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민서 기자
  • 입력 2023.12.17 09:00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김민석 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상근부회장

김민석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상근부회장. (사진=정민서 기자)
김민석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상근부회장. (사진=정민서 기자)

[뉴스웍스=정민서 기자] 미국 '스페이스X'로 대표되는 글로벌 항공우주산업 시장의 규모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과거 국가 주도에서 이제 민간 주도로 항공우주산업의 제2의 활성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 역시 관련 시장을 대상으로 활발한 진출 모색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선 현재 급속도로 성장 중인 AAM(미래항공모빌리티)과 위성통신 분야 시장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특히 항공기 부품을 납품하는 수준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종 산업 시장을 빠르게 점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이 항공우주산업에 순조롭게 진출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국가적 지원은 아직 필수적이다. 그러나 항공우주산업 예산은 절반 이상이 깎인 데다, 당초 정부가 연내 설립을 약속한 우주항공청(우항청) 설립은 한 해가 다 끝난 지금까지 지지부진하다.

뉴스웍스는 김민석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상근부회장을 만나 항공우주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우항청 설립과 항공우주산업 발전을 위해 속히 해결해야 할 정부 및 업계의 과제에 대해 물었다.

-우항청 설치 특별법이 국회 계류된 상황이다.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지난 1903년 12월 라이트 형제가 미국 동부 키티호크 해안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날렸다. 이후 1910년대부터 항공 선진국들이 비행기를 만들었다. 이처럼 100년 이상 구축된 카르텔을 깨기란 매우 어렵기에 항공우주산업은 진입장벽이 높다.

한국은 1980년대 초반부터 항공기 부품을 생산자주문형식(OEM)으로 생산했다. 마치 신발을 인건비가 저렴한 동남아에 하청 생산하듯 한국의 민항기 생산은 그 수준에 머물렀다. 선진국들이 항공기를 만들면서 그들의 기술과 설계·자재·소재 등이 표준이 되고, 이를 토대로 인증 체계가 구축되어 있다. 우리는 항공기 생산에 필수적인 해당 인증이 받기가 너무 어려웠고, 선진국들은 생산비를 줄여야 하므로 한국에 OEM 하청을 줬다.

현재 항공우주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획기적 성장과 함께 (기술적으로)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 굉장한 '기회의 창'을 열어줄 것이다. 그런데 이 기회의 창은 앞으로 2~3년, 길게 보더라도 5년 정도만 열린다고 본다. 이 때문에 우리가 늦게 시작한다면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지고, 결국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기회의 창은 AAM과 새로운 민간 우주산업 '뉴스페이스' 분야다. 신종 산업인 만큼 아직 인증 체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늦으면 이들 분야도 OEM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우항청 설치 특별법의 지지부진한 국회 처리 상황은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부정적 영향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들어달라.

"OEM 방식의 기존 항공산업은 인건비 한계에 도달했다. OEM은 선진국이 인건비가 낮은 후발국에 주는 것이기에 원가 경쟁력은 오로지 인건비뿐이다. 올해 기준 한국 GDP(국내총생산)가 3만5000달러고, 오는 2027년에는 4만달러가 예상된다. 우리에게 OEM 하청을 주는 선진국들과 임금 격차가 거의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하청 품목은 GDP가 낮은 동남아나 인도로 가게 되고, 우리의 생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인건비는 적게 들이면서 생산성은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 사천·진주 등에 있는 항공기 부품 또는 기체 일부를 생산하는 제조업체들의 생산 설비 및 생산 시스템 등의 생태계가 완전히 혁신돼야 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 팩토리 등으로 바뀌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투자가 필요하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AAM 시장 규모는 2040년에 1조6000억달러(약 197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분석된다. 이 큰 기회를 잡으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현재 산업부 소관인데, 우항청이 설립되면 산업부가 갖고 있던 항공산업 기능을 다 우항청으로 넘겨줘야 한다. 산업부는 어차피 항공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정책을 세워 예산을 할당하면 그에 상응하는 예산까지 우항청으로 넘겨줘야 하니, 사업권 손해라고 여기고 이에 대한 투자를 안 하는 것이다. 부처 이기주의가 있는 것이다. 현재 관련 정책과 예산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데다 연구개발(R&D)도 하지 않고, 계속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떨어지게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면 AAM은 어떻게 되겠나. AAM은 앞으로 10~15년이 지나면 본격적인 '주산업'이 된다. 이걸 우리가 일찍 들어가지 못해서 시장 확대도 못하고, 시장 점유도 못 한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또 기존의 민항기 사업처럼 OEM 방식으로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 차원의 투자 기술 개발과 민간 투자가 절실하다.

