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2.23 15:57
윤석열(오늘쪽) 대통령이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4차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 대통령실)
윤석열(오늘쪽) 대통령이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4차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 대통령실)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지난해 한국은 31억6000만달러 어치의 수산식품을 해외에 팔았다. 역대 최고치라지만 수산 선도국가인 노르웨이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노르웨이는 연어 한 품목만으로 2021년에 95억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고 수요도 많은 고급 어종인 연어를 성공적으로 양식하면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각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주인공이 먹거나 마시는 한국 식품과 과일 등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작년 농식품 수출은 88억달러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8%에 이른다.

지난해 한국 수출은 역대 최고 실적인 6836억달러를 달성하며 재작년(6444억달러)보다 6.1% 늘어났다. 작년 11월까지의 세계 수출순위에선 이탈리아를 제치고 6위에 올라섰지만 무역수지는 478억달러 적자가 났다. 

국제통화기금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2.9%로 작년(3.4%)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무역기구도 세계 무역량 성장률이 1.0%로 작년(3.5%)에 비해 크게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추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는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진영의 무기 지원 확대 흐름 속에 러시아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가스가격은 높은 가격을 유지할 전망이다. 첨단기술 보호와 자국 산업 우선주의를 토대로 하는 보호무역주의도 강화되는 추세다. 이같은 흐름을 감안, 지난해 말 정부는 올해 수출이 작년보다 4.5%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대한민국을 먹여살리는 수출이 늘어나기는커녕 감소 국면으로 전환된다면 우리 경제에 미칠 타격은 엄청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4차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올해 수출을 작년보다 14억달러(0.2%) 늘려 6850억달러를 달성하라는 목표를 제시한 것은 이같은 위기감을 반영한 결정이다. 달리 말해 수출을 4.7%p 가량 증가시키라는 주문이나 마찬가지다.

수출은 중국의 경기 부진과 IT 경기 하락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넉 달 연속 마이너스 행진 중이다. 2월 1일부터 20일까지 통관 기준 수출이 전년 동기보다 2.3% 줄어든 만큼 5개월 연속 감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수출이 4개월째 줄어든 것은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2020년 3~8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 1일부터 20일까지 무역수지도 60억달러 적자가 났다. 수출이 줄어드는데 반해 수입은 계속 늘면서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무역수지 적자는 2월은 물론 상반기 내내 지속될 우려가 높다. 

무역수지 적자기간이 이처럼 길어지고 수출도 계속 줄어든다면 대외신인도에 적신호가 켜질 수밖에 없다. 이를 감안, 윤 대통령은 대내외 여건이 비록 어렵더라도 수출의 '플러스 성장'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내각에 전달했다. 정부는 '전부처의 산업부화' 기조에 따라 교육부, 환경부, 국방부 등 비산업부처는 물론 관세청, 특허청, 조달청 등 지원부처까지 포함해 총 18개 부처가 수출 확대에 함께 나서기로 했다. 

(표제공=산업통상자원부)
(표제공=산업통상자원부)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날 내놓은 '2023년 수출 플러스 전환을 위한 범정부 수출 확대전략'에 따르면 산업부, 국방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방위사업청 등 11개  부처에 수출 및 수주 목표가 부여됐다. 부처별로 이같은 목표를 명시적으로 할당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11개 부처가 연말까지 목표를 이루지 못하거나 지원 부처 등의 수출 확대 협조 노력이 부진한 것으로 드러나면 해당 장관이나 청장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리는 내년 4월이나 윤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는 5월 이전에 경질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서 모든 외교의 중심을 경제에 놓고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겠다고 강조하는 마당에 납득할만한 사정이나 이유없이 목표 달성에 실패한 기관장이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각 부처의 장들은 자신의 목을 걸고 올해 내내 수출 독려에 나서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규제부처로 인식되는 환경부에게까지 수주목표가 생겼다. 녹색산업 분야에서 150억달러 어치의 프로젝트를 해외에서 따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 1월 출범한 민관합동 녹색산업 수출얼라이언스를 중심으로 녹색산업 수주지원단을 파견하고 녹색정책금융 활성화 융자금으로 3조5000억원을 제공할 방침이다.

