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1.25 13:53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9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제6차 금융규제 혁신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9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제6차 금융규제 혁신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금융상품 판매·자문업자들은 일반금융소비자에게 투자성 상품의 계약체결을 권유할 때 위험등급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여야 한다. 정부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감독당국이 규율하는 투자성 상품 대상을 펀드와 유동화증권은 물론 구조화 예금, 투자성 보험상품까지 넓힌 유럽연합 등 선진국 흐름에 맞춰 금소법에 이런 규정을 두었지만 소비자에게 고지되는 위험등급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따로 없는 상태다.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위험등급을 산정하다보니 ELS(주가연계증권) 등 파생결합증권은 발행사의 신용도, 기초자산, 상품구조 등 여러 위험이 있음에도 이런 요인들이 위험등급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외화증권에 투자되는 상품인데도 환율변동의 위험성이 위험등급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금융위원회의 판단이다.  

투자성 상품은 시장가격 변동에 따라 상품의 가치가 바뀌면서 발생할 수 있는 원금손실 위험을 의미하는 '시장위험'이나 발행자의 채무불이행 등으로 원금손실이 나타날 수 있는 '신용위험'을 종합적으로 고려, 위험등급을 산정해야 한다. 이런 원칙에도 불구, 투자성 상품의 실제 위험도가 적절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따라 금융위가 지난 24일 '투자성 상품 위험등급 산정 가이드라인'을 마련, 발표한 것은 뒤늦었지만 소비자 알권리 신장 차원에서도 필요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금융사 별로 제각각이던 위험등급 산정 기준을 공통 기준에 맞춰 정비해 위험등급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금융위의 목표가 충실히 실현되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위는 이 가이드라인이  올 상반기 중 표준투자권유준칙에 반영되도록 한 뒤 오는 10월(잠정)부터 새롭게 판매되는 금융투자상품부터 적용한다는 시간표를 제시했다.

(표제공=금융위)
(표제공=금융위)

이에 따라 4분기부터 판매사는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모든 투자성 상품을 팔 때 위험도를 1~6등급으로 구분, 소비자한테 안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체 위험등급 산정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고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위험등급의 의미와 유의사항, 해당 등급 산정 사유 등도 함께 설명해야 한다. 신규 상품을 내놓을 때 위험등급의 적정성 평가와 검토절차를 반영하고 기존 상품의 경우 정기적으로 위험등급의 적정성을 점검하는 의무가 부여된다. 판매사는 각 위험등급별로 다른 색상으로 나타내는 등 고객이 각 등급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표시해야 한다. '6단계 신호등'으로 위험성을 알리라는 뜻이다. 현재는 파생상품이나 집합투자증권(공모·사모펀드) 등 고위험군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만 위험등급 설명의무가 적용되고 있다. 향후 판매사의 책임이 한층 커지는 것은 물론 투자성 상품을 팔 때 걸리는 시간도 지금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은행이나 증권사 등 투자성 상품 판매사는 상품을 설계한 자산운용사가 정한 펀드 위험등급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관행을 금융위가 없애기로 한 것이 주목된다. 금융상품 판매업자가 위험등급 산정의 주체라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다만 판매사의 숨통도 일부 열어놓았다. 판매사는 제조사가 정한 위험등급을 사용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제조사의 위험등급을 쓸 수 있고 판매사와 제조사의 등급이 다르다면 판매사는 해당 등급의 적정성에 대해 제조사와 협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판매사는 ▲기초자산의 변동성 ▲신용등급 ▲상품구조의 복잡성 ▲최대 원금손실 가능액 ▲환매와 매매의 용이성 ▲환율의 변동성 ▲그밖에 원금손실 위험에 미치는 사항을 고려해 위험등급을 산정해야 한다. 위험등급은 최소 6단계 이상으로 구분된다. 1등급 상품이 가장 위험하고 6등급 상품이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하다. 장내파생상품은 1등급으로 분류된다. 장외파생상품은 일반투자자에게 헤지 목적 거래만 허용되는 만큼 별도의 산정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금 손실 범위가 제한적인 상품인 금리스왑이나 옵션매수는 '주의', 통화스왑이나 옵션매도, 선도거래처럼 손실범위에선 제한이 없지만 구조가 단순한 상품은 '경고'로 분류된다. 이런 상품이 아니고 손실범위가 무제한이고 구조도 복잡하다면 '위험'으로 산정하라는 얘기다. 합리적인 분류기준으로 판단된다.  

공모펀드 위험등급 분류 (표제공=금융위)
공모펀드 위험등급 분류 (표제공=금융위)

설정 3년 미만의 공모펀드 중에서 ▲레버지리 등 수익구조가 특수해 투자시 주의가 필요한 집합투자기구 ▲최대손실률이 20%를 초과하는 파생결합증권에 주로 투자하는 집합투자기구는 1등급으로 분류된다. 고위험자산에 80% 이상 투자하는 집합기구는 2등급이다. 고위험자산이란  주식, 상품, 리츠, BB+ 등급이하 투기등급채권, 파생상품 등을 말한다. 