또 하나는 국가 연구기관 중심(올드스페이스)의 발사체와 위성체의 기본적인 기술개발에는 성공했지만, 민간 주도의 우주산업인 뉴스페이스 조성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로호'와 '누리호' 같은 성과도 있었지만 이는 과기부가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을 통해서 한 올드스페이스다. 말하자면 경제적 개념, 산업적인 마인드 없이 돈을 무한대로 투자하는 것에 가깝다. 태생적으로 경제성이 없는 올드스페이스 위주로 살아왔기 때문에 갑자기 그런 부처들이 경제성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은 뉴스페이스를 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사실상 '공백' 상태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2045년의 우주 산업 규모는 1조1000억달러로 전망된다. 윤 대통령은 2045년까지 우리가 전 세계 우주 산업의 10% 점유율 장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 1100억달러, 우리 돈으로 130조원 시장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우주 예산은 7000억원 정도로 1조원도 안 된다. 사실 앞뒤가 안 맞는 거다. 대통령의 목표하고 실제 투자 현실이 괴리가 너무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항청이 설립돼 투자 등 관련 계획들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우항청이 설립되면 항공우주산업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

"결국은 기존 항공우주산업의 혁신을 위해 투자를 통한 생산 경쟁력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공백 상태인 AAM·뉴스페이스에 대해 강력한 정부의 리더십을 갖고 정책을 세우고, 투자하고, 기술 개발을 통해 민간을 살리고.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게 우항청이다.

한편에선 반도체나 자동차처럼 민간에서 알아서 하면 되는데 항공우주는 왜 정부에서 투자해야 하냐는 의견도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항공우주 분야는 국가 전략 산업이다. 투자하는 기간도 긴 데다 20~30년은 지나야 수익이 돌아오는 '장주기' 산업이기 때문이다.

민간 투자로 수익을 내기에는 한국과 같은 곳은 정말 하세월이다. 이게 가능한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처럼 미국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업화하면 저절로 투자하는 재원이 모이고, 이를 가지고 사업을 개발·추진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그래서 프랑스·영국·독일 등 주요 강대국 모두 정부가 투자를 해준다. 이를 기반으로 민간이 성장해서 전 세계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한국은 사실 선진국들에 비해 항공이나 우주 분야 모두 80년 정도 후발국이다. 늦게 출발했지만, 굉장히 빠른 속도로 따라잡았다. 이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진입하기 위해선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정책을 만들고 투자해야 하고, 이걸 우항청이 이니셔티브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영원히 새로운 항공우주 산업과 관련해 선진국들 발아래서 OEM으로 인건비만 버는 수준으로 또다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김민석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상근부회장. (사진=정민서 기자)

-가장 시급히 대응해야 하는 항공우주산업 분야는 무엇인가.

"AAM과 마찬가지로 지금 항공우주산업에서 가장 발등의 불은 위성통신 분야다. 저궤도 위성통신 기술은 지상과 위성 간 통합망을 구축해 초공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6세대(6G) 통신의 핵심 기술이다. 현재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는 이미 5000개 이상의 소형 위성을 400~600㎞ 상공의 저궤도(LEO)에 띄워 북미·유럽·일본 등에서 위성통신·인터넷·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2027년까지 1만2000개, 장기적으로는 4만2000개 발사를 목표로 잡고 있다. 중국도 2025년까지 1만3000개의 소형 위성을 띄우는 '궈왕'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500㎞ 상공에 떠 있는 저궤도 위성과 달리 한국의 무궁화 위성은 3만5000㎞ 고도가 올라가 있다. 전파의 강도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70분의 1이면 전파가 5000배나 강하다. 이를 이용하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로밍할 필요가 없어지고, 산속이나 지하 깊은 곳에서도 휴대전화가 가능하다.

스페이스X는 내년부터 아이폰에다가 스타링크로 위성 통신하는 기능을 넣는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월 6만원대의 통신료로 사용이 가능한데, 한국에도 이 서비스가 도입된다면 국내 통신사를 이용자 중 수백만명 이상이 옮겨갈 것이라 본다. 이는 기존의 국내 이동통신 사업에 큰 위협이다. 다른 측면으론 스타링크나 궈왕을 이용할 경우 한국 사람의 사생활이나 정보들이 미국과 중국에 들어갈 수도 있고, 이를 악용한 범죄 사례도 생길 수 있다.

