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2.02 17:55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이재용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 합병에 대한 1심이 5일 선고된다. 검찰이 이 회장을 기소한 지 3년 5개월 만이다.
이 회장의 재판은 당초 지난달 26일로 예정돼 있었지만, 법원은 이를 약 열흘 정도 미뤘다. 11월 1심 재판절차가 종료된 이후 검찰과 이 회장 측에서 여러 차례 의견서를 냈고, 선고를 나흘 앞둔 22일에도 양측이 의견서를 추가 제출해 검토가 불가피해졌다.
재판부가 크게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이지만, 이 회장은 재판이 열흘 정도 미뤄짐으로써 더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11월 재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의 변호인들은 106차례 공판을 거치는 동안 검찰의 공소사실 부인이나 탄핵 증거를 통해 무죄 입증에 성공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은 3년 전 처음 기소할 때와 유사한 공소장 내용을 바탕으로 구형했다.
현재로서는 3년 이하 선고가 내려져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검찰이 항소하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3~4년 더 시간이 소요된다.
희박하지만 구속 가능성도 있다. 지난 2021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 회장이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던 만큼, 삼성전자는 이번 1심에서도 구속 가능성을 배재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당시 제일모직 지분 23.3%를 보유하고 있던 이 회장이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미래전략실에서 적극 나서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고 제일모직 주가는 높이는 방식으로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흡수합병을 추진한 것으로 봤다. 제일모직 1주당 삼성물산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이 추진된 것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비율이었다는 주장이다.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에 가담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합병 이후 회계처리 기준을 자산 4조5000억원 상당을 과다 계상했다고 보고 있다.
사실 이 재판이 정식 추진되기에 앞서 이 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 및 불기소 권고가 내려지기도 했다. 2020년 6월 대검찰청 수사심사위원회는 9시간 동안의 마라톤 회의 끝에 검찰에게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며 이 같은 권고를 내렸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검찰은 구형 전까지 재판의 쟁점 사항이었던 이 회장이 합병 비율을 결정하는 데 개입했다는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하지만 검찰은 '실질적 이익이 귀속됐다'는 근거를 중심으로 구형한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325조에 따르면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거나 범죄사실 증명에 없는 때는 무죄로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이 되지 않으면 '피의자 이익으로 판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사소송법에 입각해 '유죄가 아니다'라는 선고를 내려야 한다.
학계에서는 '삼성의 미래전략실에서 삼성물산 주가를 고의로 낮춘 것이 아니냐'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삼성물산의 주식 규모를 고려할 때 주가를 고의로 낮추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왜곡도 입증이 어렵다는 시각이 대다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국내 '빅4' 회계법인 중 하나로부터 회계처리에 대한 적정 의견도 받았다. 한 학계 관계자는 "검찰이 합병을 진행한 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 처리를 했다고 하는데, 합병이 끝난 후 지시해 처리한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데도 사법 리스크는 끝나지 않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회장은 회사 경영보다 법정 출석이 일과가 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사업에서 글로벌 매출 1위를 미국 인텔에,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 1위 자리도 미국 애플에 넘겨줬다. 각 사업이 이처럼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놓인 현 상황과 무관치 않다.
우리 법은 유독 기업에, 그중에서도 대표 기업인 삼성에 계속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우리나라는 '기업 하기 힘들다'라는 말이 나오는 게 이 때문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묻는 말에 상속세 완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해법을 찾기보다는 한국 기업 저평가의 원인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 진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기업이 기업 본연의 역할인 경영에 전념하지 못하고 풍파에 휘말릴 때 나온다. 지속경영이 위협받는 데 어떤 투자자가 그 기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겠는가. 그 결과, 반도체 경쟁사인 대만 TSMC의 시가총액(약 780조원)이 삼성전자(약 449조원)의 두 배에 육박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지금 한국 경제는 신음 중이다.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