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9.26 15:34
조선 성종의 능묘인 선릉 옆에 그를 돌보기 위해 만들었던 봉은사 정문 모습. 이 일대가 이제는 강남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삼성역 지역이다.

조선에서는 원래 이 일대가 다 경기도 광주군廣州郡에 속했던 지역이다. 닥점이라는 마을이 있었고, 성종成宗이 묻혔던 선릉宣陵의 원찰이었던 봉은사(奉恩寺), 한강 쪽으로 난 무동도舞童島의 이름을 지닌 마을 세 개가 있었다. 이 세 마을을 합쳐 삼성리三成里라는 명칭을 만들면서 생겨난 이름이 오늘의 삼성三成이라는 설명이다.

닥점은 종이를 만드는 데 꼭 필요했던 닥나무를 많이 재배해서 얻은 이름이다. 저자도리楮子島里라는 한자 이름이 그에 따랐다고 한다. 봉은사에 관해서는 달리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우리가 거쳐 왔던 앞의 역 ‘선릉’에서 설명한 부분이다. 무동도舞童島는 한강 쪽으로 난 섬에 마치 춤을 추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닮은 바위가 있어 붙은 이름이라는 설명이 있다.

지금의 삼성동은 서울의 웬만한 구석이 다 그렇듯이 면모가 썩 달라졌다. 닥나무가 심어져 있고, 죽은 임금의 능침과 원찰이 있어 늘 초와 향의 냄새가 풍기던 곳이었으며, 아련한 전설의 한 자락 같은 춤추는 아이 바위 등의 형상과는 거리가 멀다. 대형 몰이 들어서 있으며, 마천루라 해도 무리가 아닌 듯한 첨단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곳이다.

역 이름을 이루는 삼성三成의 ‘석 삼三’은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은 숫자다. 그러나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하는 3에 비해 동양의 문화 바탕인 三(삼)은 의미의 울림 폭이 제법 크다. 이 三(삼)은 우선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가리키는 이른바 ‘天地人(천지인)’을 상징하는 숫자다. 세상을 이루는 세 요소, 적어도 사람을 그 한 축에 놓을 때는 그렇다. 우주만물의 세 가지 요소를 일컫는 숫자이니 매우 그 의미가 크다.

발이 세 개 달린 솥을 우리는 한자로 鼎(정)이라고 적는다. 네 발 달린 솥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 이 鼎(정)이라는 글자는 세 발 달린 솥을 일컫는 일반적 명사다. 고대 청동기靑銅器 유품으로 우리에게 낯이 익은 집물什物이다. 네 발 달린 솥에 비해 이 세 발 달린 솥은 안정성에서 으뜸이다. 허물 수 없는 축軸을 기하학적 형태로 상징처럼 만들어낸 솥이다.

그래서 이 三(삼)은 동양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반적인 행위 또는 상태를 나타낼 때 三(삼)은 ‘기본적인 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자(孔子)가 “세 사람과 길을 갈 때, 그 속에는 반드시 내가 따라 배워야 할 사람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고 한 말이 대표적이다. 하필이면 왜 세 사람인가? 일반적인 경우에서 三(삼)이 표준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는 말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에 얽혀 있는 얘기도 재미있다. 그 문하에 식객 풍훤馮諼이 맹상군의 고향을 다녀올 적에 현지 사람들의 부채(負債)를 모두 탕감해준 뒤 돌아와 “똑똑한 토끼는 적어도 굴을 세 개는 파놔야 살 수 있다”고 했던 ‘狡免三窟(교토삼굴)’의 고사 말이다. 여기서도 풍파 많은 세상에서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방책을 셋, 즉 三(삼)이라는 숫자에 두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따라서 三(삼)은 작은 매듭에 해당한다. 그 三(삼)이 두 번 펼쳐져 가장 넓은 경우를 헤아릴 때 등장하는 숫자가 九(구)다. 三(삼)은 숫자와 방법 등에서 작은 매듭을 일컫고, 그 三(삼)이 두 번 펼쳐져 이루는 숫자 九(구)는 가장 큰 수, 또는 가장 많음,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함을 가리키는 숫자의 의미를 얻는다.

三敎九流(삼교구류)라는 말이 있다. 우리 쓰임새는 별로 없지만,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사회의 각종 세력과 계층을 모두 망라할 때 쓰는 말이다. 三敎(삼교)는 흔히 대표적인 가르침, 즉 종교(宗敎)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여러 설이 있지만, 후대의 중국에서는 흔히 유교와 불교 및 도교의 유불도(儒佛道)를 가리켰다. 九流(구류)는 그 뒤에 따르는 모든 중국 사회의 계층 등을 가리킨다. 그러니 三敎九流라는 단어는 ‘사회의 온갖 사람’이라는 뜻이다.

三(삼)이 펼쳐져 九(구)로 이어지는 형용 기법이다. 작은 매듭에서 더 나아가 큰 테두리를 형성하는 식의 표현 방법이다. 三(삼)과 九(구)는 그런 의미에서 자주 같은 흐름을 타고 번지는 숫자다. 숫자의 표기에서 三(삼)은 단순히 하나, 둘, 셋이 아닌 중간 종합의 매듭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그런 三(삼)이 두 번 펼쳐져 닿는 九(구)는 단순 9이기 이전에 아주 많은 수, 횟수 등을 가리키는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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