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3.14 17:50
김소영(왼쪽)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산업 글로벌화 TF 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
김소영(왼쪽)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산업 글로벌화 TF 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정부가 2003년 '동북아 금융허브 로드맵'을 제시한 뒤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자본시장을 고도화하고 금융인프라 선진화에 나서면서 금융 관련 법령은 대체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정립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의 국제금융센터지수(GFIC)는 2019년 3월 36위에서 2022년 9월 11위로 올라섰다. 상장주식 시가총액은 세계 9위, 상장기업수는 8위에 이른다. 세계 100대 은행에 KB, 산업, 신한, 하나, 기업, 우리 등 6개 은행이 세계 100대 은행에 포함됐다. 보험시장 규모는 미국,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에 이어 세계 7위이다.

이런 수치로만 보면 금융산업은 제조업에 못지않게 순항 중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최근 은행과 증권, 보험산업이 매년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다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그간 금융업이 실물경제가 빨리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금 대출과 기업 공개, 보험 제공 등을 뒷받침하면서 동반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제조업이 고도성장기를 지나 성숙단계에 진입하면서 더 이상 반사이익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인구구조의 고령화도 위협요인이다. 2025년에는 65세이상이 인구의 20%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고령화가 진행되면 투자수익률 저하도 동반되기 마련이다.

국내 금융시장은 포화상태에 직면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더 이상 내수에만 의존하다가는 발전이 멈출 시기가 멀지 않았다. 해외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는 노력을 더 강화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림제공=보험연구원)
(그림제공=보험연구원)

금융업 중에서 위기 조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이 보험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생명보험의 수입보험료와 초회보험료 성장률은 1980년대만 해도 각각 35%, 50% 수준이었지만 2010년대 들어 각각 4% 안팎, 전년 대비 감소세로 급전직하했다. 화재보험 역시 10여년 전부터 원수보험료는 10% 미만, 초회보험료는 역성장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성숙시장으로 들어서면서 1995년만해도 33개에 달했던 생명보험사는 2000년 23개로 줄어든뒤 2021년말까지 숫자 변화가 없었다. 2020년 KB금융지주가 푸르덴셜생명을 인수한뒤 2023년 KB생명과 합병, KB라이프생명으로 재출범시킨 것을 감안하면 22개로 감소한 셈이다. 오병국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2021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 대비 보험료는 10.9%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그룹에 해당된다"며 "1인당 보험료는 3735달러로 선진시장(5073달러)에 근접했다"고 전했다.

은행이나 증권업 역시 역동성이 떨어지는 흐름에 놓여 있다. 한국 금융사의 해외 진출과 해외 금융사의 국내 유치라는 외연 확대를 통해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는 것이 급선무이다.

무엇보다도 유치 준비가 부족하고 투자와 정주여건도 미흡하다보니 중국 리스크에 따른 '탈홍콩'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중국 정부가 홍콩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면서 2019년 이후 홍콩에 자리 잡은 외국기업 본사와 근무자 수는 줄어들고 있다. 홍콩을 떠나고자 하는 글로벌 금융기업이 속속 생기고 있지만 싱가포르가 대안으로 고려될 뿐 서울이나 부산은 선택지에 오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를 놓고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에 진출할 경우 금융회사 CEO가 근로기준법, 중대재해처벌법, 노사관계법 등에 따라 신분 제제와 형사처벌을 많이 받을 수 있음을 부담스러워하는데다 ▲자유롭게 직원을 고용하고 해고하기가 힘들고 ▲외국인이 합법적으로 돈을 버는 것에 사회적 반감이 남아 있고 간혹 정부의 시장개입이 나타나며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비교할 때 생활과 행정 등에서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데다 고급 교육·의료시설 등도 부족하다는 점이 우리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공감이 가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금융위원회가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업권 협회, 유관기관, 연구기관과 함께 제1차 금융산업 글로벌화 TF 회의를 갖고 글로벌화 지원방안 및 관련제도 개선방안 등을 논의한 배경에는 금융업의 저성장이 고착화되기 전에 타개책을 마련하자는데 정부와 업계가 위기의식과 절박감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날 회의를 주재한 김소영 부위원장은 "금융회사의 해외 직접진출과 해외투자 확대를 적극 지원하겠다. 글로벌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플레이어로 성장해 경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도록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글로벌 투자자금의 유입을 활성화하겠다. 모험자본 등 기존에 자금배분이 부족했던 분야에 글로벌 자금이 투자될 수 있도록 유도해 실물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육성하겠다"며 "이를 위해 관련 금융규제를 전면 재점검하고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국내 진출시 어려움을 겪는 세제·노동·교육 등 비금융이슈를 대상으로 관계부처와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림제공=보험연구원)
(그림제공=보험연구원)

