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 교수
  • 입력 2020.02.25 23:20

김태기의 경제클리닉 “인적자본이 경제발전 핵심 동력…학생 중심 교육개혁 통해 미래기반 확충해야”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위험에 처한 나라(A Nation at Risk)’.

1983년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을 살리기 위해 교육개혁 하겠다며 제시한 청사진이다. 미국의 우위는 무역, 산업, 과학, 기술혁신 등 전 방면에서 도전받고 있고, 그 근본 원인은 교육이 시대변화에 뒤처져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교육개혁의 핵심은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 선택권을 확대하고, 학교의 책무성을 강화하도록 교육 행정을 바꾸며, 학생의 창의력을 키우도록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두었다.

1988년 대처 수상은 미국과 비슷한 내용으로 교육개혁에 나섰고 이를 통해 특히 ‘정부 돈으로 직원을 위해 운영하고 공공시설이 되어버린’ 영국대학의 면모를 완전히 바꾸었다. 1992년 스웨덴은 지난 호에서 언급한 대로 교육에 대한 민간기업의 참여를 허용하는 파격적인 개혁을 통해 교육이 노동시장의 변화에 부응하도록 만들었다.

어떤 나라든 인적자본은 경제발전의 핵심 동력이고, 인적자본은 주로 교육을 통해 형성된다. 세계적 경제학자들은 독일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조기에 회복하고, 한국이 산업화로 빈곤에서 탈출하고 정보화가 빠른 요인도 모두 인적자본의 축적과 형성에 있다고 지적한다. 교과서적 사례에 속하는 1970년대 중반 한국과 필리핀 경제의 역전, 1980년대 중반 한국과 브라질의 역전은 한국의 교육열이 필리핀과 브라질의 자원 부국 강점을 누른 것으로 평가된다. 또 교육은 민주주의와 정치·경제·사회 제도의 질적 수준을 보여주는 측도다. 민주주의가 고도화된 선진국의 경우 국민의 교육수준이 높고, 국민의 교육수준 차이가 작은 나라는 소득 불평등도 낮다. 한국이 소득 불평등이 작고 민주화에 성공한 것도 교육 덕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은 국민의 규범과 가치관을 형성하기 때문에 정부는 교육내용에 관여해 학생의 이념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체제는 교육제도에 영향을 미치는데, 교육의 목적과 방식이 정치체제에 따라 다르다. 자유민주주의는 학생의 창의성과 국민의 행복 추구에 반면, 사회주의는 체제 유지를 위한 가치관 함양에 목적을 둔다. 자유민주주의는 학생의 고등교육 진학의 기회를 열어놓는 반면, 사회주의는 기회가 정치 성향에 좌우된다. 자유민주주의는 학교의 자율성을 존중하나, 사회주의는 교사와 학교를 통제한다. 사회주의였던 동부 유럽 등이 1989년 체제 전환 이후 경제발전의 차이가 큰 이유로 교육제도 개혁이 지적된다. 탈사회주의가 빠른 국가일수록 성장률이 높았다. 사회주의는 보편적 무상교육으로 문맹률은 낮지만, 교사중심 교육으로 인적자본축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교육에 깊이 관여할수록 학교와 행정기관은 경직화·관료화된다. 자유민주주의보다 사회주의가 더 심하다. 사회주의 성향일수록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어 교육에 대한 정부의 관할권은 여러 부처로 난립하고 반면, 교사와 학교의 책무성이 약화해 교육의 성과는 떨어진다.

기술혁신과 세계화가 빨라지고 노동시장이 급변하면서 산업화시대의 정부 역할은 오히려 교육의 성과를 떨어뜨렸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이러한 문제와 미국과 유럽의 교육개혁에 자극받아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학부모와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확대하고, 학교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도록 자율성을 높이고, 입시 중심의 교육에서 탈피해 창의성을 키우도록 교육과정과 평가를 개선하고, 교육과 노동시장의 연계를 강화하도록 직업교육을 활성화하고,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지출을 확대했다.

