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4.06 16:38
(사진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페이스북)
(사진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페이스북)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차세대전지는 정보산업의 3대 핵심부품이자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도약대이다. 2021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수출은 1493억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23%를 차지했다. 이차전지의 2030년 세계시장 규모는 3517억달러로 2020년보다 8배 이상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정보통신기술의 융·복합, 인공지능 발전 가속화, 사물인터넷 확산 등에 따라 높은 성장이 예상된다.

이같은 3대 주력기술에서 한국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해결해야할 과제도 적지 않다.

반도체의 경우 고집적·저전력 반도체 생산을 위한 미세화경쟁에서 앞서나가면서 3나노미터(nm)까지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1nm이하는 원자 크기 수준으로 물리적 한계에 따라 공정의 난이도가 치솟게 된다. 신개념 소자 개발이 시급하다. 빅데이터 처리 수요가 커지고 딥러닝 활용도 늘면서 병렬처리에 특화된 AI반도체, 연산과 저장 기능을 통합한 PIM(Processing In Memory) 요소기술 확보가 중요해졌다. 초미세화 기술의 난이도 상승으로 전(前)공정 기술 개발을 통한 칩 성능 향상 둔화 추세를 감안, 후(後)공정을 통해 성능 고도화를 추구하는 이종접합, 3D패키징 등 고부가가치 패키징 기술도 필요해졌다. 

OLED 중심의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에선 2021년 83.1%의 점유율로 세계 정상을 유지했지만 디스플레이 전체 시장의 경우 중국의 줄기찬 추격으로 2020년 1위에서 2021년 2위로 밀려났다. 소재와 부품, 장비 등 원천기술도 미국이나 일본에 뒤지는 신세다. 핵심원천기술과 차세대 기술특허마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년간 매출이 크게 늘고 있는 이차전지 업계는 아직 웃을 형편이 아니다. 현세대 기술은 중국에 앞서고 있지만 핵심 소재의 중국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어서다. 차세대 소재개발도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주요 국가의 이차전지산업 종합경쟁력을 파악하면서 중국을 95.5점으로 세계 1위로 평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은 중국보다 9.2점 뒤진 86.3점을 받았다. 3위인 일본(84.6점)과의 격차는 1.7점에 불과했다. 

기업은 미래 핵심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신시장을 창출해야만 지속적인 성장이 담보된다. 현재 보유한 기술이 경쟁기업을 능가한다해도 뒤쫓아올 염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초격차'를 확보하려면 예상되는 향후 수요를 기반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 이 과정에 민관협력, 전문인력 양성, 연구개발 인프라 구축, 국제협력 강화 등이 동반된다면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과학기술은 한 국가의 운명과 미래를 좌우하는 전략무기이자 핵심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주요 국가마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에서 국가전략기술 개발과 확보에 사활을 거는 것도 경제성장과 기술안보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부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감안, 체계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부족한 점도 적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10월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모빌리티, 차세대원자력, 첨단바이오, 수소 등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했고 산업통상자원부도 국가첨단전략기술로 15개 기술을 뽑은 바 있다. 그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차세대전지는 민간기업의 뛰어난 역량을 바탕으로 경제성장에 기여해왔다. 문제는 정부의 연구개발비가 기초·원천, 응용·개발, 상용화단계에서 ‘분절적'으로 지원됐다는 점이다.

(표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표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6일 오전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차세대전지 등 3대 주력 기술 분야에서 초격차 확보를 목표로 미래 핵심기술 100개를 선정하고 오는 2027년까지 5년간 민간에서 156조원, 정부 4조500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 자금을 투입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3대 주력기술 초격차 R&D전략'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미래 시장을 좌우할 차세대 기술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R&D를 지원하는 것은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정책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미래기술 육성으로 초격차를 확보하고 신격차를 창출한다는 목표 아래 민간 전문가와 함께 수립한 '반도체 미래 기술로드맵'을 바탕으로 45개 핵심기술이 선정됐다. 비휘발성, 초고속 ,고집적 신메모리를 개발하고 CMOS 공정과 호환되는 신소자를 개발할 계획이다. 디스플레이 분야의 경우 세계 1위 수준의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해 초실감, 차세대 프리폼 등 28개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로 했다. 차세대전지에선 2030년 차세대전지 1등 국가 실현을 목표로 ▲혁신적 효율·성능 향상 ▲안전성·내구성 향상 ▲원료·소재 자립화와 관련된 27개 기술을 확보하기로 했다.

미래 반도체 핵심기술 (표제공=과기부) 
미래 반도체 핵심기술 (표제공=과기부) 

무엇보다 3대 기술 분야의 단절 없는 연구지원을 위해 과기정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와 산·학·연 전문가, 관련 단체로 구성되는 '민관 연구협의체'를 빠르면 상반기 중에 출범시킨다는 방침이 주목된다. 분야별로 신설될 협의체는 범정부 차원에서 기업 수요를 기반으로  R&D 사업 기획부터 연구성과 공유, 활용, 국제협력에 이르기까지 전 단계를 빈틈없이 연계하며 지원할 방침이다. 날로 심화되는 기술패권 경쟁과 자국산업보호주의 흐름에서 우위 분야를 선점하려면 민관이 서로 논의하고 협력하면서 중장기 관점에서 신격차를 만들어내기 위한 전략적인 R&D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매년 미래 핵심기술을 수정, 보완하면서 중점지원한다는 방침도 눈에 띈다. 하루하루 기술이 급변하는 것을 감안, 민간 R&D 투자가 제때 이뤄지도록 전략기술과 관련된 부처들이 관련 법률과 제도에서 세부기술을 신속히 지정하고 변경한다는 것이다. 

미래 디스플레이 핵심기술 (사진제공=과기부)
미래 디스플레이 핵심기술 (사진제공=과기부)

정부는 100대 미래 핵심기술들이 적기에 확보되도록 기존 연구개발예산 지원 사업에 우선 반영하고 미흡하거나 공백이 있는 분야는 신규사업을 기획, 추진할 방침이다. 효과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반도체 분야에선 차세대 공정 및 설계 연계지원, 첨단패키징 기술개발, 반도체 미세기판 원천기술개발, 차세대 반도체 장비 원천기술 개발, 전력·차량용 반도체 기술 개발을 민관협업형 원천 R&D로 기획, 내년 신규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초고해상도 구현이 가능한 온실리콘 기반 기술개발, 메타버스용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공간구현 디스플레이 등 신시장을 창출할 원천기술 확보가 내년 신규 사업으로 이행될 전망이다.

차세대전지 핵심기술 (사진제공=과기부)
차세대전지 핵심기술 (사진제공=과기부)

초격차 기술 확보의 주역은 전문연구개발인력이다. 계약학과, 전공 트랙 신설 등을 통해 민간기업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장수요를 100% 반영한 현장교육이 더 강화되어야 함도 물론이다. 중소기업이나 지방 기업이 '계약정원제'를 활용해 반도체 분야 전문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도 바람직하다. 차세대 기술과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3대 기술분야에서 주요국 정책과 산업 흐름, 국제 동향 등에 정통한 전략가를 키워내는 것도 긴요하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차세대전지는 1위 기업이 모든 이익을 챙기는 '승자독식' 구조를 갖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한국 기업들이 승자가 된다면 그 과실은 세금 납부와 고용 창출, 소비 등을 통해 국가와 국민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정부는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 분야에서 R&D 투자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자금, 인력, 세제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좌고우면할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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