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숙 기자
  • 입력 2023.01.23 09:00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의 사의 표명이후 전경련의 쇄신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전경련은 일반적으로 재계의 이익단체로 알려졌지만 1961년 설립 이래 활동을 보면 오히려 경제·사회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음을 알게 된다. '재계의 맏형'이라는 닉네임은 거저 붙여진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전경련 공채 13기로 입사해 전경련에서 상무이사를 지낸 뒤 SK, 금호, 효성 등에서 사장 등 고위 임원으로 활약했던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가 선정한 전경련의 빛났던 10대 순간을 연재한다. 쇄신을 요구받는 전경련의 향후 진로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지난 2016년 12월 7일.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회장 9명이 국회에 나왔다. 최순실의 국정농단관련 국회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됐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 기업은 피해자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등 정체불명의 공익법인에 자신들의 자산을 강제적으로 출연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문회장의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기업들이 정부의 혜택을 받으려 국정농단에 협조했다는 추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청문회가 끝난 후 삼성은 그룹의 중추 기구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또 현대차, 삼성, LG, SK 등 주요 그룹이 모두 전경련을 탈퇴하면서 재계의 본산으로 불리며 경제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전경련은 해체 위기에 몰렸다.

사실 전경련은 1961년 출범 때부터 정치자금과 정경유착이라는 과제의 해결에 매달려 왔다. 정치자금을 내고 반대급부로 혜택을 받겠다는 정경유착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경유착의 해소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협의회는 4.19혁명 이후 탄생한 민주당 정부가 무려 5만명이 넘는 기업인을 부정축재자로 규정한 '부정축재처리법'의 시행을 막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72개 기업, 공무원 및 정당인 600여 명으로 부정축재법 대상을 축소시켰다.

5.16쿠데타 이후 구금됐던 기업인들이 소수에 그칠 수 있었던 것은 경제협의회가 민주당 정부 하에서 기울였던 노력의 성과였다. 경제협의회를 계승한 경제인협회의 중진들은 정치자금을 양성화·제도화해 이 나라의 정경유착 논쟁을 없앨 구상을 하고 있었다.

당시 이정림 회장(2~3대 전경련 회장)은 전경련 사무국장으로 갓 취임한 김입삼 국장에게 "정치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우리 경제인은 돈을 낼 생각이 있다. 다만 제발 뺨 맞고 형무소에 가게는 하지 않게 해 주시오"라고 당부했다는 증언도 있다. 자유당 말기와 5.16 군사정부가 경제인에 가한 처사가 너무나 분해서 눈물을 머금고 한 호소였다. 

이에 따라 1965년 2월 경제인협회주도로 '정치자금 양성화'가 입법화됐다. 그러나 법의 제정 1년이나 지나도록 기탁된 것은 단 한 건, 1만20원에 불과했다. 이것도 경기도 화성시(당시 군) 농민의 모임에서 15명이 품삯을 모아 기탁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치자금을 양성화해 정경유착의 어두운 그림자를 씻어 내자는 재계의 의지는 권력에 의해 사정 없이 유린당했다. 때로는 강제로, 때로는 자발적으로 재계는 을의 위치에서 정치자금을 냈고, 그 대가로 권력을 쥔 다른 갑에 의해 처벌받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재계와 정치권의 암묵적인 거래는 1985년 국제그룹이 권력에 밉보여 해체되면서 갑을관계에서 주종관계로까지 급락했다. 당시 재계 순위 7위의 대기업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되면서 공포에 시달린 기업들은 권력의 입맛에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당초 1983년 아웅산 순국사절을 위해 설립된 일해재단에는 1987년까지 600억원이 모금됐으나, 순국사절 유가족 성금은 정치자금으로 낙인찍혔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정주영 현대 회장이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갔고, 성금 모금을 지시했던 전두환은 일해재단 외에 2205억원의 뇌물수수가 밝혀져 무기징역이 선고되기도 했다.

전두환의 뒤를 이은 노태우 대통령도 정치자금을 강제로 모았다. 재임 시 기업으로부터 무려 5000억원가량을 모았다고 해 2628억원의 추징금이 선고됐다. 노태우에게 정치자금을 준 이건희 회장 등 기업인 35명도 기소됐다. 노태우 다음의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자신부터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나 무위로 그쳤다. 노무현 정권도 정치자금으로 곤욕을 치렀다. 

진보나 보수나 집권 과정에서 집권 후까지 그들은 기업을 자기들의 호주머니로 여기고 강제로 털어갔다. 그것이 정점에 이른 것이 최순실 국정농단 과정에서의 미르, K스포츠재단 출연이었다.

이제 권력과 기업의 관계는 돈을 매개로 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손뼉은 부딪쳐야 소리가 나고 알은 안팎에서 쪼아야 병아리가 나오는 법. 전경련 설립 당시부터 재계의 염원이었던 불법 정치자금으로부터의 해방과 건전한 정경관계의 정립은 분수령을 맞았다. 2016년 12월 7일은 역사에 어떤 의미를 남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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