의 지적이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뭘까. 금융당국의 말이 '령(令)'이 서지 않으면 제대로된 금융시스템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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