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1.30 18:04
중대재해 감축 추진 4대  전략 (인포그래픽제공=고용노동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 지난 9월 26일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용역노동자 7명이 숨지고 1명은 중상을 입었다. 이 참사를 조사 중인 대전고용노동청은 지난 3일 김형종 현대백화점 사장과 방재보안시설 하청업체 대표 3명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2. 지난 10월 15일 SPC그룹 계열사인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23세 여성 근로자가 기계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노조는 회사측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매뉴얼을 무시하는 바람에 희생자가 나왔다고 비판했다. 고용부 조사 결과 SPL에서 과거 5년간 동일하거나 유사한 형태의 가벼운 끼임 사고가 15건이 발생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다가 결국 사망 사고를 낳은 것으로 나타났다.

#3. 지난 10월 21일 경기도 안성 KY로시즈 저온물류창고 신축 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거푸집이 붕괴되면서 건설노동자 3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당했다.

원청 사업주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 조치에 나서야할 장소를 대폭 넓히고 위험한 작업의 무분별한 외주화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이 2020년 1월부터 시행되고 올해 1월부터 중대산업재해나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 중대재해처벌법이 발효되었지만 산업현장의 재해는 빈발하고 있다.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50인·억 이상 기업이나 공사현장에서의 사망사고는 올해 들어 10월말까지 전년 동기보다 17명 더 늘어났다. 기업들이 안전보건 역량 강화에 투자하기 보다는 대형 로펌 자문 등을 통해 최고경영자 책임 처벌 회피방안 강구에 주력한 탓이 적지 않다.

(인포그래픽제공=고용노동부)

지난해 중대재해로 숨진 사람은 828명으로 20년(882명)보다 줄었지만 19년(855명)에 비해서는 늘어났다. 사고사망만인율 0.43‱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국 중 34위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독일과 영국의 만인율은 각각 0.07‱, 0.08‱으로 한국의 1/5~1/6에 불과하다. 창피하게도 한국의 만인율은 영국의 1974년(0.34)보다 높고, 독일의 1994년(0.42)수준과 비슷하다. 영국보다 50년 가량 뒤졌다는 의미다.

법률에선 처벌 수위를 대폭 높였지만 사고사망만인율은 8년째 0.4~0.5‱ 수준에서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다. 물론 전체 생산활동에서 제조·건설 비중이 33%로 독일(25.8%)일본(25.9%), 영국(15.4%)보다 높은데다 원·하청 이중구조화가 심화된 영향이 있다. 이보다 근본 원인은 안전 투자를 비용으로만 접근하는 경영문화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위반자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지속되는 것도 이런 흐름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안전보다 생산을 우선시하다보니 위험 요인이 있다해도 ‘빨리빨리’, ‘대충대충’ 작업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현장 분위기도 여기에 한몫을 한다. 경미한 고장이나 장애가 나면 원인을 파악, 제대로 고친뒤 만약의 사고에 대비, 작업절차서에 따라 작업을 재개한다는 원칙 역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납품시한에 늘 쫓기다보니 절차서가 없더라도 직관이나 경험에 의존, 작업에 다시 나섰다가 산재를 당하기도 한다. 제대로 전파되거나 학습이 이뤄지지 않아 과거에 발생했던 산재가 재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근로자는 생산을 담당하고 안전은 안전보건담당자가 책임지는 것이라는 산업현장의 잘못된 인식부터 추방되어야 한다. 

중대재해 사망자의 대부분이 기본안전수칙만 지켰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은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고용노동부가 30일 내놓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따르면 작년 전체 사망자 중 ▲추락 42.4% ▲끼임 11.5 ▲부딪힘이 8.7%를 차지했다. 4대 유형별 사고 비중은 지난 20년간 50~60% 내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인에선 방호조치 불량이 30.9%로 가장 많고 작업절차 미준수(16.5%), 위험성 평가 미실시(16.1%), 근로자 보호구 미착용(15.6%) 순이다.

산업재해로 사망하거나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중상을 입는다면 해당 개인은 물론 가족의 행복이 무너지게 된다. 영세사업장은 사망자 보상금 마련과 사업주 구속 등으로 존폐의 기로에 놓이기도 한다. 이제라도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에 국가적 역량을 집결해야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에 앞서 선진국들은 촘촘한 규제와 처벌만으로는 중대재해를 줄일 수 없다고 판단, 1970년대부터 스스로 재해를 예방하도록 유도했다. 영국은 ▲자기 규제 ▲자기 통제 ▲자기 모니터링에 기반을 둔 ‘자기규율예방체계’로 전환했고 독일도 노사 자치 입법을 통해 ‘재해예방규칙’을 제정했다. 경제적 제재를 통해 중대재해를 예방하려는 동기를 부여했고 제재의 실효성도 확보했다. 영국이 자기규율 예방체계에 기반한 산업안전보건법을 1974년 제정한 뒤 5년 만에 사고사망만인율이 30% 줄어들었다고 한다.

