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9.28 17:17
봉은사 경내에서 바라본 번화한 삼성동 빌딩들의 모습이다. 삼성역 일대는 한적한 서울의 주변 지역에서 강남 비즈니스의 중요한 자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따라서 三成(삼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역의 이름은 제법 의미심장하다. ‘이루다’ ‘성취하다’의 새김인 成(성)이라는 글자에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의 三(삼)이 붙어 있으니 그렇다. 그러나 원래의 유래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이니, 너무 나아갈 것은 없다. 단지 우리의 관심은 成(성)이라는 글자에 머물 뿐이다.

이 글자 成(성)에는 무기의 일종인 戈(과)가 들어 있다. 그러나 戈(과)는 무기이기에 앞서 일종의 도구라고 보는 게 맞다. 도끼나 끌, 대패 등으로서 나무를 깎거나 다듬는 그런 도구 말이다. 그런 도구를 이용해 사물을 깎고 다듬어 모양새를 만드는 일, 그게 바로 이 글자의 원래 새김이다. 그로부터 다시 번져 무엇인가를 마무리하는 행위 모두를 가리킬 때 쓴다.

공을 이루면 성공成功, 이뤄서 어딘가에 닿으면 성취成就, 틈새 없이 이룬다면 완성完成, 모양을 이루면 형성形成, 이뤄낸 실적은 성적成績, 일정하게 자라 모양새가 그럴 듯하면 장성長成 등이다. 무수한 단어가 이 글자 ‘이룸’의 새김으로 만들어진다.

사람 사는 세상은 게임 그 자체일 때가 많다. 그래서 그에 가장 부응하는 단어가 성패成敗일 것이다. 이는 이기느냐, 지느냐를 가르는 승패勝敗와 같은 맥락일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하게 이기고 지느냐를 떠나 이루느냐 마느냐를 따지는, 범주가 더 큰 단어다. 유방劉邦을 좇아 한漢나라를 세운 한신韓信은 처음 유방의 핵심 참모였던 소하蕭何의 천거에 따라 한나라 건국 대열에 뛰어든다.

그러나 한 나라를 세운 뒤 자신의 권력의지를 주체하지 못해 야심野心을 드러냈다가 결국 소하蕭何의 계책에 휘말려 죽음을 맞는다. 그래서 ‘소하 때문에 일어섰다가, 소하 때문에 망했다’는 말이 나왔다. 한자로 적으면 ‘成也蕭何, 敗也蕭何(성야소하, 패야소하)’다. 여기서 어조사 也(야)는 ‘~도’ ‘또’ 등의 새김이다. 모든 사물과 현상의 원인이 우연하게도 한 곳에서 비롯하는 경우에 쓰는 성어다.

성견成見이라는 말도 있다. 이미 자신이 구축한 관점을 뜻한다. ‘이뤄진 견해’로 풀 수 있는 낱말이다. 일정하게 학식이나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관점, 세상과 사물을 보는 눈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맞는 상황은 매우 복합적이다. 따라서 제 견해만을 앞세운다면 물 흐르는 듯 유연한 대처가 어렵다. 그러니 이 성견成見은 가능하면 멀리 해야 한다. 아주 가변적이면서 복합적인 상황에 모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제 관점과 견해에 몰두할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준비 없이 일을 맞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온 한자 단어가 成竹(성죽)이다. 보통은 성어 형태로 胸有成竹(흉유성죽)이라고 적는다. 대나무를 그릴 때 제 가슴(胸)속에 미리 다 완성한(成) 대나무(竹)를 담아 놓는다(有)는 엮음이다. 상황에 대비해 무엇인가를 미리 마련해 놓는 일을 가리킨다.

이미 단단해진 자신의 견해에 너무 매달리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 없이 상황에 나서면 낭패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모든 세상살이가 그렇게 어렵다. 일정한 원칙과 고집도 중요하지만, 너무 그에 몰두하면 유연함과 융통성을 잃기 쉽다. 그래서 인생은 늘 미완성未完成의 상태라고 하는 것일까. 그래서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그런 적정성適正性을 찾아 움직이는 것일까. 참 어려운 게 세상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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