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2.06 20:19
(그림제공=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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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국내 물류산업에서 도로 운송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화물차가 멈추면 주요 물자의 이동은 사실상 중단된다. 지난해 11월 24일부터 12월 9일까지 진행된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로 건설, 자동차, 석유화학 등 여러 산업현장에서 4조 100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던 것이 입증한다. 화물운송사업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면서 산업발전이 더디게 발전한 탓도 적지 않다.  

화물차주가 지입제(持入制)로 인해 본인의 노력과 투자에 비해 미흡한 보상을 받다보니 장시간 운전, 과적 운전 등의 유혹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는 것도 큰 문제다. 대체로 화물차 차주는 화물자동차운송사업면허가 없는 탓에 관련 면허를 보유 중인 운송사업자, 즉 지입회사 명의로 차를 등록하는 실정이다. 대외적으로는 운송사업자의 차량이지만 차주가 독립적인 영업을 통해 일감을 따내고 지입회사에게는 지입료를 지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이 화물차를 구입, 사업자 자격으로 택배회사와 계약하고 해당 회사가 제공하는 물건을 옮기면서 수익을 올리는 택배 배송 기사와는 딴판이다. 

지입회사들은 지입계약을 할 때 화물운송용 번호판 계약비로 2000~3000만원 수준의 사용료를 받는다. 화출차주가 자기 돈으로 노후 차량을 바꾸는 경우에도 상당수 업체들은 지입 계약 갱신에 따른 '도장값'으로 700~800만원을 챙긴다. 국토부는 지입전문회사가 4000~5000개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입 전문업체 차량은 약 10만대이다. 국내 8톤이상 화물차의 절반 수준이다.

지입제는 일제 해방이후 화물운송이 본격화되면서 존재해왔다. 1965년 자동차운수사업법이 영업용 번호판을 붙인 화물운송사업을 노선화물, 구역화물, 특수화물로 규정하면서 제도권으로 들어왔다. 그만큼 오래된 제도이고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국내 화물운송사업은 전근대적인 지입제 체제 속에서 운송사의 부당행위가 여전하고 개인 화물 차주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구조적으로 불안요인을 안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가 신규 번호판 공급을 가로막고 있는 '수급조절제'가 작동 중이고 화물차주의 처우개선을 위한 제도도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림제공=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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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구조적 문제와 관련,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6일 "번호판 장사를 비롯해 부당한 요구로 발생하는 비용이 화주(貨主)와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차주에게 일감을 주지 않고 차주로부터 수취하는 지입료에만 의존하는 등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지입전문회사는 적극 퇴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법인이 가진 번호판 하나를 개인에게 팔 때 수익이 5000만원 정도 난다고 하는데 이 수익을 (대표) 개인이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라며 원 장관을 지지했다.

올바른 지적들이지만 지입제의  오래된 역사 등을 볼 때 '번호판 장사' 업체들이 과연 쫓겨날 지는 지켜봐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협조를 받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에 성공한뒤 지속적인 관리감독이 이뤄져야만 일감은 주지 않으면서 '통행세'만 챙기는 악질 운송사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화물연대 파업을 계기로 드러난 안전운임제와 지입제 등 화물운송산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정협의를 거쳐 이날 내놓은 '화물운송산업 정상화방안'은 의미가 적지 않다. 운송시장의 병폐로 거론되는 지입제 개선 차원에서 자체 운송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지입료 등으로만 운영되는 운송사인 지입전문회사를 없애나가기로 결정한 것은 바람직하다.

화물운송시장의 전반적 체질 개선을 위해 향후 모든 운송사는 차주에게 일감을 제공하고 운송실적을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현재는 화주와 운송계약이 있는 운송사에게만 최소운송 의무가 적용 중이다. 앞으로는 운송실적이 없더라도 신고가 의무화된다. 실제 운송거래 없이 위·수탁료만 챙기는 운송사를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운송사의 허위보고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화물차주도 실적신고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현재는 실적신고는 운송사만이 가능하다. 교차 검증까지 이뤄진다면 일하지 않는 회사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물론 제도 개선이후에도 '꼼수'가 기승을 부리겠지만 장기간 당국의 눈과 귀를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운송회사로부터 일정 수준의 일감을 받지 못한 차주에게 개인운송사업자 허가를 내준다는 결정이 돋보인다. 이에 반해 화물차주에게 물량을 제공한 실적이 없거나 거의 없는 운송사는 기존 '사업정지'보다 훨씬 수위가 높은 '감차(減車)' 처분을 받게 된다. 화물차 번호판이 줄어들면 사업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게 된다. 일종의 극약처방이지만 불가피하다.

화물차주가 지입한 차량의 소유권도 명확하게 보장한다. 현재는 지입계약을 할 때 운송사 명의로 등록하지만 앞으로는 차량의 실소유주인 지입차주 명의로 등록하도록 개선하기로 했다. 이를 위반한 것이 드러나면 감차명령을 내린다. 

국토부의 이같은 조치는 현재 화물차주가 지입계약이 끝난 뒤 명의를 다시 이전받는 과정에서 화물운송사가 차주에게 번호판 사용료를 반환하지 않거나 명의이전비 등을 요구하는 등 '갑질'을 일삼기 때문이다.

