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숙 기자
  • 입력 2023.01.19 18:00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의 사의 표명이후 전경련의 쇄신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전경련은 일반적으로 재계의 이익단체로 알려졌지만 1961년 설립 이래 활동을 보면 오히려 경제·사회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음을 알게 된다. '재계의 맏형'이라는 닉네임은 거저 붙여진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전경련 공채 13기로 입사해 전경련에서 상무이사를 지낸 뒤 SK, 금호, 효성 등에서 사장 등 고위 임원으로 활약했던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가 선정한 전경련의 빛났던 10대 순간을 연재한다. 쇄신을 요구받는 전경련의 향후 진로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지성파인 SK그룹의 최종현 회장이 1993년 2월 전경련 회장으로 취임했다. 최 회장은 전경련 회장 취임 전 한국경제연구원장으로 재임하면서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대기업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우선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무엇인가를 해 줘야만 중소기업이 성장·발전할 수 있다는 당시의 일반적 인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아울러 세계 경제의 이른바 국경 없는 전쟁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했다. 

또 오너들의 모임으로 인식되어 온 전경련에 전문경영인들의 경험과 경륜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궁극적으로 재계의 문제는 외부의 간섭이나 규제 없이 자율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방향으로 재계의 총의를 모았다. 재계 총리라는 전경련 회장의 위상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는 우선 중소기업의 문제는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하자며 시각의 전환을 추진했다.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경영, 기술 등에 전문적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 '중소기업연구원'을 중소기업중앙회 산하에 설치했다. 아울러 중소기업의 자금난 완화를 위해 전경련 회원사를 중심으로 290억원을 출자해 1995년 중소기업 팩토링 회사인 ㈜기협파이낸스를 설립했다. 

삼성그룹도 전경련의 중소기업지원 정책에 동참해 경기도 용인에 인력개발 훈련원을 설치해 기부했다.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정보, 인력, 자금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유도하고 대·중소기업 간 서로 주고받는 대등한 관계를 설정하자는 취지였다.

최 회장은 1993년 3월 9일 기업이 책임 있는 경제활동의 주체로서 자율적인 조정을 통해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기업상을 구축하기 위해 '기업자율조정 위원회'를 설치했다. 대기업 간 갈등, 대·중소기업 간 분류 등 몇 건의 사항을 자율적으로 해결한 전경련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위한 컨소시엄을 2개월 동안의 숙의를 거쳐 성공적으로 매듭지었다. 

아울러 1998년에는 기업의 핵심 역량 집중과 과잉투자 해소를 위해 반도체, 석유화학, 정유, 선박용 엔진, 발전설비, 항공기 등 7개 업종에 대한 대기업 간 사업 교환, 이른바 '빅딜'을 자율 조정에 의해 끌어냈다.

재계는 근본적으로 경제활력 회복과 경쟁력 강화는 경제계가 스스로 하는 길밖에 없다는 인식 아래 1993년 9월 국가경쟁력강화 민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전경련 회장단뿐만 아니라 30대 그룹 기조실장, 업종별 경제단체 등 전경련 외곽의 조직까지 모두 망라해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과제에 재계가 완전히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민간위원회는 우리나라의 경쟁력 실태를 점검하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낙후된 지방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지방순회 간담회도 개최했다. 

민간 경제계의 노력에 힘을 보태기 위해 정부도 2000년부터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경쟁력 강화위원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고, 여기에서 도출된 대책은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서 빛을 발했다.

최종현 회장은 1994년 2월 제2이동통신 단일 컨소시엄 구성은 경제계의 자율조정 능력과 단합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준 좋은 기회였다고 후일 언급했다. 또 정부의 개입이나 규제 없이 시장의 실패를 예방하거나 사후 보완하는 방법으로 기업 간의 자율 조정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기업의 이미지 개선에도 큰 효과를 거뒀다. 

탐욕스러운 기업의 이미지 때문에 '규제'가 만들어졌다면, 자율적 구조조정은 '규제 완화'라는 재계의 숙원을 해소하는 또 다른 성과를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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