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2.28 17:18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툥령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툥령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 당뇨병에 걸린 A씨는 웨어러블 기기가 매일 자동적으로 측정한 혈압과 혈당을 담당 의사 B씨에게 보낸다. 주치의 B씨는 전자의무기록(EMR)에 탑재된 인공지능 솔루션으로 모니터링 결과를 분석한뒤 A씨에게 식단 조정이나 운동요법을 권고한다. 만약 급격히 악화되는 신호가 확인되면 B씨는 A씨에게 병원을 속히 찾아오라고 안내할 예정이다.

#2. 건강관리업체 C사는 자신의 의료정보를 제공하는 고객들에게 맞춤형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와 센서 등을 활용해 고객의 걸음걸이와 보행의 안정성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넘어지는 사고가 예상될 경우 수 분 전에 착용자에게 경고, 서둘러 앉는 자세를 취하도록 한다. 

의료와 건강, 돌봄 서비스 혁신을 위한 '의료 마이데이터 사업'이 정착되면 펼쳐질 앞날이다. 다만 보건의료 자료의 적극적 활용을 가로막는 의료법, 생명윤리법, 개인정보보호법, 전자정부법 등 현행 법률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은 물론 안전한 활용과 편익 증대를 위해 관련 제도를 종합적으로 정비해야만 다가올 수 있는 미래이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의료비 지출도 급증 추세에 있다. 환자를 중심에 두면서 보편적 건강 보장을 위한 보건의료체제의 혁신과 전환이 요구된다. 

2024년 65세 이상 인구는 1000만8326명으로 올해보다 5.4%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인 셈이다. 2025년에는 노인인구 비중이 20.6%에 이르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의하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의료비 증가율은 7.8%로 OECD 평균(2.7%)보다 훨씬 높았다. 1인 가구 비중이 치솟으면서 가족이나 친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국민들도 급증하는 추세다. 주변의 보살핌이 없더라도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과 융복합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면 수준 높은 예방적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무병장수'라는 이상을 추구하기 보다는 '건강하고 편리한 삶의 유지'에 주력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의료비를 아끼고 국민의 건강 보장을 위해 자신의 유전체 정보, 생체신호 정보 등을 토대로 인공지능에 의한 맞춤형 정밀의료서비스를 국가 차원에서 발전시켜야할 필요성이 크다. 한국은 EMR 보급률이 90%를 넘는데다 전국민 건강보험 가입으로 잠재가치가 높은 의료데이터를 풍부히 갖고 있다. 빼어난 정보통신기술 역량과 결합된다면 바이오헬스에서 혁신성장을 주도하는 국가로 능히 발돋움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구나 이 분야는 시장이 초기 형성되는 단계에 있는 관계로 전세계적으로 지배적인 기업이 아직 없다. 

바이오헬스 신시장 진출전략  5대 핵심과제. (표제공=보건복지부)
바이오헬스 신시장 진출전략  5대 핵심과제. (표제공=보건복지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개최된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에서 환자 본인 주도의 정보 공유를 통해  '의료 마이데이터'를 구축하고 향후 5년 내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2개 이상 개발하겠다는 내용의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예방 중심의 의료 서비스 패러다임 전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그림제공=보건복지부)
(그림제공=보건복지부)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에 관한 법률과 제도를 마련하고 국민 건강증진에 초점을 맞춘 디지털 대전환을 추진한다는 결정이 주목된다. 지난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인정보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제3자 전송요구권'이 도입됐다. 복지부는  이 권리를 통해 통해 국민이 체감하는 의료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우선 추진할 방침이다.

복지부는 2021년부터 분산된 개인 건강 정보를 개인과 의료진에게 표준화된 형태로 제공하는 기반을 마련해오면서 지난해 8월부터 245개 의료기관을 상대로 시범사업을 벌여왔다. 오는 6월부터 '건강정보 고속도로'(의료기록 데이터 중계 시스템) 본 사업을 운영하면서 의료데이터 유통망을 구축한다. 아울러 지난해 6월부터 1차의료 만성질환을 대상으로 실시 중인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시범인증제'를 내년 6월까지 안착시켜 건강관리 플랫폼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임상적 안전성, 근거의 객관성·전문성 정도 등의 지표를 통해 건강관리서비스를 인증하는 방식이다. 

