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차상근기자
  • 입력 2015.11.26 18:46

주요 보험사 사옥

“보험 규제가 폐지돼 보험산업의 경쟁력이 제고되겠지만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회사는 이전보다 더 힘든 상황을 맞을 것이다”

보험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18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을 대한 평가를 양날의 칼로 표현했다.

보험업계가 1993년 ‘보험상품 가격자유화’ 이후 22년만에 단행된 대폭적인 규제완화에 일대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보험빅뱅’으로 표현한다.

<자료=금융위원회>

‘보험산업 경쟁력강화 로드맵’은 산업의 패러다임을 소비자중심으로 돌리고 보험사간 경쟁을 유도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를 위해 보험상품의 가격규제를 없애고 사전규제를 사후규제로 바꾼다. 또 보험상품 다양성을 확대해 보험사간 경쟁을 촉발하고 판매채널을 통한 ‘양적 경쟁’에서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질적 경쟁’ 체제로 유도할 계획이다.

경쟁체제가 심화되면 도태하는 보험사도 자연스럽게 나올 전망이다.

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은 최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책전환으로 경쟁에서 도태되는 보험사가 생길 수 있으며 이는 국내 보험산업이 새로 도약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의 보험산업

국내 보험산업은 뉴노멀(New normal)시대를 맞아 절박한 구조개선 요구에 직면해 있다.

보험업계는 보험시장구조의 성숙, 저금리 및 저성장 고착화, 금융시장 불확실성 증대,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와 가구구조 변화 및 노후소득 관심 확대 등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있다.

또 보험산업의 사회적 역할요구 확대와 금융의 융∙복합화 진행, 금융개혁 시행 및 부채시가평가제 등도 보험회사들이 순탄하게 적응해야 할 과제들이다.

보험사들은 그동안 각종 규제와 이에 따른 업계의 현실안주 관행 등으로 상품공급의 다양성 부재와 위험보장이란 보험다운 상품공급 미흡이란 근원적 한계를 안고 있다.

실례로 손해보험의 경우 고유의 일반보험 비중은 낮은 반면 판매가 쉬운 장기상품 판매에 급급해 왔다. 장기상품 취급비중(수입보험료 기준)은 2006년 54.1%에서 2014년 71.3%로 늘었다.

보험사들은 아울러 신상품 경쟁보다는 마케팅 경쟁에 치중했다. 과당경쟁과 영업질서 문란행위 등은 산업의 역동성 상실은 물론 소비자 신뢰마저 추락시켰다. 캐나다나 미국의 보험설계사 1년 정착률이 각각 85%, 65%에 달하는데 반해 국내는 40%에 그치는 데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사전적 규제가 업계를 옭아매고 있는 탓에 효과적∙선진적 자산운용 능력도 배양하지 못해 글로벌 경쟁력 취약 구조는 심화돼 왔다. 해외영업비중 10% 이상, 진출국가 3개국, 수입보험료 100억달러 등의 조건을 갖춘 국제보험그룹(IAIG)에 등록된 회사가 아직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는 주된 배경이다.

국내 시장점유율 2% 미만 회사가 전체 43개사중 절반에 가까운 20개에 달하는 것도 보험업계의 취약한 현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같은 업계 상황은 글로벌 컨설팅사의 보험관련 신뢰도 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캡 제미니가 2013년에 보험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30개 대상국중 한국은 15%로 꼴찌에 꼽혔다. 1위 미국의 경우 51%였다. 2012년 언스트&영의 조사 역시 7개국 가운데 7위에 그쳤다.

임준환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보험업계는 저성장 및 저금리 장기화, 자본규제 강화, 고령화, 시장성숙기 진입 등으로 어려운 경영환경에 처해있다”며 “과거의 경영행태를 답습하면 성장성과 수익성은 정체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계 8위, 덩치만 큰 보험시장, 질적성장 시대로

보험업계에서는 끊임없이 규제 및 감독에 대한 금융당국의 적극적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해 왔다.

업계 자체적으로도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생존과 중장기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자료=보험연구원>

업계 한 고위 임원은 보험사들 스르로 경영목표를 기존의 시장점유율 확대에서 장기이익 제고로 주축을 바꾸고 비차익중심의 손익구조를 위험률 차익중심으로 서둘러 변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자산관리사업 강화, 해외진출을 통한 수익성 개선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해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열린 한 심포지움에서 “국내 보험산업이 경쟁력을 더 높이려면 가격자유화와 판매과정의 소비자 보호 강화, 판매채널의 다양화 등이 우선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업계의 공통적 위기의식 속에서 금융위의 ‘보험산업 경쟁력 제고 로드맵’은 업계의 숙원이기도 하지만 이전에 겪지 못했던 정글 속 생존경쟁으로 보험사들을 몰아넣을 전망이다. 업계는 이를 통해 적자생존의 법칙에 적응하며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 

도규상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은 “이번 개혁안이 지금까지 천편일률적이고 차별성도 없는 유사한 상품으로 판매∙마케팅 경쟁에 치중하던 시대에서 혁신적이고 새로운 상품∙서비스가 다양한 가격으로 제공되는 ‘질적 경쟁’의 시대로 업계를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보험산업이 경쟁촉진과 신뢰회복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윤성훈 보험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위험자본 관리, 상품개발 다양화, 자산운용의 체계적 관리체제 수립 등이 시급하며 판매자책임 강화를 통한 신뢰 제고도 중요하다”면서 “저성장 고착화 및 금융개혁에 따라 경영 리스크가 커진 중소형보험사들은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경쟁력 제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상품개발 능력도 없고 판매채널이나 자산운용능력에서도 절대열세일 수밖에 없는 중소형사들로서는 이전보다 더 가혹한 절체절명의 상황을 맞게 됐다. 서두러 인수합병에 나서고 내부역량 강화에 몰두해 환골탈태의 길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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