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1.28 11:48

김병욱 의원 "상속세 최대주주 할증 폐지하자"

김병욱(앞줄 왼쪽 여섯 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7일 '상속·증여 및 부동산 과세 개선방안' 정책토론회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김병욱 의원실)
김병욱(앞줄 왼쪽 여섯 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7일 '상속·증여 및 부동산 과세 개선방안' 정책토론회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김병욱 의원실)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된 이유 중 하나로 과도한 상속세율이 손꼽힌다. 창업주가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줄 경우 상속세율 50%에 최대주주 할증분 20%를 더해 최고 60%가 적용된다. 이러다 보니 상속세 납부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업 가치를 가급적 낮게 유지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안정적인 경영권을 갖고 있다면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될 배당률 제고 등 주주친화적 정책을 굳이 추진할 이유가 별로 없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7일 국회의원회관 2층 소회의실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상속·증여 및 부동산과세 개선방안 정책토론회’에서 “국제협력개발기구 38개 국가 중에서 상속세가 없는 나라는 14개 국가이며 이중 11개 국가는 원래 있던 상속세를 폐지했다”며 “상속세를 유지하고 있는 24개 국가 중에서 20개 국가는  유산세 방식이 아닌 유산취득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산취득세는 전체 유산이 아니라 상속인이 물려받는 유산 취득분에게 매겨지는 세금이다. 전체 상속액을 상속인 수로 나눠 세율을 적용하기에 상속세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한국은 피상속인의 전체 재산에 대해 상속세율을 적용, 상속인들에게 재산 배분과 함께 관련 세금을 내도록 하는 유산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과 법제도가 유사한 독일과 일본은 유산취득세 제도를 운영 중이다.

황 의원은 “우리나라도 유산세 방식과 유산취득세 방식을 비교·검토해보고 무엇이 더 나을지 고민도 해 보고 필요하다면 상속·증여세 폐지라는 과감한 시도도 검토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국민의힘이 상속세 완화 방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민주당에서 상속·증여세 폐지 검토 언급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기존 조세제도가 불합리하고 '100년 중소기업' 탄생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7일 국회 토론회에서 "중소기업부터 상속세의 자본이득세 전환를 적용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김병욱 의원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7일 국회 토론회에서 "중소기업부터 상속세의 자본이득세 전환를 적용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김병욱 의원실)

김병욱 민주당 의원도 이날 “상속세 최대 주주 할증제도 폐지를 통해 기업가 정신이 고양되고 기업 활동이 활성화되면 대한민국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며 “스웨덴도 2005년 상속세를 폐지하고 이를 자본이득세로 전환했다. 우리나라에서 상속세의 자본이득세로의 전환이 한 번에 어렵다면 우선 기업에 적용하거나 중소기업·중견기업 순서로 적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자본이득세는 1년 이상 보유하는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 기본자산을 팔 때 발생하는 이득과 손실 전부를 통틀어 계산, 부과되는 세금이다. 현재 한국은 자산 상속이 이뤄질 때 상속인이 상속세를 내도록 하고 있다. 자본이득세가 도입되면 상속 받은 자산을 유상으로 매각할 때 피상속인과 상속인의 보유기간 자본이득을 합산해 양도소득으로 과세하게 된다.

대체로 부유층은 상속·증여세가 이중과세라고 여기며 폐지 또는 완화를 주장하지만 서민들은 세금 부담 없는 부의 대물림은 사회불평등만 심화시킬 뿐이라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간 변칙적 부의 이전으로 국민적 비난을 샀던 재벌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의 상당수는 이를 시도할 능력조차 되지 않는 형편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여야 모두 '승계 활성화'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문제는 현행 상속증여세제 체제에서 내야할 세금이 너무 많아 중소기업 물려주기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2022년 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업력이 30년을 넘은 장수기업 중에서 60대 이상 최고경영자 비중은 80.9%에 달했다. 70대 이상 중소기업 최고경영자가 2만5000명을 넘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가업승계를 통해 경영활동이 이어지는 현실에서 부모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자녀들이 승계 대신 매각을 선택한다면 장수 중소기업 탄생은 요원하다. 이와 관련,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2023년 “중소기업 가업 승계가 불발돼 폐업이 될 경우 수출이 15조원 줄어들고 약 60만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구재이(왼쪽 세 번째) 한국세무사회 회장과 김병욱(네 번째) 민주당 의원이 27일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김병욱 의원실)
구재이(왼쪽 세 번째) 한국세무사회 회장과 김병욱(네 번째) 민주당 의원이 27일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김병욱 의원실)