사망원인 1위인 암 질환의 임상 정보, 청구·검진 및 사망 정보를 연계·결합하는 임상데이터 네트워크인 ‘K-CURE’를 2025년까지 구축, 활용을 확대하고 공공기관이 보유한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결합해 연구자 등에 제공하는 플랫폼을 활성화한다는 방침도 눈에 띈다. 국민 100만명의 참여를 통해 내년부터 2032년까지 '바이오 빅데이터'를 구축한뒤 연구자에게 개방, 의료 혁신을 선도한다는 구상도 제대로 실천된다면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

복지부는 2022년 82억달러를 기록했던 의약품 수출을 2027년까지 160억달러로 늘려 글로벌 6대 강국을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해 국산 바이오시밀러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1위를 기록했다. 오는 2025년까지 19개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는 만큼 연구개발비를 확대하고 임상3상 등을 지원하는 대규모 펀드가 차질없이 조성될 경우 충분히 이룰 수 있는 목표다.

의료기기 수출액도 2027년까지 160억달러로 확대, 수출 5위 국가로 도약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정부와 민간의 연구개발 투자를 9~10조원 규모로 키우기로 했다. 영상기기에선 AI 결합 차세대 엑스레이를 개발하고 체외진단기기의 경우 신종감염병 및 암, 만성질환 진단 기술은 물론 자동화된 분석플랫폼도 개발할 방침이다.

윤서열(왼쪽)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서범석 루닛 대표로부터 '루닛 인사이트 MMG’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루닛)
윤서열(왼쪽)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서범석 루닛 대표로부터 '루닛 인사이트 MMG’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루닛)

의료강국 도약은 이날 전시된 디지털 헬스케이 기기 6종만 봐도 가능성이 충분하다. 의료AI기업인 루닛의 서범석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유방암 검출 AI 솔루션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 허가를 획득한 '루닛 인사이트 MMG'를 시연했다. 유방암이 의심되는 부위를 97%의 정확도로 검출한다. 의심 부위의 위치정보와 의심정도를 수치로 표기해 의사의 진단을 돕는다. 최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공공의료원에 수출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SK바이오팜의 '제로글래스'를 낀 채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SK바이오팜의 '제로글래스'를 낀 채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을 감지하는 웨어러블 기기인 '제로글래스'를 전시했다. 안경 형태로 착용한 사용자의 생체신호를 자체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기록한다. 링커버스의 '헬시버스'는 손톱 촬영 디바이스와 AI 분석 알고리즘을 결합했다. 손톱 영상을 분석해 건강 이상 징후와 영양소 결핍 증상을 도출할 수 있다. 세브포인트원의 '알츠윈'은 인공지능이 간단한 대화를 바탕으로 뇌활성화 상태를 파악, 치매 고위험군을 조기 판별하는 앱으로 미국 특허를 받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바이오헬스 세계 시장 규모는 2600조원에 달하고 성장잠재력이 크다"며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키워 나갈 수 있도록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전략을 차질없이 이행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민감한 개인정보를 가명정보화, 비식별화하여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면서도 바이오헬스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국회에 계류된 디지털헬스케어법의 조속한 처리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강기윤이 의원이 대표발의한 제정법안은 국무총리 산하에 '디지털헬스케어정책심의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고 보건의료데이터 가명처리 범위·방법·절차 등을  법률로 규정해 빅데티어연구를 활성화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보건의료분야에서 결과물의 안전성이나 유효성에 대한 객관적 검증 없이 단순히 산업진흥을 목적으로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 생명건강을 담보로 잡는 것"이라며 "정부나 국회 주도의 일방적 입법이 아닌 의료계, 시민사회단체, 법조계, 정보보호전문가 등 이해관계자 논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의료데이터의 안전한 활용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 개선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디지털헬스케어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 반대라는 벽에 부딪힌 상태다.

반도체 등 이공계 인기 학과조차 대입 수험생이 의예과와 복수합격했다면 서슴없이 입학을 포기하는 학문 분야가 된지 오래다. 파격적인 장학금 혜택과 대기업 입사 보장 약속도 소용 없다. 평생 먹고 사는데 도움을 주는 국가자격증이 없는데다 나이 들어 퇴직하고 나면 전문성을 살리기 쉽지 않다는 점이 널리 알려진 탓이다. IMF 외환위기이후 의사의 직업적 안정성과 높은 소득이 부각된이후 전국 모든 의과대학에 최상위권 학생이 몰리는 흐름은 갈수록 확고해지고 있다. 약학대학원의 인기도 매우 높다. 

의약계에 몰리는 인재들이 병·의원 뿐만 아니라 이공계 대학, 연구소, 기업 등에 근무하면서 한국이 디지털·바이오헬스분야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는데 기여하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혁신적인 기술개발을 독려하고 신시장 창출을  돕기 위해 의료 데이터 분야의 낙후된 법령과 제도, 가이드라인을 고치는 작업도 시급하다. 특히 의료데이터가 공공이익 증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활용기관 선정 기준 마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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