이는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거대한 개혁이었지만 실패했다. 학교·교사중심에서 학부모·학생 중심으로 바뀌기에 저항이 수반되지만 이를 극복할 장치는 미약했다. 학부모와 학생이 선택권을 행사하는데 필요한 교육 정보가 부족했고, 학교와 교사는 정보 제공에 소극적이었다. 학교를 감독하는 교육청은 ‘교육자치’를 내세우며 교육재정만 확대했고, 교육의 책무성에는 관심이 없었다. 교육부는 다른 부처와 협력을 피하고 교육의 성과 제고에는 관심이 없어 교육과 노동시장과 괴리는 방치되었다. 반면, 학교 현장은 ‘참교육’을 내세운 전교조가 득세하면서 교실이 붕괴했다. ‘교육자치’가 ‘교사자치’가 되면서 교사의 규범이 무너지고, 학생의 학업은 뒤로 밀렸다. 또 수업은 좌파 이념을 학생에게 주입하고, 수행평가는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는 교육개혁을 둘러싸고 긴장이라도 있었으나 그 이후 균형이 무너졌다. 교육개혁에 반대하는 사람이 교육부 장관이 되고 전교조 출신들이 교육감으로 선출되었다. 이들은 교육 행정의 관료주의 폐해를 더 키웠다. 교육 행정과 일반 행정의 벽을 높였고, 교육감의 권한은 강화하고 학교장의 권한은 줄였다. 특목고 폐지 등으로 학부모와 학생의 학교 선택권이 사라지도록 만들었고, 학생의 수업성취도 평가도 하지 못하게 하고, 직업교육에 필수적인 산업 현장에서의 실습 교육도 폐지했다. 조국 장관 자녀 비리로 수시 입시제도의 문제가 드러나 문 대통령이 나서서 정시 확대를 요구했으나, 교육부조차 전교조 등의 눈치를 보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교육 당국은 최악의 청년 실업에 눈을 감고 4차 산업혁명에 무관심하다.

우리나라는 교육에 돈을 많이 들여도 성과가 낮다. 정부의 교육 지출이 빠르게 늘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서 최상위권이지만,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1위였다가 2015년에는 5위 정도로 밀렸다. 또 최상위권 비율이 감소하고,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최하위권 비율은 증가했다. 한국은 교육예산의 60% 이상을 교사 인건비에 지출하나 학생 수업에 들어가는 예산은 5% 정도, 학생의 진로지도 등에 들어가는 예산은 0.03%에 지나지 않는다. 교원의 급여는 상위권에 속하나 교원의 능력은 하위권이다. OECD의 교원능력국가비교(PIACC)를 보면 급여 수준이 중위권인 일본이 1위고, 한국은 교원의 급여와 능력이 정반대다. 직업교육은 내팽개쳐 고등학교단계에서 직업교육 받는 학생의 비율이 OECD 평균은 44%인데 비해 한국은 18%에 불과하다.

교육개혁 없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미국은 경쟁력의 원천이 교육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비결은 역대 정권마다 꾸준히 교육개혁을 추진해 왔던 전통에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문제가 특수하나, 미국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레이건 대통령 이전인 1970년대는 직업교육·훈련개혁, 1990년대는 교육과 노동시장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개혁, 2000년대는 학교 혁신을 통한 교육의 책무성 강화 개혁, 2010년대는 취약계층의 교육성취도 제고를 위한 개혁,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규제철폐로 고등교육의 질과 성과를 높이는 개혁으로, 모두 교육 발전에 국가의 힘을 쏟아왔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교육개혁의 우선순위만 달랐을 뿐 방향은 일관성을 보였고 모두 교육의 정치화를 막았다. 그러기에 교사 노조의 반대나 교육 행정의 관료화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교육개혁의 방향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미 나와 있다. 문제는 교육개혁의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이다. 혹자는 우리나라 국민의 자녀에 대한 맹목적인 교육열을 나무란다. 그러나 이는 교육제도의 실패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교육개혁이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일이 필요하다.

첫째, 교육 정보를 확충하고 공개를 강화해야 한다. 학부모와 학생이 학교와 진로선택에 필요한 직업과 노동시장 정보는 물론 초중등학교가 학생들에게 어떤 내용을 가르치는지, 학업성취는 어떤지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의 투명성 및 책무성 확보와 이에 관한 정보 제공의무를 교육감에게 부여해야 한다. 또 교육재정의 운영과 성과에 관한 정보도 제공해 학부모와 지방의회가 교육성과를 평가하고, 유권자들이 교육감을 선출하는데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둘째, 교육 행정을 단순화해 관료주의 병폐를 없애야 한다. 대학의 학생선발권 등을 보장해 자율성을 확대하고, 초중등학교의 학교장 권한을 강화해 교사에 대한 평가와 인사권을 확립하고, 죽어있는 교실을 살리도록 학교를 혁신하는 역할을 맡겨야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학교에 대한 권한은 줄이면서 폐쇄형 행정을 개방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교육부는 노동부 등 다른 부처와 교육청은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을 통해 관련 정책의 공조를 강화해 교육과 노동시장이 긴밀하게 연계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셋째, 교사 노조가 교육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교사의 자질을 높이고 효과적인 수업방식 개발에 필요한 정보를 지원하는 쪽으로 노조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국공립은 물론 사립학교도 정부의 예산지원으로 교사의 급여가 지급됨으로 노조의 운영도 투명성과 책무성을 높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 교사의 정치적 견해를 학생에게 주입하지 못하도록 윤리 강령을 만들고 자체적으로 감독해야 한다. 교육행정기관에는 이러한 문제를 모니터링 하도록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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