금융위는 향후 ▲자본시장 ▲핀테크·혁신 ▲금융지주 ▲보험 ▲여신 ▲은행 등에서 '금융업권별 릴레이 세미나'를 갖고 금융회사들의 정책제안과 애로사항을 수렴해 금융산업 글로벌화의 비전을 마련할 계획이다.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개선방안을 찾기 위해 금융위 내부에 '금융 국제화 대응단'을 신설한다는 방침이 주목된다. 김 부위원장이 "성과를 위해 필요하다면 직접 영업사원이 돼 해외 금융당국과 협의하고 우리 금융산업과 금융회사들을 세일즈하겠다"고 밝힌 것도 눈에 띈다. 그는 "언어와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금융산업의 글로벌화는 제조업에 비해 매우 어렵다"면서도 "글로벌화는 우리 금융산업의 지속적인 발전 및 나아가 실물경제의 성장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이자 충분히 이뤄낼 수 있는 목표"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의지를 지닌 김 부위원장이 직접 단장을 맡고 국제업무 경험이 많은 에이스 직원을 위주로 국장 1명, 과장 1명, 사무관 2~3명 내외로 배치할 예정이다.

(그림제공=자본시장연구원)
(그림제공=자본시장연구원)

이날 한국금융연구원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같이 특정 지역을 금융특구로 지정, 혁신적인 개선을 추진하거나 백오피스에 특화된 아일랜드 더블린처럼 디지털금융에 특화된 금융중심지를 검토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가 해외 투자할 때 국내 금융사와의 동반 진출을 확대하고 ▲퇴직연금 등 주요 연기금 외부위탁운용관리(OCIO)의 해외 투자 비중을 높이며 ▲국회의사당 부지에 핀테크기업을 집중 유치하고 토큰증권을 활성화하는 등 한국을 디지털금융의 허브로 키우며 ▲김치본드 활성화와 외환시장 선진화로 시장 참여 유인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보험연구원은 ▲해외사업 확장으로 위험을 지역적으로 분산하는 경우 그 효과를 지급여력제도에 반영하고 ▲해외투자에 수반되는 자본확충 수단 다양화를 위해 후순위채 발행 규제를 일부 완화하며 ▲현지 진출 제조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현지 자산운용 및 투자자문 회사 인수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에서 검토할 가치가 높은 아이디어로 여겨진다.

금융업에 있어 문화를 토대로 상대방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시대 흐름에 맞는 투자 대상을 찾아내 고객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한다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등을 이용, 저비용에 글로벌 주식이나 채권, 대체상품 제공을 확대하는 등 ICT와 성공적으로 융합하려는 시도도 강화되어야 한다. 부동산에 치중된 가계 자산 비중을 낮추는 과정에서 예금 중심의 금융자산을 연금·자산관리 분야로 이전시키기 위한 유인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지난해 한국은 무역규모와 수출실적에서 세계 6위 국가로 등극했다. 2021년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은 1조 8102억달러로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포트폴리오를 지닌 제조업이 디지털 전환을 통해 질적인 변신에 주력하고 금융산업도 뛰어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글로벌화에서 성과를 창출, 'K-파이낸스'의 성가를 입증한다면 8위(이탈리아)와 9위(캐나다)를 추격할 수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 국부 증진에 금융산업이 앞장설 때다.

(그래프제공=자본시장연구원)
(그래프제공=자본시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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