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0.24 14:11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24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우주항공청 신설 관련 토론회 포스터. (출처=국회 홈페이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24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우주항공청 신설 관련 토론회 포스터. (출처=국회 홈페이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24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우주항공청 신설을 놓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주최한 토론회가 동시에 열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민주당이 ‘제대로 된 우주정책전담기관 설립을 위한 토론회’라고 명명한데 비해 국민의힘은 ‘우주항공청 조기 개청 토론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우주항공청 설립을 이제까지 방해해왔던 사람들이 이 시각 국회의 다른 곳에서 토론회를 하고 있다"며  "이는 경남 전체의 문제이자 대한민국의 문제"라고 각을 세웠다.

우주발사체 산업별 원천기술 및 파급효과 (출처=김영민 한국우주기술협회 사무국장 ' 우주항공청의 산업 측면애서의 역할' 발제자료y)
우주발사체 산업별 원천기술 및 파급효과 (출처=김영민 한국우주기술협회 사무국장 ' 우주항공청의 산업 측면애서의 역할' 발제자료y)

인도가 최근 세계 최초로 달 남극에 착륙하면서 우주 패권을 둘러싼 강대국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런 마당에 기계, 재료, 전기·전자, 제어, 화학, 항공 등 다양한 기술이 융복합된 우주항공산업을 육성하고 진흥시킬 막중한 책무를 지닌 우주항공청 개청이 지연되는 것은 국가이익에 어긋난다.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우주항공청 설립이 늦어지고 있다며 이제라도 빨리 출범하자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 처음부터 내실 있는 기관으로 설립해야만 대한민국의 우주경쟁력 향상이 가능하다며 맞서고 있다. 

여야 대립의 초점은 우주항공 연구개발과 핵심기술 확보와 관련된 사항을 누가 관장하느냐로 귀결된다. 우주항공청이 300여명으로 출범하면서 200여명은 연구 관련 인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의 주장처럼 이들이 연구 기획관리를 넘어서 직접 연구개발에 뛰어든다면 기존 우주 관련 연구개발을 맡아왔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과 임무가 중복될 우려가 있다. 효과적인 업무 분장이 필요하다. 

23일 국회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우주항공청 조기 개청 토론회'에 참가한 김민석(왼쪽)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상근부회장, 안영수(네 번째) 서경대  교수, 이창진(여섯 번째) 건국대 교수 등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경남지역 국민의힘 의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23일 국회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우주항공청 조기 개청 토론회'에 참가한 김민석(왼쪽)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상근부회장, 안영수(네 번째) 서경대  교수, 이창진(여섯 번째) 건국대 교수 등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경남지역 국민의힘 의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국민의힘 경남지역 국회의원 13명은 23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민주당은 일부 국책연구기관 노조에 편승해 대전 연구개발 특화지구, 전남 발사체 특화지구, 경남 위성 특화지구로 이뤄진 '우주경제 3각체제'를 외면하고 급기야 우주항공청의 핵심기능인 연구개발을 빼앗으려고 한다”며 “민주당과 항우연 노조는 항운연이 우주 연구개발 전체를 다 맡아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주항공청은 민주당 주장처럼 행정만 전담하는 사무기관이어서는 안 된다“며 ”우주항공청은 우주시대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우주산업을 총괄하는 국가콘트롤타워로서 항우연이나 천문연에서 할 수 없는 연구개발을 직접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여당이 항공우주청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는 전역에 10개 연구센터를 두고 영역별로 고유 임무의 연구를 수행한다. 플로리다주에 있는 케네디 우주센터는 우주왕복선과 발사체 발사를, 메릴랜드주에 있는 고다드 우주비행센터는 지구과학 및 천문·물리 연구, 위성 추적·운영을 맡는다. 