우리도 앞으로 1000~2000개의 소형 위성을 저궤도에 쏘아 올리면 한국 등 주변 권역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위성의 수명이 보통 5년이어서 1년에 200~400개를 발사해야 한다. 현재 전남 고흥 발사장만으로는 택도 없다. 민간 발사장과 각종 시험 설비 등 인프라 구축이 절실한 상태다.

한국은 통신위성에 대해 이제 예비타당성 검토에 들어갔다. 비예타로 해서 사업 타당성 평가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이제 여러 선진국의 통신위성이 몇만개씩 올라가고, 우주가 위성으로 빼곡하게 찬다. 지금은 국제적인 발사 규제가 없지만 향후 규제가 생기면서 '사다리 걷어차기' 현상이 나올 것이다. 이렇게 되기 전 한국도 빨리 만들어서 쏘아 올리고, 싸게 올릴 수 있도록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과거 항공우주산업 발전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러시아와 최근 외교적 관계가 좋지 않다. 

"탈냉전으로 소련이 해체된 이후, 우리가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도와주면서 기술을 많이 가져온 게 사실이다. 특히 발사체 관련한 기술을 많이 받았다. 사실 누리호 등의 밑바탕에는 러시아의 로켓 기술이 많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지금 스페이스X의 펠컨 9에는 '멀린 엔진'이 탑재된다. 그 엔진이 나온 순간 러시아·일본·영국·프랑스 등의 모든 우주 기술과 발사 기술이 다 고만 저만해졌다. 항우연 기술이 전동 타자기라면 세계적 우주산업은 노트북이다. 또 소련 기술을 이용한 누리호가 코닥 필름 수준이라면 스페이스X 멀린 엔진은 디지털카메라 수준이다.

우리는 이제 러시아 기술에 의존하는 것을 탈피해야 할 때다. 오히려 우리 스스로 새로운 엔진을 개발해야 할 때다. 그래서 러시아에 너무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미국의 많은 로켓 엔진도 옛 소련 기술이 많이 적용됐다. 하지만 미국도 이를 탈출하려고 한다. 일본도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려 하고 있고, 영국도 그렇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개발에 나서려 한다. 

스페이스X가 백설공주라면 나머지 모든 나라의 우주 발사체는 일곱 난쟁이처럼 고만고만한 수준이다. 지금 우리는 러시아 기술에서 탈피해서 우리도 백설 공주가 되겠다, 그런 차원에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갖고 도전해야 한다."

-우주항공 업계 상황이 생각보다 어렵다고 들었다.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사실 우리 업계가 상당히 취약하다. 기업 대부분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같은 큰 회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평균 신용도 'BB-'의 중소기업이다. 그리고 민간 우주 산업계의 3분의 2 이상이 매출액 10억원 이하다. 중소기업도 아니고 연구실에서 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걸로 우주산업을 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고 눈물겨운 일이 많겠나. 지금 정말 자기 재산을 다 털어 넣으면서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어릴 때부터 별이 좋고, 우주가 좋아 취미로 시작해 사업을 하게 된 사람이 많은데, 정말 악전고투하고 있다.

최근에 정부에서 정책금융을 준다 해 협회 측에서 20여 개의 추천 업체를 은행에 전달했다. 그런데 몇 업체가 은행 창구에 가니 이미 여신이 차있다는 둥의 여러 이유를 대면서 못 빌려준다고 하더라. 분명 정부가 하라는 것을 하는데, 은행 창구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이자율이 올라 은행들은 돈 잔치, 성과급 잔치하면서 진짜 금융 지원이 필요한 업계에는 온갖 빌미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일각에선 중소기업에 돈을 막 주면 비도덕적이라 하는데, 나는 비도덕적이라 해도 좋으니 과거 IT 버블처럼 대대적인 투자를 해주길 바란다. 이렇게 해줘야만 뭔가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려면 정부의 특단 조치가 필요하고 지원이 이어져야 이들을 살릴 수 있다. 정책을 새로 세워 우항청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투자해주고, 정부 사업 등 사업을 많이 만들어줘야만, 세계 시장에 통할 수 있는 경쟁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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