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3.05.22 06:00

'사지 멀쩡한 청년 나라 지원만 바란다' 인식 개선 위해 정치권·당사자·부모·민간단체 협력해야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고립은둔청년의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면 향후 더 큰 사회경제적 파장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경고다. 

우리보다 앞서 히키코모리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 일본은 은둔형 청년 1명당 만 25세부터 65세까지 세금을 내지 않고 사회보장 혜택만 받을 경우 발생할 손해 비용을 약 16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올해 1월 서울시가 추정한 국내 은둔형 외톨이 숫자 61만명에 일본의 추산치를 적용할 경우 한국의 사회적 비용은 약 976조원에 달한다.

이같은 위기에 맞서 선제 대응해야할 정치권은 정작 '스스로 문을 닫고 사지 멀쩡한 청년들이 나라의 지원만 바란다'는 등 비판적 목소리를 의식, 소극적인 대책만 내놓고 있다. 21대 국회가 1년이 채 안남은 상황에서 3건의 법안만 발의된 상태다. 이마저도 강대강 여야 대치로 인해 국회 상임위원회 논의조차 못 하고 계류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여당이 야당과 합심해 법제화를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정치인들이 고립은둔 청년 문제는 개인·가족 차원을 넘은 '사회구조적 문제'이자 정면 대응이 시급한 현안이라는 점을 대중에게 설득하는데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은톨이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도 뒤따라야한다고 당부했다.  

방치하면 스노우볼 효과로 피해 막대

고립 은둔 청년들의 문제를 방치한다면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와 우리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취약계층 청년 범위 및 지원에 관한 연구'(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청년 은둔형 외톨이 청년 한 명이 만 25세부터 65세까지 납세를 하지 않고 사회보장을 받을 경우 16억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지난 1월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시행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청년 중 고립·은둔 비율은 4.5%로 추정됐다. 이를 서울시 인구에 적용하면 최대 12만9000명, 전국 단위로 넓히면 약 61만명에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사회적 비용을 단순 추산한다면 약 976조원에 달한다.

결국 초기에 비용을 들여 고립청년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훨씬 덜 들이는 최선책이라는 것이다. 

고립은둔 청년들이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채 세월을 허비한다면 국가에 세금을 지급하지 않아 재정에 보탬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소비 여력의 부족으로 인해 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더욱이 은둔으로 인해 청년 자신은 물론 가족의 경제적인 위기를 확대시키며 결혼마저 기피하게 되는 만큼 출산아 수가 줄고 고령화 속도를 높이는 부작용도 속출한다.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현재 해결하지 못하면 '스노우볼(눈덩이)' 효과가 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는 셈이다. 

고립은둔청년 관련 법안 반대 의견. (사진=국회의안시스템 캡처)
고립은둔청년 관련 법안 반대 의견. (사진=국회의안시스템 캡처)

법제화 위해 사회적 인식 변화와 합의 필수

정부는 일부 부적응 청소년을 대상으로 유사한 정책을 집행했지만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은둔형 외톨이 정책 입안을 망설이고 있다.

현장 전문가들은 다른 소외계층과 달리 정책적인 성과를 수치화하기 어려워 은둔형 외톨이들이 계속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다수의 은둔형 외톨이들이 외부활동을 기피하고 있어 구체적인 숫자를 알 수 없고 이들 중에서 어느 정도를 사회에 돌아오게 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목표치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주희 청년재단 사무총장은 "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에 청년 관련된 부서가 있지만 예산·사업집행을 하는 부서가 아니라 조정역할을 한다. 고용부·복지부 소관 각 청년 과가 있지만 아직 사회문제로 안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실제로는 심각한데 정부 부처나 공무원들이 받아들이는 속도가 우려와 다르다. 사회적으로 '고립은둔 청년들은 너희가 스스로 문을 닫은 것이잖아'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실상은 사회문제이기에 그들을 지원할 의무는 있다. 구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덜 벌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년재단은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희망펀드를 조성하자고 제안하면서 그 관리·운영을 맡을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탄생했다. 

국회에서 법이 통과돼야 기획재정부와 관련 부처는 제도 시행의 근거를 확보하고 관련 예산을 편성하게 된다. 법률 제정에 의해 조례 추가 제정으로 이어지면서 실질적 지원이 늘어날 수 있다. 