조승래(왼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제대로 된 우주정책전단기관 설립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조승래(왼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제대로 된 우주정책전단기관 설립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에 대해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토론회 인사말과 경과설명에서 정부 여당의 변심으로 합의안 마련에 실패했다고 역공했다. 조 의원에 따르면 과방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여러 대안들을 논의한 끝에 민주당이 국가우주위원회 산하 상시 조직으로 장관급 전략본부를 설치한다는 기존 주장을 양보하는 대신 우주항공청은 R&D 과제를 직접 수행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하고 이를 문서화하는 도중에 국민의힘이 'R&D 기능 배제는 안 된다'며 돌연 합의를 파기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이같이 합의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R&D 효율 유지와 기존 축적했던 연구역량 분산 방지를 위해 항우연과 천문연을 우주항공청 직속기관으로 두자고 요구해왔다. 항우연은 중복과 옥상옥 방지, 기존 연구기관의 형해화 방지를 위해 항우연과 천문연을 우주항공청으로 온전하게 이관해야하다는 입장이다. 신명호 항우연 노조지부장은 이날 지정토론에서 "뉴스페이스라는 단어에 취해서 우리 수준을 망각하지 않아야 한다"며 "향후 10년 내 정부 과제가 아닌 상용발사와 상용위성 제작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항우연이 확보한 기술을 이전하면 뉴스페이스가 도래할 것이라는 착각은 항우연의 수준으로든 국내 기업의 수준으로든 환상에 가깝다"고 일침을 가해 눈길을 끌었다. 신 지부장은 우주 선진국에 다음 단계의 추격을 하려면 항우연만으로 불가능하고 추격을 위한 선단을 구성하고 추격전략도 수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민주당과 항우연의 요구에 대해 정부 여당은 기존 연구기관의 직속화는 우주항공청 출범이후 논의할 문제라며 사실상 반대해왔다. 국책연구기관이 경제·인문사회연구회(NRC),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소속으로서 관련 연구를 맡으면서 국가 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현행 체제에서 항우연과 천문연에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과기부는 항우연과 천문연을 NST 소속으로 둔 채 일부 인프라는 우주항공청에 편입시키고 연구기관을 개별 임무센터로 지정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우주항공청이 조정과 총괄, 기획, 설계, 집행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국민의힘이 걱정하는 것처럼 단순 행정기관으로 운영하자는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우주항공청이 우수 인재를 유치할 수 있도록 외국인이나 복수국적자 임용을 허용하며 주식백지신탁 적용대상에서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이유는 목표 수립에 요구되는 고도의 연구개발 능력과 관련 판단 역량을 갖추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창진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23일 ‘NASA 연구체계로 본 우주항공청의 R&D 역할’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창진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23일 ‘NASA 연구체계로 본 우주항공청의 R&D 역할’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창진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이날 ‘NASA 연구체계로 본 우주항공청의 R&D 역할’ 발제에서 “우주라는 매개공간에서 우주기술을 사용해 국가의 이익과 목표를 추구하는 능력을 말하는 스페이스 파워는 강대국의 조건”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한국 우주개발의 약점으로 ▲우주경제 생태계 미비 ▲발사체·위성 개발 편중 ▲우주 개발 수요 부족 ▲부가가치 생산력 부족을 지적했다. 그는  “우주항공청은 민간산업체를 육성, 우주발사체와 위성 기술을 개발하는 등 우주개발 산업생태계를 육성해야 한다”며 “우주 수요와 우주 기술을 개발하고 아르테미스계획에 참여해 달 탐사에 함께 나서고 새로운 우주규정과 규범 제정에도 우리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이창진 건국대 교수 'NASA 연구체계로 본 우주항공청의 R&D 역할' 발제자료)
(출처=이창진 건국대 교수 'NASA 연구체계로 본 우주항공청의 R&D 역할' 발제자료)

정부는 2024년 아리랑 7A호, 2025년 차세대 중형위성 4호와 5호, 2030년 달 착륙선이란 우주개발 로드맵을 수립한 상태다. 2020년 3조 4294억원의 규모의 우주산업 시장을 키워 2045년 세계 우주 총생산의 10%를 차지한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이제야 자체 기술로 위성을 수송하고 궤도에 투입할 발사체를 확보한 수준에서 달성하기가 매우 힘든 과제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의 우주선진국인 미국의 우주개발 체계를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다. 국내 실정과 여건에 맞춰 차별화된 발전전략을 수립, 이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주항공청 출범과 함께 기존 우주연구개발에 헌신해온 국책 연구기관의 효율과 생산성이 더 높아지고 민간 우주항공회사와의 협업과 공조가 원활히 이뤄져야만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전체 국가 산업기술 도약을 주도한 우주항공산업 분야에서 후발 추격자로서 단기간 내 성과를 올릴 수 있음은 자명하다. 파이를 키워 더 많은 몫을 나눠 갖는데 집중할 때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이 23일 '우주항공청 조기 개청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이 23일 '우주항공청 조기 개청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이미 민간 주도의 우주산업화가 시작됐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미래항공모빌리티 신시장이 수년내 열린다. 이런 시기에 우주항공청 설립 논의부터 지지부진하면서 글로벌 항공우주 강국 도약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간 이 분야에 깊게 개입해왔던 산업통상자원부는 과기부 소속 차관급 외청으로 편성된다는 방침을 듣고 관심을 끊은 지 오래다. 우주항공청 개청 지연 여파로 산업계는 연구개발 방향을 놓고 어느 기관에 협의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여야의 갈등 속에 항공우주청 개청이 계속 늦어질수록 산업계에 미칠 부작용도 덩달아 늘어날 것이다. 정치권은 조속히 합의에 나서야 한다. 더이상 시간을 끄는 것을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차선책도 마련해가며 발등의 불을 꺼야 한다. 무엇보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내년도 우주항공 관련 정부 예산이 적절히 확보되고 지원정책도 차질없이 마련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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