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 교수
  • 입력 2020.03.10 22:15

김태기의 경제클리닉 “세계화시대엔 정부가 모든 문제 해결 못해…글로벌 리스크 해소 위한 새 사회계약 필요”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국민안전, 국가가 책임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국민과 국가의 사회계약 기본이다. 코로나 사태로 공약은 지켜지지 못했고, 오히려 국가가 국민안전을 위험에 빠뜨려 사회계약을 위기에 빠뜨렸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발생하자 전문가들은 중국발 입국 통제부터 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문 대통령은 무시했다. 방역망이 뻥 뚫렸고 결국에 코로나 환자가 대구 신천지 교인 중심으로 급증해 중국 다음으로 많아졌다. 이러다 보니 심지어 중국인들은 현지 한국인이 코로라 옮긴다고 신변을 위협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로 '제2의 중국'으로 취급받아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가 100개 넘는 처지가 됐다. 이러자 문 정권과 집권 세력은 안전이 무너진 책임을 사이비종교라는 이유로 신천지에 돌리지만, 그 교인들도 우리 국민이다.

국민은 국가 경제의 주체이자 국가 권력의 원천이다. 국민이 소비자, 생산자, 납세자, 유권자 등으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신뢰가 있을 때 사회계약은 굳건하다. 신뢰는 특히 위기가 발생하면 해결의 결정적 변수가 된다. 좋은 제도와 착한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높여 위기를 신속하게 해결하게 만들지만, 나쁜 제도와 못된 정부는 정반대다.

마스크 대란도 정부의 잘못된 대응과 제도로 발생했다. 코로나가 발생하자 정부는 마스크를 반드시 쓰라고 해놓고 중국으로 마스크를 대량 보냈다. 불안 심리로 가수요가 생기고 공급이 못 따라가게 되자 매점매석을 단속했다. 그래도 안 되니까 결국 마스크를 정부가 배급하고, 생산 원가 절반으로 마스크를 사겠다고 했다. 배급에다 국민 재산까지 탈취하는 사회주의 중에서도 최악의 사회주의 경제가 사회계약의 근본을 흔들었다.

우리보다 소득이 높은 나라 중에서 코로나 피해가 가장 큰 나라는 이탈리아다. 코로나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이탈리아는 슈퍼 전파국으로 낙인찍혔다. 이탈리아가 이렇게 된 이유는 나쁜 제도가 판을 친데 있다. 이탈리아는 다른 나라와 달리 규제를 강화하고 정부의 시장통제에 치중했다. 그러자 우리나라의 현대차와 같은 피아트까지 해외로 떠났고, 외국 자본이 이탈리아를 외면하자 어쩔 수 없이 중국에 기대게 되었다. 중국판 세계화라고 할 수 있는 ‘일대일로’에 참여해 중국인의 이탈리아 방문이 급증하면서 유럽에서 코로나 진원지가 된 것이다. 이탈리아는 확진자뿐 아니라 사망자도 많다. 우리나라와 달리 이탈리아는 중국발 입국 통제를 초기에 했지만 의료와 방역 인프라가 부족하고, 보건 당국이 코로나 확산을 늦게 확인했고 대응도 서툴렀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이탈리아를 ‘중국의 부하’로 만든다고 내부에서 반대가 있었다. 그래도 정부가 밀어붙인 이유는 이탈리아 경제가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좌파 정부가 집권하면서 포퓰리즘이 기성을 부렸고 정치는 불안했다. 정부가 국민의 경제활동을 과도하게 규제하면서 공공기관은 부패하고 문제가 터져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코로나 피해가 커진 것이다.

이탈리아는 지하경제의 비중이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아 사회주의 개도국 수준이다. 근로자의 10~20%는 비정규직보다 고용이 더 불안한 비공식 근로자다. 비공식 근로자는 우리나라에는 명칭조차 생소한데 정부에 근로자로 신고되지 않는다. 사업주나 근로자 모두 세금을 내지 않고 사회보험에도 가입하지 않기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지만 나머지 사람의 부담은 가중되었다.

사회계약은 나라 안의 문제만은 아니다. 세계화로 연결사회가 되면서 국민안전도 국가의 힘만으로 보호하기 어렵고, 국민을 보호하는데 국가 간의 관계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글로벌 리스크의 증대가 전통적인 사회계약을 위협한다고 지적한다. 그중의 하나가 전염병인데 세계화로 사람의 이동이 많아지면서 낯선 지역의 희귀한 바이러스가 금방 퍼진다.

