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한새 기자
  • 입력 2022.08.29 10:27
국산 3000톤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사진제공=해군)
국산 3000톤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사진제공=해군)

해군 출신이자 전직 잠수함 함장으로서 자주 느끼는 점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잠수함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많다는 것이다. 잠수함 건조와 운용, 수출, 차기 전력 획득까지 일반 국민뿐 아니라 언론계, 정치계까지 가세해 전폭적으로 잠수함을 지지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한때 잠수함에 몸담았고 지금도 잠수함의 세계에 빠져 사는 필자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다.

이런 애정과 관심에 반해 잠수함에 대해 잘못 알려져 있는 것도 많고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잠수함을 오랜 기간 운용했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간접 경험의 기회가 적었던데다 정확한 관련 지식을 전해줄 매체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1992년 10월 12일 국산 1호 잠수함 이천함 진수. (사진제공=해군)
1992년 10월 12일 국산 1호 잠수함 이천함 진수. (사진제공=해군)

해군 소위로 임관한뒤 장교로서 성장하는 시기는 한국 해군의 잠수함 도입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덕분에 잠수함인수 요원으로 선발돼 독일에서 잠수함 운용과 장비교육을 받았다. 이어서 국내 최초 건조 잠수함인 이천함의 인수 요원으로 근무했다. 당시 잠수함장교로서 내가 잘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것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과연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생존했고 벌써 30년 전의 추억이 되었다. 

전역한 이후에도 어떤 사고도 없이 우리 잠수함들이 안전하게 잘 운용되고 있어 흐뭇하다. 오늘날 우리 잠수함 보유척수는 세계 5위이고 자체 건조와 수출 실적까지 보유한 잠수함 강국이 되어 있어 더욱 그렇다.

세계 최고 권위의 유보트 아카이브를 남긴 독일 브레도브. (사진제공=최일)
세계 최고 권위의 유보트 아카이브를 남긴 브레도브 씨. (사진제공=최일)

필자에게 잠수함은 군인 신분으로 근무해야 하는 생업의 영역이었지만 개인적인 취미로서의 영역도 되었다. 관련 사료를 모으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다. 군을 떠난 뒤에는 국경을 초월해서 잠수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잠수함 박물관을 찾아 다녔다. 외국인 친구들 중에는 유보트 승조원으로서 자신이 입원한 사이에 출동한 뒤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던 자신의 배와 동료들을 기리며 일평생 유보트 사료를 정리하면서 세계 최고 권위의 유보트 아카이브를 남기고 작고한 독일의 브레도브 씨가 있다. 

발터(오른쪽) 유보트 전문가. (사진제공=최일)
발터(오른쪽) 유보트 전문가. (사진제공=최일)

또, 해군이나 잠수함과는 그 어떤 근무연도 없었지만 40년 이상을 취미로 유보트의 역사를 찾아 다니며 사료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최고의 유보트 전문가가 된 독일의 트럭 기사 발터도 있다. 

침몰 잠수함 발굴협회 활동가 브롬(오른쪽) 여사. (사진제공=최일)
침몰 잠수함 발굴협회 활동가 브롬(오른쪽) 여사. (사진제공=최일)

유복자로 태어나 2차대전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승조한 잠수함과 함께 사망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서고 침몰잠수함 발굴협회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의 브롬 여사처럼 잠수함을 삶의 가치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만났다. 

이들과의 교제를 통해 생업을 잠수함으로 살았고 덕분에 많은 혜택을 누린 나로서는 뭔가 해야만 했다. 잠수함을 제대로 연구하기로 결심하고 잠수함 관련 사료들을 수집했으며 독일에서 컨테이너 한 대 분량, 약 3만 점의 잠수함 관련 자료를 갖고와 잠수함 아카이브를 꾸몄다. 그리고 유튜브와 페이스북에서 ‘잠수함연구소’라는 채널을 개설하여 독자들에게 잠수함 상식을 전파하고 있다.

잠수함이 취미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의외로 우리 주위에 잠수함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잠수함 관련 방산업무, 군사학술연구를 하는 사람들과 별개로 잠수함을 소재로 글을 쓰는 웹소설 작가, 잠수함 서적 번역가, 잠수함 영화 제작자, 잠수함 디오라마 제작가, 잠수함 게임 마니아 등이다. 

필자에게 잠수함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잠수함은 재미있는 것이다.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하나의 취미가 될 수 있다. 

잠수함의 세계는 깊고 넓다.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쓸모없는 잠수함은 없다. 완벽한 잠수함도 없다. 모든 잠수함에는 사연이 있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 

세상은 전문가라는 호칭을 남발하고 있지만 필자에게는 ‘잠수함 연구가’ 혹은 ‘잠수함 애호가’가 걸맞은 호칭이다. 잠수함은 해군이 운용하는 무기체계 중 하나이지만 그 속에는 우주가 있다. 그것도 빅뱅과 같이 폭발하고 지금도 팽창하고 있는 우주이다.

잠수함에는 역사가 있고 기술이 있고 세계가 있고 미래가 있다. 필자는 잠수함을 연구하고 그 결과를 전파하는 것이 즐겁다. 앞으로 이 지면이 독자 여러분과 잠수함에 대한 흥미를 나눌 수 있는 교제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러분을 재미있는 잠수함의 세계로 초대한다. //최일 잠수함연구소장

최일 잠수함연구소장
최일 잠수함연구소장

◆최일 잠수함연구소장은 부산 브니엘고(18회)와 해군사관학교(제40기)를 졸업했다. 한국 최초의 잠수함 인수선발대 일원으로 선발돼 독일에서 장보고급 잠수함 인수 교육을 받았으며, 국내에서 건조한 최초의 잠수함 이천함의 초대 음탐관을 역임했다. 이후 잠수함 부서장, 부장, 잠수함 부대 작전참모로 복무했다. 214급 잠수함(손원일급) 인수팀장으로 선발돼 인수팀을 인솔, 독일에서 잠수함 운용교육을 받았다. 214급 잠수함 1번함인 손원일함 초대 함장을 역임했으며, 잠수함 전대장으로 근무했다. 독일 연방언어학교와 독일해군 지휘참모대학을 수료했다. 수학기간 중 독일 유보트협회에서 자료 지원을 받아 귀국 시 <독일 해군 원수 칼 되니츠 제독의 삶>을 출간했다. 

해군 대령으로 전역 후 독일잠수함 건조회사 TKMS 사(구 HDW)에서 이사로 5년간 근무했으며, 이 기간 동안 독일유보트협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전세계 잠수함 관련 지인들과 교류하며 잠수함을 테마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현재는 잠수함 아카이브와 페이스북과 유튜브 채널에서 잠수함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해군사관학교에서 ‘잠수함 공학’ 초빙강사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경남대학교 대학원에서 6.25전쟁 연구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잠수함 리얼리티>, 역서로는 <U-333>, <리코버 제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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