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9.01 16:47
중국 강남길의 유명 길목인 전장(鎭江)에서 양자강을 넘어가기 전에 있는 옛 나루 서진도(西津渡)의 모습이다. 복원한 옛 거리가 이채롭다. 중국의 '강남'은 복잡한 정서를 품은 단어다.

그렇다고 이곳이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다. 중국은 전란戰亂이 빗발 닥치듯 셀 수도 없이 일어났던 곳이다. 북에서는 유목민족의 침략이 아주 잦았고, 왕조가 권력을 다투면서 생기는 전란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니 사람들은 늘 남부여대男負女戴의 피난 행렬에 몸을 실어야 했다.

원래 이곳에 쌀을 재배하며 살았던 원주민, 즉 비에트Viet 계통의 피를 지녔으면서 중국의 사서史書에는 越人(월인)이나 百越(백월)이라는 표기로 등장했던 사람들은 북으로부터 끊임없이 내려오는 중원의 인구와 때로는 아주 격렬한 생존의 경쟁을 벌여야 했다. 따라서 이곳도 물산은 풍부했을지 몰라도, 결국은 먹을 것과 살 곳을 두고 피 튀기는 싸움을 벌여야 했던 곳이다.

그런 대목을 표현하는 유명한 시가 있어 하나 소개한다. 우리가 잘 아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년의 작품이다. 마침 안사지란安史之亂이라 적는 혹심한 전란의 와중에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이승을 하직하기 전에 지은 시다. 전란의 와중에 겨우 살아남아 강남 지역에 도착한 그가 수도인 장안에서 예전에 자주 만나던 친구와 우연히 상봉했다. 앞의 두 구절은 생략한다. 유명해서 사람들 입에 지금도 오르는 마지막 두 구절이 이렇다.

정말 강남은 풍경이 좋기도 하지 正是江南好風景

꽃 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만났네 落花時節又逢君

-지영재 편역 <중국시가선>, 을유문화사-

 

그가 만난 친구는 李龜年(이귀년), 만난 장소는 후난(湖南) 창사(長沙)다. 예전 수도인 장안의 명망 높고 부유한 사람 집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악사 이귀년, 비슷한 처지로 고관의 집을 떠돌던 두보가 전란의 와중을 헤매다가 40여 년 만에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쳤던 때의 감회를 읊은 시다.

마침 당시의 이귀년은 뛰어난 음률로 전쟁이 벌어지기 전 수도 장안에서 살았을 때의 좋은 시절을 노래하며 여러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그런 이귀년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인 두보는 많은 감회에 젖었을 테다. 쉬운 시어詩語로 적은 그의 시가 지닌 울림이 제법 크다. 그가 말한 ‘꽃 지는 시절’이 결국 전쟁의 그악함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녔던 그와 이귀년의 처지를 말하는 것은 아닌지.

실제 중국의 강남과 강북은 인문적인 환경에서 차이가 컸다. 장강의 이북 지역을 상징하는 단어는 鐵馬(철마), 秋風(추풍), 塞北(새북)이다. 철갑을 두른 전쟁터의 말, 강이 얼어붙어 북녘 유목의 침략을 알리는 가을의 바람, 그리고 요새의 북쪽이다. 그에 비해 남녘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낱말들은 杏花(행화), 春雨(춘우), 江南(강남)이다. 살구꽃, 봄비, 강의 남쪽이라는 뜻이다.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며, 물고기가 많이 나면서 쌀까지 풍부한 곳이 강남? 그런 강남이 움트는 만물의 징조를 먼저 알리는 지역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를 지키고 보듬는 사람의 노력이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서울의 강남이나, 중국의 강남이나 그 점은 마찬가지다.

강은 그 천연의 흐름 때문에 예부터 커다란 전쟁이 늘 불붙었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의 한강도 예외는 아니다. 그곳은 60여 년 전 벌어진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커다란 전투가 여지없이 번졌던 곳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 김일성 군대의 남침에 밀려 이곳을 내줬고, 다시 빼앗았던 서울은 급기야 1951년 1월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다시 적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빼앗겼다 두 차례 다시 되찾은 한강이자 서울이었다.

강은 그런 인간의 역사를 지켜보면서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다. 江南(강남)이라고 적을 때 문득 우리가 던지는 시선은 따뜻함과 안온함에 머물기 십상이다. 그러나 한자漢字의 깊은 새김을 좇다 보면 우리는 글자가 던지는 간단한 의미에 머물 수 없다는 점을 느낄 때가 제법 많다.

중국의 강남도 그곳에서 나는 쌀과 물고기를 이야기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이동과 경쟁, 다툼의 의미를 던지고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이곳은 장강 북녘에 비해 평화와 안정의 의미를 조금 더 얻었던 셈이다. 어느새 이 지하철 한자 여행의 구간이 1호선을 거쳐 2호선에 접어들었다. 이로써 더 알아가고자 하는 영역이 바로 한자의 정신세계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강남역으로부터 두 번째 여행의 걸음을 뗀다. 강남은 남산처럼 친근하고 흔한 이름이지만, 그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할 이야기가 제법 많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강남역이 빚어내고 있는 풍요와 걸맞은, 아니면 전혀 다른 이미지에 해당할지 모르겠다. 얼핏 고요해 보이는 한자의 세계에는 제법 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다. 그런 한자의 속내를 훔쳐보는 일은 퍽 의미가 있겠다.

다음 역은 역삼驛三이다. 말 울음소리가 먼저 들린다. 말죽 끓이는 냄새도 조금씩 풍긴다. 이곳은 어떤 유래를 간직한 곳일까. 테헤란로의 번영과 양재천의 풍요로움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역삼의 정체는 뭘까. 우리가 몸을 실은 지하철은 어느덧 역삼역에 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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