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숙 기자
  • 입력 2023.01.21 09:00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의 사의 표명이후 전경련의 쇄신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전경련은 일반적으로 재계의 이익단체로 알려졌지만 1961년 설립 이래 활동을 보면 오히려 경제·사회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음을 알게 된다. '재계의 맏형'이라는 닉네임은 거저 붙여진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전경련 공채 13기로 입사해 전경련에서 상무이사를 지낸 뒤 SK, 금호, 효성 등에서 사장 등 고위 임원으로 활약했던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가 선정한 전경련의 빛났던 10대 순간을 연재한다. 쇄신을 요구받는 전경련의 향후 진로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지원을 받은 1997년 12월, '국가부도의 위기'는 넘겼다. 그러나 기업 부도가 늘어나고 실업이 급증했다. 실물경제의 기반이 약화됐다. 무엇보다 50여 년 동안 한국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됐던 '하면 된다'라는 자신감이 무너졌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지 못했다.

전경련은 때마침 대우 김우중 회장을 새로운 수장으로 맞이했다. 김 회장은 전경련의 1998년 1월 회장단회의에서 희망을 얘기했다. 그는 "해외에 나가보니 환율이 좋아져 돌멩이도 수출할 수 있겠다"며 경상수지 흑자로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자신감을 회복하면 한국 경제는 1년 내로 IMF 관리체제를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보다 앞서 재계의 주도로 금 모으기 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대우는 전부터 금 거래를 많이 했는데, 사장된 있는 금을 모아서 팔면 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것이 KBS를 통해 국민운동으로 승화됐다. 

신혼부부들이 결혼반지를 내놓고, 운동선수는 금메달을 기증했으며, 김수환 추기경은 추기경 서품 시 받은 금십자가를 내놓기도 했다. 금 모으기 운동의 결과 전국적으로 351만명이 참여해 총 227톤의 금이 모였다. 이렇게 모인 금을 수출해 한국은 22억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1998년 상반기에 한국의 수출은 778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0% 늘어났다. 그러나 금 수출 18억달러를 제외하면 1.4% 감소한 760억달러에 머물렀다.

중요한 것은 이런 수치상의 성과보다는 해외 채권자들의 태도 변화였다.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높아졌다. 경상수지가 흑자가 됐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이 절망감을 벗어나 자신감을 회복하는 원동력이 됐다.

여기에 자신을 얻은 재계는 1998년 3월 신병 치료 중인 최종현 회장의 후임으로 김우중 회장을 차기 전경련 회장으로 선임하고 곧바로 500억달러 경상수지 흑자 달성 방안을 마련했다. 5대 그룹의 경제연구소가 기획안을 짜고 7개 종합상사가 실행했다. 1998년 초에 당시 정부 전망치는 28억달러 흑자였다.

정부의 소극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재계는 전경련을 중심으로 수출 총력전에 들어갔다. 삼성, 현대, 대우, LG 등 주요 그룹들은 1998년 중 수출 목표를 20~45% 이상 올려잡고 수출에 매진했다. 또 7대 종합상사에 중소기업 수출 지원 전담조직을 설치하고 유망 중소기업의 상담 알선, 법률자문 등에 나섰다. 

이 같은 노력으로 국내 종합상사의 중소기업 수출 알선 실적은 1998년 5개월간 23억4000만달러에 달했다. 그래도 정부 전망치는 200억달러를 넘지 못했다. 100억달러 정도면 다행 아니냐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결국 1998년 무역수지는 재계의 예상대로 갔다. 1998년 한해의 성적표는 416억달러의 무역흑자, 이듬해 1999년에는 284억달러 흑자로 2년 동안 무려 700억달러가 넘는 성과를 거뒀다. 또 자산 매각을 통한 해외투자 유치액은 1998년 88억달러, 1999년 155억달러였다. 무역흑자와 자산 매각으로 들어온 외화가 1000억달러에 달한 것이다.

외환위기 발생 당시 IMF에서 빌린 국제금융은 총 210억달러다. 결국 정부는 기업과 국민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2001년 8월 IMF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고 IMF 관리체제를 예정보다 일찍 끝낼 수 있었다. 

1998년 마이너스 5.5%까지 떨어졌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1999년 11.3%까지 치솟았다. 바닥으로 떨어졌던 국민들의 자신감도 덩달아 올라갔다. 재계가 제시했던 국제수지 500억달러 흑자론은 숫자가 아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국민적 자신감의 회복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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