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지혜 기자
  • 입력 2023.05.18 06:00

[방문 여는 방법㊦] 日 후생성, 2010년 개념 정의·67개 지자체 지원센터 가동…대구 '1년 이상' vs 제주 '일정 기간 이상' 제각각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고지혜 기자] 은둔형 청년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시기는 무려 20년 전, 2000년대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은둔형 외톨이가 눈에 띌 정도로 나타났지만 먹고 살기에 급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저 "정신병은 아니니까 괜찮아"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처럼 20년 동안 수수방관 됐던 은둔형 외톨이의 부작용이 날로 커지면서 최근 법제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은둔형 외톨이 대책에 대한 논의의 첫발을 뗀 한국은 해외 주요 국가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일본을 시작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현하는 공통된 현상으로 각국에서는 이미 관련 정책을 수립하거나 추진하고 있다.

일본 내 최대 정보를 묶어놓은 일본어 사전 'Weblio' 에 등재된 히키코모리 정의. (자료=Weblio 캡처)
일본 내 최대 정보를 묶어놓은 일본어 사전 'Weblio' 에 등재된 히키코모리 정의. (자료=Weblio 캡처)

◆일본, 2010년부터 용어 통일한국, 15개 지자체마다 달라

일본은 은둔형 외톨이를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라고 칭한다. 히키코모리는 일본어로 '틀어박히다'를 뜻하는 '히키코모루'의 명사형으로 원래는 숨어 사는 정치적 은둔자를 뜻하는 단어다. 1950년대 '부등교'라는 용어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은둔형 외톨이보다 50여 년 먼저 사회에 등장했다.

히키코모리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일본은 명확한 용어 정의부터 시작했다. 히키코모리 기준을 정해야만 진정 이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2010년 한국의 보건복지부 격인 일본 후생노동성은 히키코모리를 '다양한 요인의 결과로써 사회참가(의무교육을 포함한 취학, 비상근을 포함한 취업, 가정 외 교류 등)를 회피하고 원칙적으로 6개월 이상에 걸쳐 대부분 가정에 머물러 있는 상태'로 정의했다.

현재까지도 일본 전역에서 이같은 정의를 기준으로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히키코모리 지원을 위한 초석이 단단히 놓여진뒤 2010년 '젊은이의 생활에 관한 조사'부터 2015년 '청년 생활에 관한 조사', 2018년 '생활 상황에 관한 조사', 지난해 11월 '어린이-청년 의식과 생활에 관한 조사'에 이르기까지 14년간 히키코모리에 대한 모든 통계 결과가 집계됐다. 

실태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일본은 정부·광역지자체·기초지자체 간 역할을 명확히 규정했다. 후생노동성이 관할 부서로 기본적 가이드라인과 규정을 수립하면 광역지자체는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를 설치해 인재육성 연수 사업을 진행한다. 기초 지자체에서는 상담, 보호자 대상 세미나 등 히키코모리 서포트 사업을 진행한다. 명확한 역할 배분와 함께 일본 정부는 관계부처 횡단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면서 모든 지자체가 일관성 있는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반면 한국은 은둔형외톨이 개념부터 중구난방이다. 현재 은둔형외톨이 조례를 갖춘 15개 지자체 은둔형 외톨이를 제각기 다르게 정의했다. 일례로 제주특별자치도 조례에서는 '일정 기간 이상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가족 등과 제한적인 관계만 맺고 생활하는 사람'으로 정의한 반면, 대구광역시는 '1년 이상 장기 미취업 등으로 사회적 관계를 단절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통일되지 않은 정의로 진행된 실태조사는 불명확성을 더욱 고조시킬 수밖에 없다. 

또 전국 67곳의 지자체 지원센터가 있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는 은둔형외톨이를 지원하는 센터가 서울특별시와 광주광역시 단 두 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한국도 중장년 대비책 필요

일본은 최근 중장년 히키코모리를 위한 지원 대책에 열을 올리고 있다. 1990년대 갑작스러운 '버블 붕괴' 이후 수많은 젊은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시기에 좌절을 경험했고, 자연스레 히키코모리가 급속히 증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40~60대가 됐고 중장년 히키코모리로 문제가 확대됐다.  

