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3.20 16:02
2019년 경주 더케이호텔에서 일본 치벤학원 수학여행단 환영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경주시)
2019년 경주 더케이호텔에서 일본 치벤학원 수학여행단 환영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경주시)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일본은 가까운 나라이다. 인천공항에서 후쿠오카공항까지 1시간30분이면 도착한다. 부산에서 대마도를 가는데 1시간30분에서 1시간55분 걸린다. 볼거리가 적지 않은데다 가성비가 좋은 맛집도 즐비하다. 코로나19에 따른 입국 규제가 해제되면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국가는 단연 일본이다.

물론 일본은 여전히 먼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대체로 "일본의 사과가 불충분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걸핏하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우긴다. 전형적인 역사왜곡이다. 강점기 시절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당한 한국인들의 피해보상에도 소극적이다. 같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인 독일과 비교할 때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수탈한 것에 대한 사과의 수위와 배상 수준이 낮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일본 기성세대의 인식은 우리와 정반대이다. 대체로 "수차례 사과했고 손해도 충분히 배상했다"는 입장이다. 한국이 국제법을 어기면서까지 사과와 배상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사 문제는 가해국이 피해국에 몇 번 머리를 수그렸다고 끝나는 사안은 결코 아니다. 학교폭력 가해자는 피해자가 납득할 때까지 거듭 반성을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다. 국가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나간 잘못에 유감의 뜻을 거듭 표시하고 화해를 청하면서 협력을 다짐하는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다.

최근 수년간 한일 관계는 날선 공격이 오가면서 긴장국면에 있었지만 민심은 달랐다. 일본 청년들은 해외여행 선호 1위 국가로 한국을 손꼽고 있다. K-팝, K-드라마, K-무비 영향으로 한국이 너무나도 친숙해졌다. 음악과 드라마, 영화에서 듣고 보고 즐겼던 한국을 방문, 실제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커진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 전경 (사진제공=상가정보연구소)
전주 한옥마을 전경 (사진제공=상가정보연구소)

이런 흐름을 반영, 일본 고교생들의 한국 수학여행이 3년여 만에 다시 시작된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양국 미래세대의 교류가 활성화될지 주목된다. 구마모토현 루테루학원 고등학교 학생 37명이 21일부터 25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전주와 서울을 여행한다. 자매학교인 전주 신흥고에서 수업을 참관하고 한옥마을에서 신흥고 학생들과 함께 한복을 입고 관광을 즐긴다. 이어 서울을 방문한다. 21일 오후 2시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열리는 환영 행사에 문화체육관광부 최수지 청년보좌역과 2030청년자문단 '드리머스'가 참석, 미래세대 교류 재개를 축하한다.

일본 청소년의 한국 수학여행은 1972년 처음 실시돼 줄곳 이어져 왔다.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이후 전면 중단됐다.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한 가운데 한일 청소년들이 우정을 쌓으면서 협력의 토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지난 1월 4일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누적관람객수 415만명으로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2일 국내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상현집결, 그리고 도공마을로' 역시 49만명이 관람하면서 박스오피스 5위에 올라섰다. 일본 청년세대가 K-컬처에 깊은 호기심을 갖고 탐닉하는 것처럼 한국 청년들의 일본 애니메이션과 관광명소, 음식에 대한 열정이 날로 커지고 있다.

한일 양국 협력의 기반은 국민 간의 상호 이해와 다양한 교류에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10월 일본 도쿄에서 오부치 게이조 총리대신을 만나 한일 양국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11개 항으로 구성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양국 문화와 인적교류 확충에 뜻을 같이한 바 있다. 당시 일본은 1995년 8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전후 50주년 특별담화'를 기초 삼아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의 사죄를 문서화한 바 있다. 부속문서로 5개 분야 43개 항목에 걸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행동계획'도 채택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국장이 도쿄 부도칸에서 2022년 9월 진행되고 있다. (사진=닛폰부도칸 페이스북 캡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국장이 도쿄 부도칸에서 2022년 9월 진행되고 있다. (사진=닛폰부도칸 페이스북 캡처)

이후 아베 신조 총리는 공동선언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이전 정부의 공식 견해마저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우리가 일본에 사과를 거듭 요구하는 배경에는 일부 정치인들이 진정성을 의심받게 하는 발언과 행동에 나섰던 탓이 크다.

문제는 우리에게 '부족한 일본'만 탓하며 주저앉아 있을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북한이 우리나라 주요 대상에 대한 핵무기 타격을 가정한 전술탄도미사일 상공 폭발 실험을 강행하는 등 도발 수위를 높이는 현실에서 일본과의 안보협력 강화는 국민의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불가피하고 효율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방일 당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정상화를 강조한 것도 한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는 한일 양국이 진정 이웃국가로서 공존공영하려면 양국 미래세대의 교류 확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문체부는 교육 여행 콘텐츠를 더욱 다양화하고 학교 간 교류를 촉진하는데 노력하겠다고 20일 밝혔다. 일본 여행업계와 함께 일본 학교에서 관심 높은 주제로 수학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상반기 중 일본 주요 지역에 홍보할 계획이다. 여름방학에는 일본 중고등학교 교직자 100여명을 한국에 초청해 시범투어를 실시, 양국 간 수학여행을 촉진할 방침이다. 

아울러 문체부는 한일 양국의 문화교류 및 협력 증진을 위한 '한일 미래 문화동행'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대중문화 개방 25주년과 드라마 '겨울연가' NHK 방영 20주년을 맞아 한일 MZ세대 간 교류 협력 사업을 마련할 방침이다. '2023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4월에 도쿄·오사카·후쿠오카·히로시마·나고야 5개 도시에서 'K-관광 로드쇼'를 개최한다. 5월에는 만화·웹툰 IP 보유업체의 일본 진출을 지원하는 '케이-코믹스 인 일본(K-comics in Japan)'을 일본에서 진행한다. 10월에는 K-팝 일본 쇼케이스(Korea Spotlight)가 열린다.

경복궁 경회루 야간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경복궁 경회루 야간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고 김대중 대통령은 "50년도 안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를 무의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이 일본과 불편했던 관계를 선제적으로 정상화하는데 앞장설수록 일본이 느낄 압박은 커지게 된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서로 존중하면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구축하는데 손을 맞잡는다면 전세계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한일관계가 상호협력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면 상대적으로 감정의 응어리가 적거나 거의 없는 미래세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상호 호감을 바탕으로 인적교류 기회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 세대들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양국 국익 증진에 도움이 된다. 이를 바탕으로 중·장년세대까지 교류가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과 일본이 공고한 협력관계를 유지할수록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선택지는 줄어들게 된다. 일본 고교생들의 수학여행이 한일 미래세대 관광교류 확산의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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