글로벌 리스크는 전염병만 있는 게 아니다. 기후변화와 천재지변은 물론 기술혁신과 자본 이동, 고령화, 이에 따른 경제 침체와 대량실업 등도 글로벌 리스크에 들어간다. 사회계약의 위험요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면 국민과 국가의 역할 조정, 제도의 현대화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와 이탈리아가 코로나 피해가 큰 이유도 환경 변화에 맞게 사회계약을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이 기업인을 대상으로 각국의 글로벌 리스크를 조사한 결과 일본과 중국은 자연재해를, 반면 우리나라는 대량실업을 가장 큰 리스크로 꼽았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만큼 노동시장 규제가 많은 스페인도 대량실업이었다. 정부의 공식 실업률이 낮아 일반 사람은 대량실업이 우리나라의 최대 리스크라는 점을 이해하기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를 들여다보면 대량실업이 코로나보다 더 심각한 위험요인임을 알 수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봤듯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여행객 감소로 관련 산업이 존폐 위기에 처했고, 부품조달이 어려워 생산도 중단되었다. 게다가 산업에 대한 규제가 심하고 노동시장 경직성이 크기 때문에 기업은 투자를 포기했다. 정부가 경제를 일으킨다고 돈을 퍼부어도 효과가 없어 재정위기 가능성만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업인의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리스크에 대응할 국민의 역량은 큰 편이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보듯이 정부는 코로나 대응에 실패해도 국민은 성공적으로 대응했다. 국민이 안전 수칙을 지키면서 신속하게 움직여 피해를 이 정도로 줄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국민의 교육수준이 높고 인적자본이 축적되어 있어 방역망이 뚫려도 정보통신기술까지 활용해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지킨 것이다.

반면 이탈리아의 코로나 사망자가 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보다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가 작았기 때문인 것이라 보인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98%가 고등학교 졸업 이상인데 이탈리아는 그 비율이 50%를 조금 넘는다. 대량실업 리스크도 마찬가지다. 노동의 자유를 확대하고 인적자본의 활용을 촉진한다면 국민은 대량실업 리스크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코로나를 계기로 사회계약을 다시 써야 한다. 국민의 교육수준이 낮았던 산업화시대의 사회계약은 기술변화는 물론 이에 따른 연결사회로의 변화에 부합할 수 없다.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국민 한 사람이 모두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도록 사회계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코로나 사태가 보여주듯, 대통령이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되고, 정부는 대통령을 쳐다보고, 대통령은 중국만 쳐다본다. 이러면 사회계약은 붕괴하고 만다. 고령화 리스크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국민과 국가의 사회계약도 위험하다. 국민이 노후 생활 안정을 위해 저축한 국민연금을 정권이 수익률을 높이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제도로 정권의 눈에 들지 않는 기업을 손보는데 동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방경제인만큼 글로벌 리스크에 크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는 리스크 중의 하나일 뿐이다. 반면, 위기관리시스템은 전문가보다 대통령의 뜻대로 작동하는 등 엉터리다. 게다가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시장 기능이 죽어가고, 국민의 자발적 대응능력도 떨어지고 있다.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사회계약을 관리하기에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리스크 시대에 맞게 국민과 국가의 사회계약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점을 유념해야 한다.

첫째, 예상되는 위기 상황별 대응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 헌법 제76조 1항은 “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 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헌법대로 글로벌 위기 예방과 대응을 위해 정부는 사전에 법으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마스크 대란이 명백하게 예상되는 상황에도 대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해 위기를 더 키우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둘째, 위기에 취약한 경제구조와 노동시장 관행을 국가전략 차원에서 개선해야 한다.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위기에서 신속하게 벗어나도록 경제의 탄력성을 높여야 한다.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지고 국민 각자의 책임 커질 수밖에 없기에 정부는 인프라를 강화하고 동시에 규제 완화와 시장 기능 활성화로 민간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진단과 치료능력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이유는 의료와 방역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코로나로 실물경제가 정지되고 대량실업이 발생할 정도로 피해가 큰 이유는 적폐청산 등으로 기업활동이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위기관리시스템의 탈정치화로 초당적인 힘을 모아야 한다. 위기관리의 의사결정 권한은 대통령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으나 해당 분야 전문가를 무시하고 진영 논리에 따라 해결책을 찾으면 전체주의가 될 수 있다. 또 위기 해결에 중요한 시간을 놓치고 나라가 가진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대통령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게 된다.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이 문 정권은 국민안전을 말하며 정권 안전을 우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면서 집권 세력은 대구의 코로나 피해가 큰 이유가 야당지지 성향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정치생명이 위태로운 도지사들은 재난 기본소득으로 주목받는 '못된 정부'를 만들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