지난해 11월 조사에 따르면 일본 히키코모리는 146만명으로 추산됐고, 그중 40대가 40%, 60세 이상이 25%를 차지하고 있다. 이 집계는 중장년 히키코모리 비중이 청년을 넘어섰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에 일본 정부는 24세 이하로 제한했던 상담 연령 제한을 없애고, 담당 부서도 청소년부에서 복지 부서로 옮기는 등 부리나케 중장년 히키코모리를 위해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 관련 정책 방향은 오로지 '청년'에만 집중돼 있다. 이러한 방향성은 청년 히키코모리 지원에 힘써왔지만 최근 중장년 문제에 새롭게 부딪힌 일본의 전례를 따라가는 꼴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도 한국 정부도 은둔고립이 연령대를 가리지 않는 공통된 문제라는 큰 틀의 인식에 따라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장년 외톨이는 곧 고독사와 이어지기 쉬워 더 큰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김옥란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장은 "4050 직장인들이 실패해서 고독사하는 경우가 많다. 고독사 비율도 노인보다 중년이 훨씬 많다"며 "지금 청년 위주로 (은둔고립 문제가) 이슈화됐지만 외환위기 사태 영향을 받은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도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소년 관련 핀란드 국가 전문 조직 (인토)에서 발간한 아웃리치 청년 사업 가이드북. (자료='탐정 청소년 작업 핸드북' 캡처)
청소년 관련 핀란드 국가 전문 조직 (인토)에서 발간한 아웃리치 청년 사업 가이드북. (자료='탐정 청소년 작업 핸드북' 캡처)

◆해외 주요국도 관련 정책 수립·운영 

은둔형 외톨이를 최근 들어 주목하기 시작한 한국과 달리,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은둔고립을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정부와 지역사회 차원의 관련 정책을 수립한 상태다. 은둔고립의 감정인 우울, 고독, 분노가 개인의 특정한 문제가 아닌 사회적 이슈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히키코모리 관련 사업을 후생노동성과 내각부, 소비자청 지방협력과, 문부과학성, 농림수산성 등 5개 부처로 확대해 다루고 있다. 히키코모리 지원 정책 연계를 위해 히키코모리 지원 부처 외 타 관계부처와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다. 히키코모리 지원을 위한 예산안은 지난해 기준 213억8000엔(약 2115억원)에 달한다. 

사회적 고립을 흡연·비만만큼이나 중요한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영국 정부는 '고독부 장관'을 두고 있다. 고독부 장관은 2018년 전 세계 처음으로 영국에서 시작됐으며, 국민의 고독에 관한 전략을 마련하고 연관된 사회단체 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체육시민사회 장관이었던 테레사 메이 총리가 고독부 장관으로 겸직 임명되면서 외로움·고독에 관한 범정부적 지원 전략이 수립됐으며, 이를 계기로 시민사회부 장관은 고독부 장관을 겸직하기로 결정됐다. 현재까지 총 5명의 장관이 영국 고독에 대한 전략을 발표했다.

전략 중 하나로 영국 정부는 기업, 자선단체, 공공기관 70여 곳과 외로움 대처 네트워크(Tackling Loneliness Network·TLN)를 만들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1년 중 5일 동안 '외로움 인식 주간'으로 지정하고, 이 기간에 시민들이 소외된 친구, 가족, 이웃에게 편지를 써 전달하는 프로젝트를 촉구하고 있다. 

다른 나라도 고독부 장관을 벤치마킹했다. 일본은 지난 2021년 2월 내각관방에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신설했고, 테츠니 사카모토가 첫 외로움부 장관을 맡았다. 호주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외로움 책임 장관 신설을 위한 정치적 노력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도 마찬가지다. 핀란드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외로움에 대한 행동 계획을 수립했으며, 스웨덴에서는 '외로움과 개입 전략'(도시 계획, 교통, 문화, 영리사업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에 대한 공적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핀란드 정부는 고립되어 있거나 은둔하고 있는 청년을 '사회적으로 배제된 청년'에 포함하고 지방정부가 진행하는 '아웃리치 청년사업'에 매년 청년 사업 예산의 절반 이상을 투입 중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21년 발표한 '취약계층 청년 범위 및 지원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청년 고립 문제를 중대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중앙정부가 은둔청년을 우선 핵심 지원 대상자로 규정할 필요가 있으며, 재정 지원을 비롯한 지자체 지원으로 협업 하에 서비스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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