중대재해 감축 추진 방향 (인포그래픽제공=고용노동부)

뒤늦게나마 정부가 그간의 ‘처벌·감독’ 단계에서 탈피, 내년부터 26년까지 ‘자기규율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 각종 제도를 고치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다. “내가 해야 하기에 규칙을 따른다”는 수동적·타율적 규제에서 “내가 원하기 때문에 규칙을 따른다”는 능동적·자율적 규제로 넘어가야만 산업안전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노사가 함께 현장 안팎의 각종 유해·위험요인을 스스로 파악, 개선대책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위험성평가’를 23년 중 300인 이상 대기업부터 의무화하고 24년에는 50인 이상 기업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은 늦었었지만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기업들은 ‘아차사고’와 실제 사고를 토대로 실질적으로 사고 발생 위험이 있는 작업이나 공정을 중심으로 위험성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위험성평가는 국제적으로 안전보건관리의 초석으로 평가받는 제도이다. 한국은 13년 도입했지만 현장에선 사실상 사문화됐다. 여기에는 고용부의 잘못이 컸다. 고용부는 위험성평가 실시 여부에 관계없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그대로 적용했다. 자기규율 방식과는 동떨어진 법률과 제도를 고치지 않아 사업장에선 이를 시행할 유인이 전혀 없었다. 매년 2~3만개소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산업안전감독에서도 사고 다발 요인을 찾기보다는 안전관리자 선임 여부나 교육 실시 등 적발하기 쉬운 서류상 점검과 처벌에만 중점을 두었다. 위험성평가는 어렵고 힘들다고 인식이 깔려 있는데다 근로자의 참여도 저조했다. 결국 대기업은 ‘서류 작업’으로만 대응했고 중소기업은 내부역량 부족으로 안전관리를 방치하거나 포기해버렸다. 

고용부는 위험성평가가 산업현장에 하루속히 안착되도록 산업안전법령과 감독 체계를 전면 정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산업안전 정기감독을 위험성평가 점검으로 바꿔 실시 여부를 확인하고 자체 안전보건관리규정 이행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 등을 살펴보기로 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안전보건 수준이나 위험기계 보유 현황 등을 고려해 컨설팅과 재정지원 사업으로 연계하겠다는 방안은 현실과 부합되는 조치이다.

안전보건기준규칙을 24년까지 처벌 규정과 예방 규정으로 분류한다는 방침도 눈에 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령은 무려 1200여개 조항에 이른다. 지나치게 방대한데다 세세하게 규정돼 있다보니 현장 수용성이 낮다. 자발적으로 재해 예방 역량을 형성하려는 동기가 생길 수 없다.

고용부는 "고소작업에 대해서는 추락방치조치를 해야 한다"와 같은 필수적으로 지켜야할 핵심규정의 처벌 규정은 유지하지만 산재예방을 위해 선택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내용은 예방규정으로 바꾸기로 했다. 추락방지를 위한 안전난간, 안전대, 추락방지망 등 설치 기준에 관한 세부내용은 고시나 기술가이드로 제공한다. 이리 되면 사업장별로 고유한 특수성에 따라 보다 효율적인 재해 예방 방안을 수립, 실천에 옮길 수 있다. 이런 토대 위에서 노사는 보다 적극적으로 안전보건활동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기업의 가장 큰 불만이었던 중대재해처벌법의 불확실성을 해소한다는 방침이 주목된다. 위험성평가의 적정한 실시와 재발방지대책 수립·시행 등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핵심 사항을 중심으로 처벌요건을 명확화하겠다는 것이다.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은 기업에 상한 없는 벌금형을 부과한다. 이로 인해 매출액의 8.6배의 벌금이 부과된 사례도 있다. 안전보건 조치를 확보하지 않은 사업의 불법적 이익을 환수하는 방식의 경제적 제재를 통해 중대재해 예방의 동기를 부여하고 안전보건 분야 투자도 촉진하고 있다.

고용부는 노·사·정이 추천한 전문가들로 내년초 ‘산업안전보건법령 개선 TF'를 구성, 해외 선진국 사례와 중대법 수사·기소 현황 등을 통해 제재 방식을 개선하고 체계도 정비할 방침이다. 

현행 규정처럼 형사처벌 수준만 높다면 중대재해 사고가 나자마자 최고경영자의 책임 모면 또는 감경을 위해 회사돈을 들고 대형 로펌만 찾을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 예방과 경제적 제재의 실효성을 보다 높이기 위해 과징금 등 경제벌 전환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다.
 
중대재해를 줄이려면 전체 사망사고의 80.9%를 차지하는 50인 미민 사업장의 안전관리 역량을 대폭 끌어올려야 한다. 고용부가 예시한 것처럼 ▲창업 6개월 이내 또는 고위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안전일터 패키지’ 프로그램 제공 ▲50인 미만 노후·위험공정 개선 비용을 지원하는 ‘안전리모델링 사업’ 추진 ▲소규모기업이 밀집한 주요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공동산업보건관리자 선임 지원 등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필요가 크다.

고용부는 이날 "근로자에게 안전은 ‘권리이자 의무’이며 근로자의 안전한 작업행동이 습관화 될 때 선진국 수준 달성이 가능하다"며 사업주의 노력과 근로자의 주의의무가 결합되어야만 중대재해의 원천적 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현장에서의 안전보건 참여활동이 보다 활발해지려면 노동자의 작업중지와 안전제안부터 활성화되어야 한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 3만5168달러에 걸맞은 안전선진국이 되려면 기존 사고방식과 절연하는 용기와 결단이 요구된다. 개선대책을 지속적으로 실행에 옮기면서 부작용을 보완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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