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1.16 15:49
(로고제공=각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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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저축은행 직원들의 고객돈 빼돌리기가 도를 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가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고객은 5000만원까지만 저축은행에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 신뢰를 잃은 저축은행에 예금자보호한도를 벗어나는 돈을 예금한다면 주위에서 어리석다고 비판 받을 수 있다. 직원이 고객 연락처를 만기가 오기 전 멋대로 변경한뒤 만기가 지나 미해지된 예금을 임의로 해지, 인출하는가 하면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대출되는 거액을 중간에 가로채는 등 간 큰 저축은행 직원들이 하나둘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한국투자저축은행에서 PF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은 수개월에 거쳐 8억원대의 PF 대출 송금액 일부를 착복했다. 이에 앞서 작년 모아저축은행 54억원, 페퍼저축은행 3억원, OK저축은행 2억원 등의 횡령사고가 터졌다. 2021년에 KB저축은행에서 94억원에 달하는 횡령 범죄가 드러났는데도 작년에도 대형 금융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것이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자잘한 사고까지 포함한다면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저축은행을 관리감독하는 금융감독원부터 부실검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도대체 현장 검사에 나가서 무엇을 살펴보고 확인하는가.

대출브로커가 개입한 사기성 대출이 저축은행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금감원은 자산순위 1, 2위를 달리는 SBI저축은행과 OK저축은행을 비롯해 페퍼저축은행(4위), 에큐온저축은행(6위), OSB저축은행(11위)등 업계 상위권 5개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시검사에서 수천억원대의 작업대출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1100억원대의 작업대출 정황이 파악되면서 금감원은 업계 전반을 대상으로 관련 검사를 작년말까지 마친 상태다. 작업대출조직은 무직자나 신용불량자가 은행 돈을 빌릴 수 있도록 서류를 조작 또는 위조한 것은 물론 주택담보대출이나 가계대출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개인 차주를 사업자로 둔갑시켜 사업자용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알선해주고 대출 성사에 따른 거액의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범죄와 관련, 해당 저축은행 임직원들이 관련 업무에서 잘못한 것이 적발되면 제재를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만에 하나 대출조직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까지 드러난다면 공신력이 송두리째 무너질 우려가 높다.  

이런 위기 상황을 맞아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중앙회, 저축은행 업계와 구성한 태스크포스에서 논의해온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개선방안'을 마련, 15일 발표했다. 저축은행의 잇단 사고는 ▲고위험업무에 대한 내부통제 실패 ▲취약한 내부통제 체제 및 통제기능 미작동 ▲형식적인 내부통제조직 운영 및 사고예방조치 미흡 ▲내부통제 준수 문화 미정착 및 업계 자정기능 취약으로 빚어졌다는 것이 분석 결과이다.

(그림제공=금융감독원)
(그림제공=금융감독원)

금감원에 따르면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보다 보다 체계적인 내부통제가 이뤄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은행에서도 지난해 우리은행 701억3000만원과 부산은행 14억9340만원 등 724억6580만원의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아무리 촘촘한 감시와 통제의 그물을 치더라도 금융범죄 자체를 다 막을 수는 없다는 점은 상식이다. 저축은행이 비판 받는 이유는 PF대출과 개인사업자대출, 자금관리, 수신업무 등 고위험업무에서 사고를 미리 막을 시스템을 확실히 구축하지 않았던데다 그나마 있는 제도마저 인건비 절감 등을 핑계 삼아 실제 운영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사고가 가장 잦은 PF대출과 관련해 영업, 심사, 자금송금, 사후관리에서 담당 부서 또는 담당자를 명확히 직무분리한다는 금감원 방침이 주목된다. PF대출 영업담당자는 기성고(旣成高)에 따른 대출승인이나 자금송금 등 복수 업무를 담당할 수 없도록 했다. 자신이 수사한 피의자에 대한 무리한 기소를 막기 위한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 원칙을 연상케 한다. 지극히 당연한 조치인데도 그간 집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저축은행의 직무유기이다. 

