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2.03 15:11
추경호(오른쪽 두 번째) 경제부총리가 3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추경호(오른쪽 두 번째) 경제부총리가 3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지난해 9월까지 늘어났던 수출이 10월부터 감소세로 바뀐뒤 갈수록 낙폭이 커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어 걱정이다. 전년 동월 대비 수출 증감률은 지난해 10월 -5.8%에서 11월 -14.1%로 확대된뒤 12월 -9.6%로 다소 줄었다가 지난 1월에는 -16.6%에 달했다. 전체 수출의 20% 가량을 차지하는 반도체의 1월 수출 실적이 44.5% 줄어든데다 디스플레이와 철강도 각각 36%, 25.9% 감소했기 때문이다. 15대 주력 수출품목 중에서 자동차, 선박, 배터리 등 5대 품목만 증가한데 비해 10대 품목은 뒷걸음질쳤다. 역대 1월 수출에서 최고 실적을 거둔 작년 1월 기록에 따른 기저효과까지 겹쳐 1월 수출은 462억6600만달러에 머물고 무역수지적자는 126억8900만달러에 달하는 '굴욕'을 맛보았다.

IT기기 수요 급감으로 지난 1월 D램 고정가격은 1.81달러로 1년전보다 47% 하락했고 낸드도 4.14달러로 14% 떨어졌다. D램 고정가는 작년 4분기 2.21달러에서 올해 1분기 1.76달러, 2분기 1.56달러, 3분기 1.48달러로 계속 하락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상반기 중에는 반도체 업황이 지속적으로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빠르면 하반기부터 서버와 모바일용 고용량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발생하고 주요 메모리 기업의 감산 효과도 나타나면서 일부 회복이 기대될 뿐이다. 메모리반도체 업계를 꽁꽁 얼린 겨울이 언제 끝날지 예단하기 어렵다.

이런 비상상황을 맞아 정부는 3일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를 갖고 경기반등의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고 경제활력을 살려나갈 수 있도록 기업들의 수출과 투자 지원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다. 최소한 오는 6월까지는 우리 경제 여건이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에 따른 결정이다. 이에 따라 '장관급 수출투자대책회의'를 신설, 격주로 업종별 수출·투자여건을 점검하고 대책을 내놓기로 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암울한 수출 전망만큼이나 투자 동향과 전망도 어두운 편이다. 작년 4분기 설비투자는 3분기 대비 0.1% 감소로 전환됐다. 2021년 8월 이후 기준금리가 2.75%포인트 오르고 회사채 금리도 2.4%p 상승한데다 경기도 둔화하는 상황에서 상당수 기업들이 투자를 보류하거나 축소에 나섰기 때문이다. 올해 설비투자 역시 3.1% 줄어들 것으로 한국은행은 전망했다. 산업은행은 제조업의 경우 8.6%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정부는 이날 발표한 '제조업 업종별 수출·투자지원 방안'을 통해 설비와 연구개발, 외국인 투자 등 3대 투자를 활성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첨단산업 대규모 투자프로젝트에 대해 입지·인허가·인프라를 종합지원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상반기 중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지정한다. 무엇보다  반도체 등 대형 첨단산업에서 투자가 제때 이뤄질 수 있도록 인접 지자체간 '상생인센티브' 체계를 마련하고 ‘인허가 타임아웃제’도 도입한다는 것이 주목된다. 인허가 신속처리를 요청한 이후 60일 동안 처리하지 않으면 인허가를 완료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이다. 공공기관 예비타당성 조사 특례 조치까지 동원, 신속한 투자이행을 지원한다는 것도 눈에 띈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SK하이닉스가 2019년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기 위해 공장 부지를 선정했음에도 수도권규제 예외 적용과 토지 보상 지연, 용수와 전력 공급 인허가를 둘러싼 인접 지자체의 과대한 반대급부 요구 등으로 올해 상반기에야 착공에 들어갈 예정인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간 착공 시기가 계속 늦어졌던 만큼 오는 6월 이전에 공장 건설에 들어갈 수 있을지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 용인 공장 가동이 2027년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 결정에서 반도체 생산까지 무려 8년이 걸리게 되는 셈이다.

SK하이닉스가 용인 투자를 발표할 당시 정부와 지자체는 적극 협력을 다짐했지만 결국 말 잔치로 끝났다. 이처럼 신뢰를 저버리는 행정이 지속되고  첨단산업 투자와 관련된 거북이 인허가 관행이 계속된다면 한국은 대만, 중국, 미국과의 속도전에서 매번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투자 프로젝트를 선도사업으로 지정, 종합지원시스템을 마련하기로 한 것은 비록 뒤늦었지만 절실한 조치이다. 이를 위해 기존 기술조정위원회를 전략산업조정위원회로 확대하고 기술·입지·인력·투자 등을 통합 조정할 방침이다.

수출에 못지 않게 투자도 중요하다. 제조업 10대 업종은 올해에도 작년과 비슷한 100조원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민간투자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는 말이 아닌 행동과 실천으로 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혁파하고 지자체의 협력과 협조도 주도적으로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올해 5조6000억원에 이르는 전략적 R&D 투자의 7할 이상을 반도체, 미래 모빌리티 등 11대 산업에 투입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고 정부출연연구원의 기술 양도 허용 및 기술창업 활성화로 스타연구자를 배출하기로 했다. 아울러 올해 첨단·주력·미래산업에서 100대 외국인 핵심기업을 대상으로 300억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국내 수요기업과 연계한 전담팀을 구성하고 유치에 성공하면 보상 수준도 높일 방침이다. 국내 산업공동화 우려를 해소하려면 유망 기술을 지닌 외국기업이 한국을 아시아지역의 생산 및 연구개발 기지로 육성할 수 있도록 보조금 지급에도 적극 나서야할 것이다.

정부는 올해 수출 6800억달러 달성과 투자활성화를 위해 ▲부처별 1급 간부 '수출·투자책임관' 지정 ▲업종별 관계부처 참여하는 ‘수출·투자 비상대책반’ 가동 ▲주무 부처별로 주요 업종 수출·투자실적 상시점검 및 대응방안 강구에 나서기로 했다. 장·차관이 여러 산업현장을 찾아가 애로를 듣고 '원스톱 수출·수주지원단'과의 협업을 통해 해결방안을 빨리 강구하는 등 현장행보도 강화할 방침이다. 모두 필요한 조치이지만 전시행정에 흘러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실적 확인 작업이 수출 업무에 매진 중인 기업 실무자들의 보고 부담만 늘리는 부작용을 낳아서도 곤란하다.  

중국은 작년말 코로나 방역 완화이후 환자가 일시적으로 급증했다가 최근 줄고 있다. 그간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적으로 나타나면서 내수가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국제통화기금은 최근 리오프닝에 따른 수요 증가 등을 감안.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을 당초 3.0%에서 5.2%로 2.2%p 대폭 올린 바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지속으로 돌발변수가 언제든지 터질 수 있지만 코로나19의 엔덱믹 전환이 공식적으로 이뤄지고 중국과 중동 등 신흥국가의 경기회복이 본격화된다면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에도 살 길이 열리게 된다. 업계의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투자가 지속되어야만 경기가 반등할 때 경쟁국보다 앞서 뛰어나갈 수 있다.

모든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각자 영업사원이자 기획사원이라는 각오로 소관 업종과 품목별로 수출과 투자 과정에서의 난관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도와주어야 한다. 적극행정을 통해 국부 창출에 기여한 하위직 공무원 등을 발굴, 특별승진 등 과감한 혜택을 줄 필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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