박 사무총장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왜 사지멀쩡한 튼튼한 애들한테 주냐'라는 의견이 강하기 때문"이라며 "서울시 여론조사 기준으로 인구비례 60만 넘는 인력이기에 향후 이들이 늘어나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된다"고 설명했다.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결국 국민이 낸 세금에서 나오는 정부 예산을 공적으로 쓰는 일이다. 이를 위해 이 문제 해결이 꼭 필요하다는 정당성부터 확보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정부, 국회에서의 법률 제도적 정비와 함께 고립은둔 청년 개인과 그 가족, 민간 지원 단체, 언론 등이 합동해 사회적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박 사무총장은 "고립은둔은 단순히 개인차원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경제나 우리사회가 처한 여건이 그 청년의 성장 이행기에 상호작용된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 사회가 함께 고립은둔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며 "언론 역시 저활력에서 다시 활력으로 돌아온 사람들 소개하고 고립은둔을 나쁘게 인식하지 않는 기사를 게재하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윤창현(가운데) 국민의힘 의원과 장예찬(왼쪽)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지난 3월 7일 서울 여의도 윤창현 의원실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청년재단)
윤창현(가운데) 국민의힘 의원과 장예찬(왼쪽)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지난 3월 7일 서울 여의도 윤창현 의원실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청년재단)

관련 법안, 단지 3개…21대 국회 1년도 안남아 폐기 위기 

전국 지자체에서 22일 기준 15개의 조례를 운영·발의하는 등 고립은둔청년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표명하고 있지만 국회에선 여전히 적극적인 정책 입안이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21대 국회에 고립은둔청년을 위한 법률안은 현재 3건에 그치고 있다. 

22일 국회의안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25일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조은희 국민의힘 의원) ▲지난해 10월 25일 '은둔형 외톨이 지원법안' 제정안(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올해 5월 1일 '청년자립지원법안'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등이 발의됐다. 

지난해 발의된 법안들은 최소 반년 이상이 지나가고 있어도 위원회 심사에 머물러 있으며 올해 발의된 법은 아직 입법 예고기간도 마치지 못한 상황이다. 더욱이 각 당 의원들이 내놓은 법안에 자당 의원들만이 참여하고 상대당과의 교류가 전무해 공감대 형성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뉴스웍스 취재 결과 조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김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경우에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만 됐을 뿐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된 적이 없다. 

현재 여야의 강대강 대치가 지속되면서 내년에 마무리되는 21대 국회에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이대로 폐기될 운명에 놓여 있다.  

고립은둔 청년 관련 법안에 참여했던 국회 관계자는 "법안을 준비하면서 관련 단체·사람들을 만나고 열심히 경청하고 만들었지만 우선 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다"면서 "이제 21대 국회가 1년도 안 남았다. 사실상 이런 상황에서 여태까지 나온 고립은둔 청년들과 관련된 법안들이 넘어가기 어렵다고 보지만 그 틀과 뼈대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 안 된다고 하더라도 꼭 다음 국회에선 이 법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실제 뉴스웍스가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안시스템을 확인해 본 결과 고립은둔형 관련 법제도에 대한 국민 반대의견이 많았다. 

예컨대 '은둔형 청소년 타이틀 붙여서 가족 포함 사회문제로 몰아 감시시스템을 구축하고 세뇌교육시키는 악법 반대한다', '취약계층이라고 하는데 60년대에는 더 어려워도 청년들이 어디서 일하든 일하려 했지만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돈도 주고 혜택을 국가에서 주니까 빈둥거린다' 등의 이유로 법안을 반대하고 있다. 

물론 청년들의 은둔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 의견들을 '억지 비판'으로 몰아세우기 힘들다. 

다만 뉴스웍스 취재를 종합해보면 은둔은 개인적 문제 뿐만 아니라 학교·가정 폭력, 실패에 대한 낙인 등 '사회적 문제'에 기인한 영향도 크다. 국가가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책임질 주축인 청년들을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유도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립은둔청년들에게 필요한 상담업무, 취업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는 간접 지원을 위해서라도 법안이 만들어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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