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1.23 00:20
황제펭귄 새끼가 어미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영국남극연구소)
황제펭귄 새끼가 어미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영국남극연구소)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지구에 있는 담수의 8할은 얼음이라고 한다. 얼음은 지구 표면의 1할에서 2할을 차지하는 물을 저장한다.  

얼음은 고체와 액체의 혼합물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공기와 맞닿은 표면과 얼음 내부에는 얼지 않는 물층을 말하는 준액체층이 있다. 이런 특성으로 수용액이 얼게 될 때 용액 중에 있던 유기물이나 무기물 입자들이 얼음 결정 주위에 존재하는 동결농축효과를 일으킨다. 

얼음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남극과 북극이다. 남극해로 둘러싸인 남극대륙은 중국과 인도를 합친 크기에 달한다. 평균 2400m 두께의 빙상으로 이뤄져 있다. 남극 성층권 온도는 영하 80도에 이른다. 유라시아와 북미대륙으로 둘러싸인 북극해는 지중해의 4배 면적이다. 2~3m 두께의 해빙이 떠있다.

그간 얼음은 화학반응에 관여하지 않거나 얼음 속에선 화학반응이 천천히 일어날 것으로 여겨왔지만 아질산염이 질산염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10만배 빨라진다는 연구논문이 1992년 네이처에 게재됐다. 얼음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은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 동결과정에서 오염물질의 독성이 없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얼음은 그만큼 신비롭고 유용하다.

박찬대 (왼쪽 여덟 번째)민주당 의원 등 주요 참석자들이  22일 극지연구 정책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박찬대 의원실) 
박찬대 (왼쪽 여덟 번째)민주당 의원 등 주요 참석자들이  22일 극지연구 정책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박찬대 의원실) 

내년으로 설립 20주년을 맞는 극지연구소의 얼음과학연구팀은 얼음 미세구조의 특성연구를 통해 2025년까지 저온 정화기술과 환경·에너지 신소재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김기태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2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미래를 만드는 남극·북극의 극지 연구, 성과와 전망을 말하다' 토론회에 참석해 “얼음의 특성을 이용해 텅스텐 나노디스크 합성, 얼음표면에서 다공성 물질 합성, 전도성 신소재 합성 등 응용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극지 해양미생물, 지의류, 박테리아, 효모 등에서 혈액동결보존제, 제2형 당뇨병 치료 초기물질, 저온활성 분해효소, 결빙방지 단백질 물질을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전했다.  

북극 지역의 온실가스 배출은 해빙을 녹여 표면의 빛 반사율을 낮춘다. 햇빛이 토양과 바다에 직접 도달하며 온난화가 가속된다. (그림제공=IBS)
북극 지역의 온실가스 배출은 해빙을 녹여 표면의 빛 반사율을 낮춘다. 햇빛이 토양과 바다에 직접 도달하며 온난화가 가속된다. (그림제공=IBS)

극지는 극한 환경과 문명세계와는 멀리 떨어진 세상의 끝에 있지만 이곳의 변화는 전 지구에 영향을 미친다. 극지는 기후변화를 가장 먼저, 가장 세게 확인할 수 있는 신기한 지역이다.

북극은 얼음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다른 지역보다 온난화 속도가 2~3배 빨리 진행 중이다. 서남극을 덮고 있는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 상승을 부추길 것으로 우려된다. 북극의 해빙이 녹는 과정에서 폴라보텍스가 약화될 경우 북극의 차가운 바람이 한반도까지 내려올 수 있다. 최근 수년간 북반구의 기록적인 한파는 이와 관련성이 높았다.

22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극지연구 정책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박찬대 의원실)
22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극지연구 정책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박찬대 의원실)

세계 주요 강국은 극한 환경 속에서 자라는 극지 생물 속에 숨겨져 있는 가치를 찾아내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극지 생명체로부터 신물질을 발견하고 이를 응용해 새로운 항생제나 치료제를 상용화한다면  관련 기업과 연구소는 물론 해당 국가의 귀중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1986년 남극조약에 가입하면서 극지를 향한 도전에 나섰다. 1988년 세종기지를 기반으로 연구활동에 들어갔고 2002년엔 다산기지를 세웠다. 2013년 북극이사회 옵서버가 되었다. 2018년에는 중앙 북극 공해 안에서 해양생물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달성하기 위해 체결된 CAOFA(Central Arctic Ocean Fisheries Agreement) 당사국이 되었다. 북극지역 국제법 질서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성과였다.

남극의 동서 지형 단면도. 서쪽과 동쪽의 고도 차이가 1000m에 이른다. (그림제공=극지연구소)
남극의 동서 지형 단면도. 서쪽과 동쪽의 고도 차이가 1000m에 이른다. (그림제공=극지연구소)

현재 남극과학기지 2곳과 북극과학기지 1곳,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보유하고 있다. 극지연구소는 2014년 북극 해빙 감소와 동아시아 한파 사이의 관계를 세계 최초로 밝혔다. 최근 남극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이 기후변화로 인해 곰팡이에 감염되어 병든 것도 확인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극지연구를 통해 이상기후 관련 데이터를 축적한다면 자연재해로부터 보다 안전하게 대비할 수 있다”며 "국가 미래먹거리를 책임질 '기회의 땅'인 극지연구의 연속성과 국제협력이 더욱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중기재정계획에 따르면 2024년에 투자될 극지연구예산은 1058억원인데 극지 연구개발  최종 정부안은 348억원 수준으로 대폭 삭감됐다”며 “현재 국회 농해수위와 과방위 예결소위에서 극지 연구개발 사업과 관련 120억원의 예산 증액이 의결된 상태”라고 전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를 보다 정확히 예측하고 대비하려면 극지에서 대기와 육상, 연안 영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을 관찰하고 관련 특성을 규명해 변화의 양상을 이해하고 예상하는 연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극지는 여러 측면에서 '기회의 땅'이다. 극지연구야말로 중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비록 출발은 선도국보다 늦었지만 그간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과학외교에 기여해 국가이익을 확보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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