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5.12.14 14:40

[풀어야산다] ① 파견근로, 전 업종 허용해야

일 할 사람이 없다면 그 ‘일’은 멈춰야 한다. 그러나 그 ‘일’이 제조업의 근간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실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곳이 한국의 산업계다. 지난 10월 14일 중소기업중앙회와 주조, 금형, 소성가공, 열처리, 표면처리, 용접  등 이른바 ‘6대 뿌리산업’ 협동조합 이사장들은 해당 분야에서의 ‘파견근로’를 허용해달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파견근로’는 말이 헛갈려서 그렇지, 일정한 계약 기간만 상정할 수 있는 고용 및 근로 형태다.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되, 근로자는 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일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 사태 때 노동유연성 확대를 위한 국내외적 요구사항에 맞춰 1998년 파견법이 만들어져 제한적 범위 내에서 파견근로자 사용을 시작했다.

‘6대 뿌리 산업’은 그야말로 제조업의 뿌리에 해당한다. 이 분야의 일처리 솜씨가 좋지 않으면 우리 제조업의 제품 경쟁력은 크게 떨어진다. 그러나 임금 수준이 높지 않고 작업 환경이 열악한 3D업종이라는 점이 문제다. 따라서 젊은 인력을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내년 경기전망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거의 자살골과 같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노동개혁 5대입법’ 중 파견법 개정안에 이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그러나 12월 중 임시국회를 소집해 해당 법안들을 논의하자는 여야의 합의는 나왔지만 처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새정치민주연합과 노동계는 뿌리산업 파견근로 허용이 결국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해 근로자의 직업 안정성을 해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 개정안과 함께 파견법은 노동개혁의 성패가 달린 열쇠가 된 상황이다. 

◆ 32개 업종에 대해 2년만 허용하는 파견 근로자 사용

한국은 총 32개 업종에서만 파견근로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컴퓨터·전기공학·통신·제도기술·광학 등 특수 기술 관련 종사자와 더불어 영화·연극·창작 및 공연·음식조리 등과 통번역·텔레마케터 등이 해당된다. 단, 최대 2년까지만 사용을 허용한다. 예외적으로는 출산이나 질병, 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겼을 경우에 한하여 노사협의에 따라 파견근로를 허용한다. 

자료 :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만약 2년을 초과해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경우에는 자동으로 ‘직접고용’ 관계가 맺어진다. 실제 지난 2월 대법원은 현대자동차가 2년 이상 파견업체를 통해 사용하던 근로자가 “현대자동차 근로자의 지위를 확인해 달라”는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낸 바 있기도 하다. 2년을 초과했기 때문에 현행법 상 현대자동차 직원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2000년대 초반부터 뿌리산업뿐 아니라 모든 업종에 대해 파견근로 고용을 허용하고 사용 기간 규제 등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러나 찬반 논란만 이어졌을 뿐 별다른 정책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계는 파견근로 허용 범위를 보다 축소시켜서 기업이 ‘직접고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6일 관련 내용을 담은 노동개혁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 OECD에서 둘째로 강한 규제...舊 공산권 국가들보다도 높아

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파견근로 관련 규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013년 전 세계 43개국을 중심으로 파견근로 규제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다음으로 파견근로 규제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를 기준으로 하면 터키 다음으로 2위인 셈이다. 

한국보다 규제 강도가 낮은 국가 중에는 과거 공산주의 체제 국가였던 체코, 헝가리도 들어 있으며 대표적인 포퓰리즘 국가인 아르헨티나, 그리스 등도 있다. 비(非) OECD 국가 중에는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 등이 있다. 

OECD가 측정한 한국의 파견근로 규제 종합지수는 4.33이다. 조사 대상 국가 43개국 평균인 2.53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비교적 노동보호 수준이 높은 유럽(EU)의 평균은 2.66이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 달러 이상인 국가만 따로 계산할 경우 그 수치는 1.95로 더욱 낮아진다. 모두 한국의 규제 지수에 비해서 훨씬 낮은 수준이다. 

