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3.04.24 06:00

[방치하면 골병㊤] 외환위기 당시 버려진 영유아 현재 2030 세대…공공문제 인식·교사 역할 '중요'

(이미지제공=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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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허운연 기자] 고립은둔은 청년 본인은 물론 그 주변인, 즉 가족에게까지 피해를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대체로 대인관계에서 매우 조용하고 소극적이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분노를 폭발적으로 표현하거나 언어적·신체적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수년 동안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가족들을 힘들게 하거나 집 안을 쓰레기 집처럼 만들어서 지역주민센터로 신고가 들어가기도 한다. 이에 가족들도 우울감을 호소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2020년 광주광역시가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은둔 당사자 237명 가운데 61.5%는 '가족에게 화를 내거나 폭력을 행사했다'고 답변했다. 가족이 느끼는 폭력의 정도는 달랐다. 조사에 참여한 112명의 가족 가운데 69.6%는 화를 내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폭력 경험 비율이 가족이 8.1%포인트 더 높았다. 

실제 가족간에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조필근(가명, 42세)씨는 "아버지는 때리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결국 30대 중반쯤 산에서 서로 주먹다짐을 했다"고 회상했다. 조씨가 "이렇게 살도록 할 것이라면 왜 태어나게 했냐, 버리지"라며 아버지에게 대들자 격분한 아버지가 조씨의 얼굴을 때린 것이다. 다만 조씨가 복싱을 배우던 때라 자연스럽게 반격을 했고 아버지는 내리막길에서 굴러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조씨는 "2년간 왕래를 끊었으나 최근 아버지가 사과를 해서 이제는 괜찮아졌다. 화해했다"는 후기를 전했다. 

은둔 생활을 하면서 발생한 문제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가족과의 관계 악화다. 가족과의 단절이 가장 먼저 나타났고 이로 인해 가족 역시 심한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타인인 가족과의 갈등이 발생하면서 더욱 고립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사진제공=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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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란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장은 1997년 IMF 경제위기 사태가 최근 청년들의 고립은둔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 센터장은 "IMF 이후 계약직이 생겨나고 고용이 불안해졌다. 이 과정에서 이혼 가정이 많이 발생했고 버려지는 아이도 많았다"며 "사회가 불안해지면서 가정까지 영향을 받은 셈인데 이 시기에 영유아기를 보낸 세대가 지금 2030"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모의 불안과 경제적 불안 등은 삶을 고단하게 하고 이것들은 알게 모르게 아이에게 다 침투하게 된다"며 "이때 태어난 아이들의 나이대가 보통 20대 중반이다. 맞벌이 등 바쁜 생활 속에 방임되기도 하고 과잉보호를 받기도 하는데 부모의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아이들은 실패한 것으로 느끼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미 일본의 경우 중장년~노인 세대까지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많다. 일명 8050, 80대 노부모가 50대 자녀를 돌보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40대 중장년의 고립은둔이 확인되고 있는 상황이다. 고립은둔을 방치하면 청년을 거쳐 중장년까지 이어지고 그 심각성은 가족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가정폭력 등 가족에 의해 고립은둔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고립은둔 청년들이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도 있는 만큼 고립은둔의 계기를 조기에 확인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김혜원 파이나다운 이사장은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 형성이다. 바로 고립은둔이 청년 본인과 가족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며 "공공문제로 인식시키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문했다.   

특히 "전문가 양성도 중요하다. 관련 연구를 지원해 전문가를 양성해야 하고 교사들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청소년기에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곳은 학교이기 때문에 부모 교육도 중요하지만 교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약 10년 동안 은둔했던 20대 중반의 전진식(가명)씨는 게임에 빠진 뒤 점점 바깥 출입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은둔하게 됐다. 전씨의 아버지는 "학교도 안 가고 밖에도 나가지 않으면서 게임만 하고 아버지 입장에서 미칠 것 같았다. 컴퓨터도 몇 대를 때려 부쉈는지 모르겠다"며 과거 은둔하는 전씨를 많이 때린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그래도 해결되는 것은 없어 점점 체념하게 됐다. 부모도 점점 지쳐가고 아들만 보면 안타깝고 복잡했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전씨는 공익근무를 시작하면서 '사회'로 나오고 있다. 훈련소에서 조기퇴소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전씨의 아버지는 "사회에 나가는 '첫발'이다. 부모 입장에서 행복하다"고 전했다. "아들의 의지도 엿보인다. 공익근무 전 집에서 출근지까지 직접 나가봤는데 이것도 감동이었다"며 아들의 달라진 모습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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