금융위가 제시한 원금보장비율별 등급도 눈에 띈다. 파생결합증권 상품 중 최대원금손실 가능금액이 20%를 초과하면 원칙적으로 2등급을 부여해야 한다. 원금손실 가능액이 20% 이하인 경우 3~5등급을 받는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원금보장비율이 95% 이상이면 5등급, 90% 이상~95% 미만이면 4등급, 80% 이상 90% 미만이면 3등급이다. 

외화표시 파생결합증권이나 외화표시 집합투자증권, 해외채권 같이 외국통화로 투자가 이뤄지는 상품의 경우 환율 변동성을 고려해 위험등급을 1등급 높이는 것이 원칙이다. 환율 리스크가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2개 등급을 높일 수도 있다. 

일반금융소비자에게 판매되는 모든 투자성상품이 가이드라인 적용대상이다. 지분증권, 채무증권, 집합투자증권, 파생결합증권, 파생상품, 신탁계약, 일임계약은 물론 변액보험, 특정금전신탁도 들어간다.

5대 증권사. 로고 (사진=각 증권사 홈페이지)
5대 증권사. 로고 (사진=각 증권사 홈페이지)

금융위가 상품별 위험등급 산정기준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세부평가기준까지 내놓은 것은 소비자 보호 증진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개별 금융회사가 이번 가이드라인과 향후 개정될 표준투자권유준칙에 따라 자체적으로 위험등급 기준을 마련하고 시행한다면 금융소비자는 자신이 사려고 하는 투자성 상품의 위험성을 보다 잘 이해하고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다만 판매 시간을 줄이기 위해  고객에게 태블릿PC에 뜬 각종 전자문서를 다 읽지도 못하게 하면서 서둘러 사인하도록 유도하는 관행이 지속된다면 상품별 위험등급을 정확히 알리려는 정책 의도는 처음부터 훼손될 우려가 적지 않다. 금융당국의 세심한 현장 관리가요구되는 이유다.

시장 평균 수익률보다 높은 이익을 얻으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소비자들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안전한 곳에 투자한다고 선전한 뒤 이를 지키지 않았던 금융범죄가 최근 빈발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옵티머스 사태는 희대의 금융사기극으로 악명이 높다. 대법원은 2018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며 1조3194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은 뒤 부실채권 인수와 펀드 돌려막기에 유용한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에게 징역 40년과 벌금 5억원, 추징금 751억7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지난 14일 확정했다. 2심에서 징역 20년과 벌금 5억원이 선고된 옵티머스 2대 주주 이동열씨와 징역 15년에 벌금 3억원이 선고된 윤석호 이사 등의 형량도 유지됐다. 2017년 6월 한국전파진흥원으로부터 100억원을 투자받아 옵티머스 1호 펀드를 조성한 뒤 손실이 날 염려가 없는 안전자산에 투자해 연 3%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을 부각, 최소 3200여명으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한 뒤 2020년 6월 만기가 된 3개 상품에서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투자자들은 옵티머스자산운용이라는 제조사와 이런 상품을 판매한 증권사 등의 설명을 믿고 소중한 돈을 맡겼다가 큰 손해를 입었다. 옵티머스는 2조원 이상의 펀드를 판뒤 1조5000원은 환매했지만 나머지는 부동산 개발사업이나 비상장 부실기업 주식, 옵티머스 관련 회사 발생 회사 채권 등에 투자돼 대부분 회수하지 못했다.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중단금액은 1조6000억원에 달했고 기업은행의 디스커버리펀드 환매중단 규모는 761억원을 기록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금융회사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 2심 재판부는 "증권 등 전문직 종사자가 직무수행 기회를 이용해 고도의 지능적 방법으로 전문적 수법을 창출해 범죄를 저질렀고 그러한 범행을 계속하기 위해 장부 조작과 문서 위조 범행을 적극 도모하는 등 그 범행수법이 매우 불량했다"고 판결한 바 있다.

금융회사들이 감독당국의 지침에 따라 위험등급을 산정한다 해도 사리사욕에 눈이 먼 일부 직원들은 투자성 상품의 부실을 알고도 판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정기적인 점검 과정에서 위험성을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 아무리 촘촘하게 규제의 망을 만들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은 어디든지 있는 법이다. 금융사기가 재발되지 않도록 금융사의 자체 감시는 물론 감독당국의 주기적이고 엄격한 감사가 이뤄져야 한다. 고객으로 가장하고 매장을 찾아가 물건을 사면서 직원의 서비스 등을 따지는 '미스터리 쇼퍼'처럼 금융감독원 직원들의 철저한 현장 점검이 올해말부터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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