금감원은 PF대출금을 송금할 때 수취인을 임의로 변경하지 못하도록 전산을 차단하고 PF대출금은 미리 등록된 지정계좌로만 입금할 수 있도록 제한하기로 했다. 만약에 지정계좌를 등록하거나 변경할 경우 담당자와 책임자, 승인자 등 3단계 확인을 거치도록 한다. 이런 조치는 PF영업과 자금송금 업무간 직무분리가 미흡했던데다 수신계좌를 전산입력하면서 수취인을 멋대로 바꾸거나 자금인출요청서를 위조해 대출금을 횡령하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이 숱한 사고에 불구, 직원들이 이런 수법으로 남의 돈을 꿀꺽할 수 있도록 사실상 방치해왔다는 점이 새삼 드러난 것이다. 부뚜막 근처에 생선을 방치하고 고양이가 먹지 않기만을 바라는 처사와 다를 바 없다.  

개인사업자대출 사고 예방을 위해 대출 증빙서류는 국세청의 전자세금계산서, 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등 진위 확인이 가능한 자료로 받고 만약 확인이 어렵다면 해당 기관에 요청, 자료를 받거나 현장방문과 유선 통화 등으로 재확인하도록 한 것도 눈에 띈다. 수신업무 담당자에 한해 수신업무 전산시스템에 접근할 권한을 부여하고 고액 수신거래의 경우 3단계 승인절차를 설정하며 본점에서 수신잔액을 정기적으로 고객에게 통지하도록 한 방침도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사고를 막으려면 고위험 직무에서 일하거나 같은 직무를 장기간 맡은 직원이 운영과정에서 어떤 꼼수를 저질렀는지를 타인이 확인할 수 있도록 명령휴가제와 순환근무제가 필요하다. 그간 저축은행은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명령휴가제 대상을 좁혀놓은데다 순환근무제 실시비율도 낮았다. 금감원이 고위험직무담당자는 물론 본점과 지점의 동일 부서·직무 장기근무자를 반드시 명령휴가 대상자로 포함시키도록 한 결정은 사고예방을 위해 꼭 필요하다. 3영업일 이내에서 연 1회 이상 실시하고 명령휴가 실시율과 특명감사 결과를 감사에게 보고하도록 한 것도 적절하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그간 맡아온 일에 대한 전문가의 확인이 이뤄진다는 점이 직원들에게 널리 각인되고 이런 과정에서 비리·비위 혐의자가 발각된다면 금융사고에 가담할 유인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견제와 균형이야말로 횡령이나 배임을 원천봉쇄하는 수단이다. 이를 위해 내부고발제도의 실효성을 높인다는 금감원 방침이 저축은행에서 충실히 이행되어야 한다. 직접적인 손실감축금액으로 정해져 있는 기존 포상범위를 합리화하는 등 내부고발자를 우대하는 풍토 조성이 요구된다.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직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체감사시 고발의무 위반을 점검항목에 포함시켜 위반 사실이 명백히 밝혀진 직원의 경우 반드시 징계하는 등 사후조치도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저축은행은 1분기 중 금감원의 개선방안을 자체 실정에 맞도록 내규에 반영, 이행해야 한다. 누적송금액을 기준으로 전결권을 신설하고 신분증 사본 판별시스템을 도입하며 단말기 IP-업무당담자 연동제와 생체인식시스템 도입하는 등의 조치는 전산개발을 마치는 대로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저축은행 업계는 그간 발생한 사고유형에 대한 엄밀한 재분석을 거쳐 재발방지책을 수립하고 날로 고도화되는 금융 디지털화의 허점을 악용해 나올 만한 신종 범죄수법을 예상하고 이를 막는 기법까지 강구해야 한다. 사고예방 문화 정착을 위한 교육 강화나 사고예방 캠페인 등 요식행사에 나설 시간에 이런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때다. 

도박이나 주식, 게임 중독 등으로 검은 돈의 유혹에 빠질 직원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저축은행 업계는 조직 내부자가 의심스런 행동에 들어가는 순간 경고신호를 보내고 반복될 경우 위험신호를 발동하는 인공지능 솔루션 개발에도 적극 나서는 등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해 전사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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