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3.10 15:45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PEF 운용사들. (사진제공=각사)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PEF 운용사들. (사진제공=각사)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 인수·합병(M&A) 규모는 78.7조원으로 2021년 134.1조원보다 41.3% 줄었다. 전세계 M&A는 2021년 3.1조달러에서 2022년 1.4조달러로 반토막 났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주요 국가마다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조달비용이 증가한데다 경기둔화 국면에서 사들일 만한 기업을 찾기 힘들어져 거래가 급감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M&A는 기업의 혁신을 북돋우면서 효율적인 자원 배분으로 경제의 역동성을 키울 수 있다. 주력 제품이 성숙기를 맞아 쇠퇴가 우려될 때 유망 제품을 갖고 있는 다른 기업을 사들여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신규 사업에 나서거나 기존 사업을 확대하려고 할 경우 처음부터 연구개발에 나서 신제품을 양산, 판매하는 것보다 비용과 시간을 줄여줄 수도 있다.

대체로 기술과 인력 확보, 시장지배력 확대, 기존 사업 구조조정, 규모의 경제 달성에 따른 원가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생산범위 확대에 따라 비용을 줄어드는 '범위의 경제'도 발생한다. 다만 피인수기업을 잘 골라 적절한 가격에 사들이고 사후관리에도 성공해야 한다는 조건이 뒤따른다.

IMF 외환위기와 국제금융위기를 잇따라 경험하면서 국부 유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외국 헤지펀드들이 일시적인 자금난에 빠진 국내 유력 기업을 사들여 구조조정 등으로 가치를 높인 뒤 되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사례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사모펀드(PEF)의 경쟁력을 키워야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PEF는 기관투자자나 고액 자산가 등 특정한 소수 투자자들로부터 비공개적으로 모은 자금으로 기업을 매입하고 나서 매출과 이익 증대에 주력한다. 기업 인수로부터 수년 내에 원리금을 합친 금액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매각, 투자자에게 고수익을 올려주고 자신도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면서 빠져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금융당국은 외국 투기자본에 대한 대항마를 키우기 위해 2004년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를 허용했고 2009년에는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를 도입했다. 2015년에는 인가제로 운영해왔던 사모펀드 회사를 등록제로 바꾸면서 신규 주자의 참여를 적극 유도했다. 그 이후 전문투자형과 경영참여형으로 구분했던 10% 지분 보유 조항을 삭제하고 의결권 행사 제한 규제도 폐지했다. PEF가 기업 M&A 시장의 주된 참여자로 자리 잡으면서 M&A 규모는 2013년 49.1조에서 2017년 81.6조원으로 성장했다. 2021년에는 134.1조원까지 커졌다가 작년에 크게 줄었다.

M&A는 중소·벤처기업 창업주와 동지들이 투자자금을 회수하고 제2의 창업에 나서는 시드머니 노릇도 한다. 외국 기업을 인수하는 국경간 M&A는 진출 희망 국가에 공장을 지은 뒤 제품을 생산하는 '그린필드' 외국인 직접투자에 비해 시간을 끌지 않고 진입장벽을 일시에 해소한다는 점에서 글로벌화의 핵심 수단으로 각광 받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코로나19 사태가 엔데믹 단계로 넘어가는 시기에서 보다 중요해진 공급망 재편과 새 시장 접근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김소영(왼쪽 두 번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0일  자본시장연구원에서 가진 ' 기업 M&A  지원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
김소영(왼쪽 두 번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0일  자본시장연구원에서 가진 ' 기업 M&A  지원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

이같은 점을 감안, 금융위원회는 10일 서울 여의도 자본시장연구원에서 김소영 부위원장 주재로 '기업 M&A 지원 간담회'를 갖고 ▲공개매수 ▲투자은행의 기업 신용 공여 ▲합병 등 기업 M&A 시장과 관련된 다양한 제도에 남아 있는 불합리한 규제들을 찾아내 대폭 정비하겠다고 공언했다. 대기업들이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활용, 국내외 유망 기업에 대한 M&A로 퀀텀 점프의 발판을 삼아야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대책이다. 다만 여러 정부 부처가 관할하는 다양한 법률의 영향을 받고 있어 향후 규제 개선이 업계가 기대하는 수준과 속도로 이뤄질 수 있을 지는 지켜봐야할 것이다.

아울러 금융위는 M&A를 통한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기업구조혁신펀드'를 추가로 조성하는 등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고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수단(vehicle)도 확충한다고 밝혔다. 기업구조혁신펀드는 사모펀드 등 민간 자본시장이 주도로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2018년 출범한 민·관합동펀드이다. 한국성장금융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은행권이 전체 펀드 기금의 절반을 내고 나머지는 민간 수탁운용사들의 출자를 통해 조성됐다. 3차례에 걸친 조성을 통해 4.9조원이 약정되었고 97개 기업에 3.7조원이 투자된 바 있다. 2019년 7월 펀드규모를 5조원까지 늘리겠다던 정부 발표와는 달리 시장에 유동성 공급자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무엇보다도 국내 유망기업이 미래전략 산업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산업재편 수요에 대응한 전략적 M&A를 지원한다는 방침이 주목된다. 주요국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육성시키는 경쟁을 벌이는 마당에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이 재무적 투자자 자격으로 M&A 자금을 지원, 국내 기업의 신산업 진입과 해외 진출을 돕는다는 방침이 현실화된다면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상장법인 합병 등 M&A와 관련된 제도의 투명성과 신뢰성, 공정성을 높여 일반투자자 보호를 강화한다는 방침도 현재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였던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의 지분을 인수한 뒤 하이브와 카카오 간에 SM엔터 잔여 지분 인수를 둘러싸고 상호 공개매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관심을 끈다.

M&A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대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과도한 수준으로 챙기는 것을 견제하고 개미투자자도 적정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보호하는 장치를 강화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국내 M&A 제도가 주요국 관련 규정과 맞도록 정합성을 높여 선진화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절실하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0일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열린 '기업 M&A 지원 간담회'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유한새 기자)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0일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열린 '기업 M&A 지원 간담회'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유한새 기자)

미국 기준금리가 최고 6%대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실물경제가 견디기 힘든 수준의 고금리가 지속되면 경기둔화도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이리 되면 기업의 기술개발 의욕은 떨어지고 설비투자 또한 줄어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투자 감소가 경제성장 잠재력 훼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예방하기 위해 기업간 활발한 M&A가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한계 사업은 퇴출되고 성장가능성이 기대되는 자산과 기술, 아이디어, 상품에 대한 투자가 집중된다면 미래 산업에 대한 선점도 가능하다. M&A 거래와 규모를 늘려 우리 경제 전반의 회복력을 높이는 작업을 서둘러야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과 콘텐츠, 바이오·제약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 대부분 산업에선 캐시카우로 육성시킬 만한 아이템을 찾기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기업들이 저탄소경제로의 이행, 디지털 전환과 같은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면서 한국 경제의 신진대사를 촉진할 수 있도록 M&A를 저해하는 규제를 원점에서 없애나가는 노력이 시급하다. 금융위가 3월말 열릴 기업 M&A 규제 개선 공개 세미나와 전문가 토론회, 부처간 협의를 거쳐 국가 경쟁력을 강화시킬 정책대안을 조속히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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