(그림제공=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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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화물차주를 보호하기 위해 ▲위·수탁 계약 체결 명목의 금전 요구 ▲차량 대·폐차시 금전 요구 ▲위·수탁계약서에 명시되지 않는 금전 요구 등을 전면금지하기로 했다. 불공정 계약사례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금지행위를 저지를 경우 '계약무효'와 '감차' 등 행정처분에 나서며 불공정행위에 대한 신고와 조사를 전담하는 '공정계약 신고센터'도 설치한다. 화물운송사가 화물차주에게 저지르는 부당행위가 근절되어야만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필요한 대책이 아닐 수 없다.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운송사가 차량과 운전자를 직접 관리하는 직영차량에 대해서는 차종에 관계없이 신규 증차를 허용한다는 조치도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다. 국토부는 직영비율이 높은 운송사에게 물류단지 우선 입주와 대·폐차시 차종·톤급별 교체범위 제한을 완화한다는 '당근'을 제시했다. 현재 최대 적재량 5톤까지만 자유롭게 상향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10~16톤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시장 수요에 맞게 우량 화물운송회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방안으로 분석된다.

2004년 국토부는 화물운송시장의 과잉공급을 해소하기 위해 화물영업용 자동차를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꾸면서 수급조절제를 도입, 운영 중이다. 화물차량 총량제로 현재 신규 운송변허는 발급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총화물차 수급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한뒤 개선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탄력적인 공급을 막고 있는 이 제도를 19년 만에 혁파한다는 결정이 관심을 끈다.

(표제공=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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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발표 중 다른 핵심은 안전운임제를 '표준운임제'로 바꾸고 화주와 운수사 간 계약은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으로 관리한다는 것이다. 화주의 운임지급 의무와 처벌 규정을 삭제, 시장기능을 회복한다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현행 안전운임제는 화주에서 운수사로, 운수사에서 화물차주로 이어지는 계약 과정 전체에 적용되고 있다. 이로 인해 화주-운수사 사이에는 '안전운송운임'으로, 운수사-차주 사이에는 '안전위탁운임'으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앞으로도 정부는 운수사와 차주 간 운임계약은 계속 강제하면서 차주를 보호할 방침이다. 운수사는 차주에게 표준운임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다만 차주의 소득수준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표준운임제는 표준화, 규격화 등 기술적인 부분을 고려해 기존 안전운임제와 동일하게 시멘트·컨테이너 품목에만 한정해 2025년 말까지 3년 동안 운영한다. 일몰제로 시행해본뒤 지속 여부를 논의한다는 것이다.

안전운임제는 설문조사에 의존하는 등 비과학적으로 원가를 산정해온데다 화물연대 조합비, 휴대전화 요금, 세차비도 원가에 들어갔다. 한마디로 원가구성항목이 어처구니 없었던 것이다. 향후 납세액과 유가보조금 등 공적자료를 활용해 보다 객관적으로 원가를 계산하기로 했다. 

운수사와 차주는 화주로부터 운송료를 가능한 많이 받아내는 것이 서로 이익이다. 이처럼 운송사와 차주의 이해관계가 유사한데도 기존 운임위원회는 공익 4명, 화주 3명, 운수사 3명, 차주 3명으로 구성됐다. 화주에게 불리했던 셈이다. 앞으로는 공익 6명, 화주 3명, 운수사 2명, 차주 2명로 운수사와 차주의 비중을 낮춘다. 형평성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제유가 상승으로 경유값이 폭등하면서 화물차주의 실제 수입이 급감했다. 정부는 유가변동에 취약한 화물차주의 소득 불확실성을 개선하기 위해 화물운임-유가연동제를 포함한 표준계약서를 도입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물량을 다루거나 장기 운송을 계약할 때 유류비 변동에 따른 운임 조정사항을 계약 내용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납품단가연동제처럼 유류비 변동이 운임에 들어가게되면 고유가 상황에서도 차주는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차주에게 유리한 제도가 신설되는 것이다.

화물차의 잦은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현재 위험물 운송차량과 노선버스에 적용 중인 정기적 운행기록장치(DTG) 자료 제출 의무를 대형화물차에도 부과한다. 2시간을 운행하면 15분을 쉬는 지와 운전습관 등을 점검한다. 휴식시간을 지키지 않는 차주에게 5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고 급가속이나 급정거를 일삼는 운전자에게는 안전운전컨설팅을 받도록 한다. 화물차 교통안전 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는 화물차 적재도구 이탈 및 불법 개조에 대한 처벌규정이 전혀 없다. 판스프링 낙하사고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화물고정장치에 대한 이탈방지를 의무화하고 불법 개조 시 사업허가·자격 취소는 물론 사망·상해 사고가 발생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받도록 할 방침이다.

(표제공=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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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적에 대한 제재 대상을 기존 화물차주에서 과적을 요구한 화주·운수사로 확대한다는 결정도 교통사고 예방과 도로 파손 감소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주에게 과적을 요구하거나 화물의 무게와 부피를 거짓 통보한 화주와 운송사에게는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주로 지자체에 위임돼 있는 화물 운송시장의 관리·감독 권한을 중앙정부로 확대, 국토부 산하 국토관리청이 화물차 불법개조, 밤샘주차 등을 단속할 수 있도록 한다는 조치도 눈에 띈다. 이를 위해 각 국토관리청마다 10인으로 기동단속반을 구성한다.

국토부는 이런 대책을 담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화물차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나쁜 화주와 운수사'에게 책임을 물리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루빨리 입법되어야 할 것이다.  

화물연대의 불법파업이 근절되려면 뿌리 깊게 유지됐던 화물운송산업의 불합리한 관행과 악습부터 추방되어야 한다.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화물운송산업이 정상화된다면 화물차주는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다. 덩달아 국민들이 누리는 물류서비스의 질도 향상될  가능성이 높다. 중간에서 부당하게 화물차주를 착취했던 지입전문회사가 퇴출되면 그 이익은 화주와 차주 등에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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