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지혜 기자
  • 입력 2023.12.21 08:00
LG에너지솔루션 전기차배터리 미국공장 전경 (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전기차배터리 미국공장 전경 (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

[뉴스웍스=고지혜 기자]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2023년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규제에 맞춰 전략 짜기 바빴던 해였다. 분주한 만큼 기업들이 받은 수혜는 달콤했다. 연말로 갈수록 둔화하는 전기차 수요에도 든든한 '수익원'이 되어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내 배터리 3사는 중국과 미국 사이, 그 애매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내년에는 더욱 치열하게 '탈중국' 기조를 보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역대급 '실적'으로 증명된 K배터리 위상

올 한 해 국내 배터리 3사의 실적은 '웃음꽃'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3분기 누적 실적으로 매출 25조7441억원, 영업이익 1조8250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연간 실적을 갱신했다. 

삼성SDI 또한 3분기 누적 실적으로 매출 17조1435억원, 영업이익 11조1954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1.1% 증가하면서 지난해에 이어 역대 최고 매출을 달성했다.

SK온은 같은 기간 5623억원의 영업손실을 거뒀다. 흑자 전환과는 아직 거리가 멀지만, 지난해 1조726억원의 영업손실을 거둔 것에 비하면 3배가량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 더 긍정적인 점은 '수주 잔고'다. 올해 국내 배터리 3사의 누적 수주 잔고는 1000조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2분기 기준 수주 잔고 440조원, SK온은 1월 말 기준 290조원이라고 밝혔고, 삼성SDI의 수주 잔고는 약 260조원으로 추산된다.

◆달콤한 IRA 수혜…올해만 약 1.2조 혜택받는다

국내 배터리 3사가 역대급 실적·수주 잔고 잔치를 열 수 있던 배경엔 IRA가 있다.

IRA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공급망을 끊고, 미국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해 올해부터 시행한 규제다. 구체적으로는 전기차용 배터리 부품 중 50% 이상을 북미에서 제조하거나 배터리 핵심 광물을 40% 이상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하면 3750달러씩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IRA가 발표됐을 당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환호했다. 국내 기업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높은 중국 의존도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최근 들어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해외 투자에 활발히 나서면서 국내 기업들의 자리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국내 배터리 3사는 IRA를 기점으로 '탈중국'에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우선 IRA의 세액공제혜택(AMPC)를 받기 위해 올해에만 17곳의 공장을 가동·건설했다. 이들의 발 빠른 진출에 IRA의 보답은 굉장했다. 올해부터 가동에 들어선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올해 1~3분기까지 각각 4267억원, 3769억원의 AMPC를 영업이익에 반영, 수익성을 확보했다. 올 한해 동안의 AMPC는 1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SDI는 2025년부터 현지 공장이 가동할 예정이어서 아직 AMPC를 수령하진 못하고 있지만, 리비안 등 북미 전기차 고객사 수요가 확대되면서 견조한 수익성을 유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SK온 서산 배터리 공장 전경.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SK온 서산 배터리 공장 전경.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중국·미국 사이 K배터리, 이젠 '탈중국' 집중해야

수혜 덕을 보고 있음에도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시행된 지 1년된 IRA를 전적으로 믿기는 어려웠던 것일까.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IRA를 어기지 않는 선에서, 긴말하게 중국과의 원자재 계약을 계속해서 맺어오고 있었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 구성요소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매력적인 중국 시장을 단번에 끊어내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도 더해진 것이다.

그렇기에 올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중국과 미국 사이 끼어있는 위치를 택했다. 이에 하반기 중 중국과 미국이 연이어 발표한 견제 규제에 국내 기업은 두 배의 타격을 받게 됐다. 

지난 10월 중국 정부는 '흑연 관련 항목 임시 수출 통제 조치의 개선·조정'을 통해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 90% 이상 의존하는 배터리 핵심 광물인 흑연 수출을 통제하겠다는 발표를 내놨다. 국내 기업들은 발표 즉시 미리 3~5개월분의 재고를 확보해두면서 일시적 대응을 마쳤지만, 이번 규제로 중국이 광물을 무기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을 압박하는 주기가 더 잦아질 것이란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이달 1일에는 미국 정부에서 국과의 합작법인 지분율에서 중국 지분을 25%까지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하는 외국우려기업(FEOC) 세부 지침을 발표했다. 이번 세부 규정으로 국내 기업들의 긴밀한 원자재 확보 계약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중국 지분율을 낮추려면 국내 기업들이 수천억원을 들여 지분을 살 수밖에 없어 재정적인 타격이 어마어마하다. 

이에 내년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과제는 단연 '탈중국'이다. 올해보다 더욱 엄격한 중국 견제 기조를 내비쳐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은 올해만큼 중요한 해다. 올해 하반기부터 둔화하고 있는 전기차 수요가 내년에도 같은 기조로 이어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배터리 3사 조차 내년 실적 전망에 이미 기대를 낮춘 상태다. 

AMPC는 이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수익성 개선에 가장 ‘주력 요인’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LG에너지솔루션, SK온의 수령액이 각각 2조4000억원, 1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AMPC 지급이 유지되는 2032년까지의 K배터리 3사 예상 수혜액은 총 180조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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