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3.15 17:04
국가산업단지 후보지 위치도 (그림제공=국토부)
국가산업단지 후보지 위치도 (그림제공=국토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국가산업단지는 국가기간산업이나 첨단과학기술산업 등을 키우기 위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정한다. 산업의 적정한 지방 분산을 촉진하고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지정되는 일반산업단지와 구별된다. 정부가 전략적 목적을 갖고 조성하는 만큼 분양가격이 저렴하고 생산에 필요한 인프라도 충분히 구축된다. 한마디로 기업 활동을 하기 좋은 곳이다. 국가산단은 섬유 등 경공업에서 출발해 자동차, 조선, 정유 등 중화학공업과 지식산업에 진입하기까지 우리 경제가 성장하는 단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다해왔다. 

반도체, 인공지능, 2차전지, 우주항공, 방위산업, 원자력, 수소산업, 핵융합 발전 등 첨단 신산업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주요 국가간 경쟁이 치열하다. 여기에서 밀려난다면 '2류 국가'로 전락될 것은 뻔하다. 

그간 국가산단은 그린벨트와 농지 등 기존 규제를 죄다 지키면서 조성되었다. 이러다보니 좋은 입지에 들어서기가 힘들었다. 지금도 교통이 불편한 곳이 적지 않다. 게다가 단순한 제조·생산 거점에 머물고 있다. 근로자들이 퇴근한뒤 여가나 쇼핑을 즐길 만한 공간도 태부족한 상태다. 온실가스나 기후변화 등에 대한 고려없이 지어진 탓에 이제 와서 효과적인 대응도 어렵다.

우리가 미래 첨단산업에서 앞서 나가려면 연구기능, 제조, 판매는 물론 수출까지 쉽게 이어지는 성장 거점부터 마련해야 한다. 수용규모를 이미 넘어버린 기존 국가산단으로는 불가능하다. 특히 국가적으로 육성이 절실한 시스템반도체 집적단지를 만들려면 대규모 전력과 산업용수, 연구개발 인력, 막대한 투자자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표제공=국토부)
(표제공=국토부)

 

이런 실정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4차 비상민생회의에  참석, 전국 15곳을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선정한다는 내용의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 첨단산업벨트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신산업 패권 경쟁에 선제적으로 맞서고 전 국민이 고루 잘사는 지방시대를 완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미래차, 우주발사체, 스마트기술, 원자력수소 등 미래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총 4076만㎡(약 1200만평) 규모의 국가산단을 조성한다는 계획은 역대 정부 최대 숫자이자 최대 규모이다. 대구·경북이 4곳으로 가장 많고 대전·충남이 3곳, 전북과 광주·전남이 각 2곳이며 경기, 충북, 경남, 강원은 각 1곳이다. 

중앙정부의 주도 아래 입지를 선정, 개발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역에서 비교우위 분야를 스스로 평가해 먼저 입지를 제안하고 육성전략을 마련하도록 한 뒤 산단에 들어갈 기업의 제안 내용과 참여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골랐다는 점이 주목된다. 선정 기준은 ▲신설 산단에 들어오려는 기업 수요 확보 규모 ▲그간 산단 부지 분양 추이 ▲유치 희망 산업의 성장 속도 ▲지역 내 기존 산업기반과의 연계 가능성 등이었다. 국가전략산업으로서의 가치와 입지의 개발용이성, 지역균형발전 등도 고려됐다고 한다.

15개 신규 산단 중에서 단연 관심을 끄는 곳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축을 위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710만㎡에 들어서는 반도체 산단이다. 정부는 'K-실리콘힐즈'라는 이름까지 붙이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시스템반도체를 중심으로 첨단반도체 제조공장 5개를 구축하고  국내외 소재·부품·장비 기업, 해외 연구개발 기업까지 유치하는데 성공한다면 장차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대만을 누르고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핵심 기지로 자리잡을 수 있다.

모빌리티 산업의 중심지가 되는 충청지역도 눈에 띈다. 대전은 인재와 연구 기반은 우수하지만 제조는 취약한 곳이다. 정부는 우수한 연구 성과가 생산으로 이어지도록 나노·반도체 종합연구원을 세워 반도체 전·후방산업을 지원하는 '과학수도'로 재도약시킬 방침이다. 제2대덕연구단지도 조성해 연구실증과 사업화를 도모한다는 방향도 효과가 기대된다. 충남 천안 성환읍에 있는 417만㎥ 규모의 국가 소유 종축장 부지를 활용, 현대자동차와 삼성디스플레이 등과 연관된 전후방 기업들을 입주시킬 모빌리티 디스플레이 산단을 만든다는 발상도 신선하다. 경부선과 호남선 KTX가 만나는 철도교통의 중심지인 충북 오송에  수소철도, 네트워크·인공지능기반 철도 등 미래 철도기술을 개발, 세계철도시장 선도 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도 흥미를 끈다. 충남 홍성은 아산에 있는 현대차 공장 등과 연계해 수소차·전기차 부품업체를 중점 육성하게 된다.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조감도. (사진제공=경북도)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조감도. (사진제공=경북도)

대구경북지역은 대구 달성군, 안동 풍산읍, 경주 문무대왕면, 울진 죽변면 등 신청안 4개 모두 통과됐다. 그만큼 중앙정부가 각별히 배려했다고 판단된다. 대구는 기존 주력산단 5곳과 함께 로봇과 미래차 융합 단지로 육성된다. 경북 안동은 SK바이오사이언스 등 바이오기업과 연계를 강화, 바이오 의약 백신산업의 선도 도시를 지향한다. 헴프를 이용한 원료의약품 산업도 진흥시킬 방침이다. 경북 경주와 울진은 원자력 기반을 활용한 소형 모듈 원자로와 수소 생산 기지로 조성되면서 환동해 경제권 중추도시로 성장해 나갈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최적의 입지를 공급하기 위해 입지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결정이 주목된다. 그간 지방에 국가산단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개발제한구역이 걸림돌로 작용해왔던 폐해를 과감히 시정하겠다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지방소멸 시대를 맞아 비수도권에서 그린벨트 보전을 외칠 때는 이미 지났다. 이와 관련, 원희룡 장관은 이날 "그린벨트를 과감히 해제하고 지자체의 권한을 강화해서 신속하게 추진을 하도록 하겠다"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제조·생산기지에 머물고 있는 국가산단과는 달리 기술개발, 실증, 유통 등 산업전주기 여건을 조성하고 후보지 인근 기존 산단은 물론 중간지원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완결된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 돋보인다. 산단 착공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관계기관 사전협의와 예비타당성 조사에 재빨리 나서 제때 개발이 이뤄지도록 추진한다는 방침도 당연한 결정이다. 

입주 희망기업이 산단 개발계획 수립단계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가 공언한 것처럼  '국가첨단산업벨트 범정부추진지원단'이 구성돼 운영된다면 산단 조기분양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수요자의 요구를 반영, 근로환경과 정주여건을 개선해야만 청년 근로자들이 근무를 선호하는 산단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정부는 신규 국가 산단 개발 속도를 늦추는 온갖 규제와 애로를 책임지고 해결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지자체의 주도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곳 강조해온 기업친화국가의 성과가 임기 중 나타날 수 있도록 2026년 말에 착공하는 국가산단이 생기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신속성'과 '과감성'이다.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을 위해 올바른 정책을 결정한 공무원이 추후 구설수에 올라 불이익을 받아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감사원부터 공직사회에 '적극행정' 풍토가 자리잡도록 보다 적극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 시행해야 한다. 한국이 핵심 선진국을 쫓아갈 시간은 지금도 재깍재깍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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