부처별 수출목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가장 많다. 15대 제조업 분야에서 올해 5330억달러를 수출해야 한다. 그래본들 작년보다 불과 0.1% 늘어난 수치다. 그만큼 제조분야 수출 증가가 힘겨울 것이라는 반증이다. 아울러 복지부와 함께 의약품·의료기기에서도 175억달러 어치를 해외에 팔아야 한다. 농식품부의 농식품 수출 목표는 100억달러, 해양수산부의 수산식품 수출 목표는 35억달러이다. 

부처별 목표 이행실적을 점검하고 미비점은 보완하기 위해 구축된 범정부 협업체계가 눈에 띈다. 경제부총리는 격주로 수출투자대책회의를 갖고 분야별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산업부장관은 매월 열리는 범부처 수출상황점검회의에서 실적과 계획을 확인한뒤 협업과제와 애로 해소 대책 등을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출전략회의에 정기적으로 보고한다. 기재부차관과 산업부차관은 매월 수출투자책임관회의를 갖는다. 전 부처의 매월 수출 및 수주실적이 대통령에게 통보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수출지원사업에 올해 예산 1조5136억원을 투입하고 무역금융을 최대 362조5000억원을 공급한다. 이차전지, 전기차, 고부가치가치 선박 등 신성장제조업 분야에서 ▲해외전시회 참가 지원 ▲신규 시장 진출 환경  조성 ▲LNG 선박·무탄소 선박 핵심기술 국산화 지원 등에 나서기로 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철강, 일반기계, 석유화학 등 주력제조업의 경우 ▲평택·용인 반도체 특화단지 기반시설 각 500억 특별지원 ▲투명·차량용·웨어러블 3대 융복합 디스플레이 혁신 R&D 지원 강화 ▲제조로봇 활용 패키지 수출 지원 등에 나설 계획이다.

23일 대통령실 영빈관에서 제4차 수출전략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4차 수출전략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정부가 신수출 유망산업으로 키우려는 분야는 농수산식품과 디지털산업, 바이오헬스이다. 해수부는 올해 대기업 투자 유치를 통해 스마트양식 클러스터를 조성, 연어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전복과 개체굴 등 고급 원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기술개발을 통해 고가의 수산가공품과 기능성 식품 개발을 도울 방침이다. 농식품부는 신선 농산물의 생산과 선별, 포장, 마케팅을 포괄하는 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생산자와 수출기업이 공동 출자한 전국 단위 통합 마케팅법인인 '수출통합조직'을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으로 육성하고 해외 저온창고와 콜드체인도 확충할 계획이다. 수출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간척지를 활용한 100㏊ 규모의 'K-푸드 플러스 스마트팜 수출단지'를 내년부터 조성한다는 방안도 눈길을 끈다.

올해 수출이 늘어나려면 전통적인 수출효자 품목 이외에 새로운 산업에서 실적을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 식품에서 'K-프리미엄' 시대를 열고 'K-콘텐츠'가 주자 만루 위기에 몰린 수출 전선에서 구원투수로 등판, 추가실점없이 마무리지을 필요가 크다. 

이런 점에서 북미와 유럽, 중동 등으로 신시장을 확장(Expansion)하고 해외 웹툰시장 선점 등을 통해 산업영역을 확대(Extension)하며 한국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기초한 프리미엄 효과(Effect)를 패션, 화장품, 식품, 휴대폰, 가전, 건설 등 연관산업으로 확산한다는 문체부의 '3E 전략'이 돋보인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산업부, 기획재정부, 조달청 등은 내수 위주의 중소기업이 수출 첨병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수출성장금융 지원규모를 늘리고 해외진출 비용을 지원하며 수출지원기관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보다 주력해야 할 것이다. 직면한 복합 경제위기를 뚫는 돌파구는 수출 증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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