구재이 한국세무사회 회장은 이날 ‘지속가능한 상속·증여 및 부동산세제 혁신방안’ 발제를 통해 중소기업에 한정해 가업상속분을 과세액에 불산입하고 양도할 때 이월과세를 시도, 자본이득으로 환수하자는 혁신방안을 제시했다. 가업상속공제방식을 사실상 자본이득세 과세제도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구 회장은 사후관리 요건 단순화도 강조했다. 경영 및 고용유지를 위한 가업상속공제 취지를 살려 독일과 동등하게 근로자 수 요건을 철폐하고 ‘급여기준’만 남기고 자산요건, 업종제한 요건을 일괄폐지하는 등 고용과 경제적 사후관리 요건 외에는 모두 없앨 것을 주장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을 통한 자동화 바람이 거세게 부는 시대를 맞아 상속개시일 직전 2개년 평균 고용인원의 90%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현행 규정은 기업 성장의 발목만 잡게 될 뿐이란 비판을 감안한 개선안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소비성 서비스업 이외에는 업종제한도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중소기업의 계획적인 사전 승계 지원 등을 위해 3대 제도 개선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핵심은 ▲증여세 연부연납기간 5년에서 20년으로 연장 ▲증여세 과세특례 저율과세 구간(10%)을 6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확대 ▲승계 지원세제 활용 후 업종변경 제한을 표준산업분류 '중분류'에서 '대분류'로 완화이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이날 “3대 과제에는 중소기업의 84%가 승계 방식으로 사전증여를 선호하는 현실이 반영됐다”며 “독일과 일본에는 업종변경 제한이나 중소기업의 신규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욕실자재를 생산하는 A사는 현재 플라스틱 자재가 주력이지만 추진 중인 신사업은 절수형양변기이다. 사전(死前) 주된 사업으로 계속 성장할 경우 가업으로 인정되지만 창업자가 죽고 난 뒤 절수형양변기가 사후(死後) 주된 사업으로 성장한다면 가업으로 인정받기가 불확실한 실정이다. 

이처럼 현실과는 거리가 먼 규정으로 인해 2022년 가업상속공제 적용인원은 147건에 공제액 규모는 3429억원(과세미달 포함)에 불과했다. 경제규모를 고려해도 독일이나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소득이나 소비에 대한 세금 부과와는 달리 재산에 대한 조세 제도는 형평성과 합리성이 더욱 요구된다. 수년전 서울 집값이 폭등하면서 집이 아예 없거나 비수도권에 주택이 있는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확대된 바 있다.

세계 역사를 보면 과도한 세금은 왕조의 몰락을 재촉했다. 의회에서 조세의 종목과 세율을 제정한 법률에 따라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조세법률주의는 '대표 없으면 과세가 없다'는 표현으로 근대 들어 유럽에서 확립됐다. 세금야말로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징수되어야 한다.

송치영 중기중앙회 기업승계활성화 위원장은 28일 중기중앙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중소기업의 52.6%가 기업승계를 하지 않을 경우 폐업이나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 업력 30년 이상 기업은 10년 미만 기업에 비해 법인세 납부액이 32배나 많다”며 기업승계지원법의 연내 국회 통과를 강력 요청했다. 

상속세가 전체 세수의 1%에 그치는 현실에서 부의 대물림, 세수 감소라는 부정적 의견에 밀려 세제 개혁을 마냥 미루는 것은 국가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세금은 국민의 평안한 일상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 저소득계층의 삶도 지원하지만 일부 부유층과 특정 기업에 과도하게 물려진다면 조세 저항은 물론 국외 도피를 낳을 수 있다. 마음만 먹고 비용만 치른다면 국경 간 자산 이동은 어렵지 않다. 이런 현실을 감안, 냉정한 이성을 바탕으로 이념이 아닌 실용적으로 접근할 때다.

무엇보다 고용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이 원활하게 가업승계에 나설 수 있도록 3대 개선과제부터 입법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내년 총선이 끝난 뒤 상속·증여세제의 근본적인 개선에 나서야 한다. 조세제도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춰야만 지속적인 성장이 담보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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