◆ 규제가 아예 없는 영·미, 차별 금지는 엄격

영국과 미국의 경우 파견근로자 사용에 대한 규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하고 유연한 근로계약을 존중하는 영미권의 시각에서 파견근로란 사적관계에 의해 맺어진 또 다른 계약 형태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직접 고용하는 근로자와 파견 근로자를 차별대우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미국에는 총 280만 명 규모의 파견근로자가 근무를 하고 있다. 전체 임금근로자의 2.4%에 해당하는 규모로 한국(1.03%)의 2배 이상이다. 주로 교통 및 수송, 생산직, 사무직 지원부서 등에 근무하고 있는 상황이며 정규직에 비해 80~100%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영국은 임금근로자 중 1.2%가 파견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 폭스바겐의 성장 비결은 인력파견업체 자회사 ‘오토비전’

선진국 중에서도 고용 보호 수준이 높은 독일의 경우도 건설업을 제외하고는 파견근로자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미국과 마찬가지로 직접 고용 근로자와의 동등 대우에 방점을 두고 임금이나 시설 이용권리 등을 보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체 임금근로자의 2.15%가 파견근로자로 근무하고 있다. 

한편 독일의 대표기업 폭스바겐의 성장비결이 바로 자회사 ‘오토비전’에 있다는 데에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오토비전은 생산·연구·판매에 이르기까지 폭스바겐이 필요로 하는 모든 인력을 제공하는 파견업체다. 정규직은 물론 비정규직의 충원까지 맡고 있어 폭스바겐의 고용 유연성 유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제조업 인력을 파견근로자로 사용할 수 없는 한국의 기업 입장에서는 부러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 한국과 비슷했던 일본, 1999년 규제 ‘확’ 풀어

자료 :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일본은 1985년 파견근로 관련 법규를 신설해 현재 한국과 비슷한 ‘포지티브’ 방식으로 파견근로를 허용해왔다. 즉, 파견근로가 가능한 업종을 규정해 허용하고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금지한 것이다. 최초 13개 업종에서 시작해 1999년까지 26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1999년 금지 업종만을 규정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파견근로를 전면 허용하는 이른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제도를 전환했다. 현재 일본은 항만운송, 건설, 경비, 의료 등을 제외한 다른 업종은 파견근로자 사용이 자유롭다. 사용기간 규제는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원칙적으로 최대 3년까지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으나 노사협의에 따라 얼마든지 연장이 가능하며 그 횟수에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회사 도요타도 폭스바겐처럼 스스로 파견회사를 직접 설립해 인력을 충원하고 있으며 전체 근로자의 27%를 비정규직과 파견근로자로 채우는 등 고용의 유연성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 “파견근로, 뿌리산업뿐만 아니라 전 업종에서 허용해야”

무역 장벽이 갈수록 낮아지고 세계 경기가 국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지속적으로 커지는 상황에서 파견근로자 사용을 통한 고용 유연성 유지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기업의 시각이다. 한 번 고용하면 웬만해서는 해고할 수 없는 정규직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재계는 뿌리산업에 국한하지 않고 전 업종에 대해 파견근로를 원칙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경련, 중소기업중앙회 등 5대 경제단체는 지난달 25일 “인력부족을 겪고 있는 뿌리산업을 비롯하여 인력 수요가 많은 제조, 사무업무 분야 등에 파견근로를 대폭 확대함으로써 고령자들이 자신의 직업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며 보다 과감한 규제 개혁을 주문했다. 

박철성 한양대학교 교수는 '외국의 파견제도와 현황'이라는 자료에서 “파견근로의 활용 확대는 장년층의 노동시장 재 진입, 청년층의 노동시장 경험 확대, 장기실업자의 노동시장 진입, 단기적 수요 변동에 대한 기업의 효과적 대응과 경쟁력 제고의 방안이 될 수 있다”며 “그 부작용은 파견근로자의 직업 안정성을 보강하는 방법으로 최소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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