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교수
  • 입력 2017.10.02 09:00
김태기 단국대 교수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적은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중소기업 지원에 소극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매우 적극적이다. 한국처럼 헌법에서 국가가 중소기업을 지원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한다거나 중소기업을 지원한다고 하면 토를 달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정치권도 경쟁적으로 중소기업을 돕는다고 나서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중소기업은 왜 저생산성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중소기업에 대한 보호나 지원은 자금부터 인력의 확보까지 그리고 기술개발과 생산부터 판매처 확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주로 자금 조달의 애로를 호소하다보니 중소기업지원정책은 명칭은 서로 달라도 수단은 대부분 자금지원에 의존한다. 자금지원 또한 신용보증, 정책금융, 대출보증, 팩토링 등 다양하다.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규모는 얼마나 될까. 중소기업에 대한 한국의 자금 지원은 OECD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OECD(2016년)가 국제비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은행의 기업 대출 중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은 70%가 넘는데 비해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20% 내외에 불과하다. 은행의 대출 이자율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2014년 기준 OECD국가 평균은 1.52인데 비해 한국은 0.18로 매우 낮다.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대출 보증 규모도 매우 크다. 대출보증을 GDP와 비교하면 OECD국가의 중간치는 0.18%인데 한국은 4.06%로 일본(5.68%)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다. 중소기업 대출 중에서 정부의 공적 신용보증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은 15%인데 미국 등 선진국은 5% 이하에 지나지 않는다. 

◆중소기업지원정책 효과는 큰가?

정부가 중소기업지원정책을 강화했지만 효과는 거두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투입에 비해 성과가 낮다. 중소기업 지원을 늘렸는데 생산성은 오히려 후퇴하는 ‘지원의 역설’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의 도산 우려가 커지면 자금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그 이후에도 영속적으로 지원하는 특징을 보였다. 그 결과 생산성이 낮은 부실 중소기업이 연명되는 반면, 유망한 중소기업에게 돌아가야 할 자금은 부족해 결국 중소기업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진다.

이러한 모순은 실증적으로 확인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장우현 박사의 연구(2016년)에 의하면 2009년 제조업에 제공된 정책금융자금은 중소기업의 생존율은 5.32% 높인데 비해 부가가치는 4.92% 저하시켰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방식이나 지원 기준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은 중소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은 적지만 중소기업이 생산성을 키우도록 여건을 만드는 간접 지원에 치중해 생산성이 높은 중소기업일수록 지원이 많이 돌아가도록 만든다. 한국과 독일의 중소기업지원정책을 비교 연구한 공영일박사의 분석(2013)에 의하면 한국은 자금지원이 56.4%로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독일은 그 비중이 5.8%에 지나지 않고 기술혁신지원이 72.2%나 차지한다.

◆중소기업정책은 철학이 있는가?

중소기업지원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한국은 중소기업정책의 철학이 실종되어 그 많은 중소기업정책은 뒤범벅되어 방향을 잃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지원정책의 숫자는 많고 복잡해 정책끼리 연계성을 잃었고 부처의 정책이 조화되지 못해 시너지를 낼 수 없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지원정책 중에서도 인적자원개발정책 하나만 보더라도 그 숫자가 100개를 넘는데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제성장의 단계에 따라 정책이 바뀌고 중소기업도 발전 단계에 따라 지원정책이 바뀌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중소기업정책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성격을 다 가지고 있다. 소득수준이 낮은 1단계는 빈곤 퇴치 등 사회 안정화 차원에서 중소기업의 역할이 강조된다. 소득수준이 어느 수준으로 올라간 2단계는 중소기업의 고용창출기능을 중시된다. 1단계는 중소기업에 대한 보호가, 2단계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중소기업정책의 핵심을 이룬다. 그러나 자본이 축적되고 실업률이 낮아지면서 자본과 노동으로 국민소득을 높이는데 한계에 부딪쳐 기술혁신의 중요성이 커진 3단계에 가면 중소기업은 혁신의 동력으로서 중시된다. 3단계에서 중소기업의 양적 비중은 감소하지만 질적으로 발전하는 특징을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환경은 3단계에 진입했는데 중소기업정책은 여전히 2단계 머물러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정책은 1단계와 2단계의 향수에 젖어 새로운 철학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 환경의 변화와 정책의 부조화가 중소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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