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5.03 16:27
2일 국회에서 열린 간병문제 해법 모색 토론회에서 정의당 강은미 의원(앞줄 왼쪽 네 번째), 더불어민주당 정춘숙(다섯 번째) 의원, 김민석(여덟 번째) 의원 등이 발제자, 토론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보건의료노조 홈페이지 캡처)
2일 국회에서 열린 간병문제 해법 모색 토론회에서 정의당 강은미 의원(앞줄 왼쪽 네 번째), 더불어민주당 정춘숙(다섯 번째) 의원, 김민석(여덟 번째) 의원 등이 발제자, 토론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보건의료노조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 "30대에 한창 사회활동을 하다 (우측 뇌가 소멸돼 몸에 마비가 온) 어머니 간병을 시작한 이상민(가명)씨는 50대가 되어서야 다시 사회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10여년의 시간 동안 그에게 남은 건 요양보호사 자격증, 그리고 그가 놓친 것은 직업과 결혼이었다. 제작진과 한 인터뷰에서 ‘(내가 한 간병은) 치유가 아닌 보관이라고 생각된다. 간병의 동기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었는데 하루에도 생각이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그를 취재하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빈소는 차려지지도 못했다." (이유심 KBS 시사직격 PD)

#2. “간병이 절실하고 고액의 간병비가 들어가는 중증질환 환자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대상에서) 상당수 제외되어 있어 불만이 크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질병뿐만 아니라 간병을 대비해 민간의료보험에 또 가입해야 하고 민간의보에 가입하지 않는 환자들은 고액의 간병비로 고통을 겪고 있다."(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긴 병에 효자가 없는 법이다. 질병에 걸리거나 노화로 인해 스스로 거동하기 힘든 처지에 놓이면 누구나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가족 기능 축소에도 불구, 여전히 환자 간병과 돌봄에 대한 책임이 가족에게 전가되는 실정이다. 진료비는 국민건강보험 급여로 상당부분 해결된다지만 하루 9~15만원 가량 들어가는 간병비는 대체로 환자 본인이나 가족이 전액 부담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전국 간병 경험자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 2일 발표한 '간병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간병을 경험한 국민의 96%가 간병비가 '부담스럽다'고 응답했다. 한달 간병비는 400만원을 넘기 일쑤고 최고 500만원에 달한다. 

간병비가 병원비보다 훨씬 비싸다보니 가족이 직접 간병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이로 인한 기회비용도 발생한다. 장기간 간병에 지친 나머지 암으로 투병 중인 아내를 죽이는 남편이 발생하는 등 간병살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병든 가족을 보살피다가 지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간병자살은 물론 간병이혼, 간병실직, 간병파산, 간병전쟁 등이 사회문제화된 지 오래다.

개인적인 간병부담을 해소하고 환자안전과 감염관리 등 입원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2013년 '보호자없는병원 포괄간호서비스 시범사업'에 이어 2015년부터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시범사업이 전국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8년째 실시되면서 간병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물리치료사 등이 팀을 구성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환자가 간호인력을 통해 24시간 간호간병을 받을 수 있는데도 본인부담비용은 하루 2만원에 미치지 않는다. 이용자 10명 중 8명이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이런 결과는 건강보험 급여 지출로 얻어졌다. 통합병동 입원료 수가는 일반 병동 입원료 수가의 1.7배~2.0배에 이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225만7000명에게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7737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상자는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암환자가 60%를 넘는다. 종합병원은 외상환자와 암환자가 15% 가량을, 병원에선 근골격계 환자가 절반을 차지한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급성기 병원에 입원한 경증이나 중등도 환자 위주로 실시되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평가다. 요양병원은 '치료'가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대상 의료기관에서 빠졌다. 간병이 절실하고 고액의 간병비가 들어가는 중증질환 환자도 상당수 제외됐다. 

장숙랑(왼쪽 두 번째)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학장이 3일 국회 대토론회에서 토론을 이끌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장숙랑(왼쪽 두 번째)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학장이 3일 국회 대토론회에서 토론을 이끌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약자의 눈'과 보건의료노조,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이 3일 국회에서 ‘초고령화 시대, 간병파산, 간병문제 해법을 모색한다’ 토론회를 갖고 대안을 모색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는 이날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 시행 8년의 평가와 전면확대 실시를 위한 정책과제'를 기조발제하면서 ▲사적 간병비 부담 5분의 1이하로 감소 ▲통합병동 간호사당 환자수 평균 9.9명으로 국제수준 향상 ▲낙상·욕창 발생률 하향 안정 추세 ▲통합병동 병상당 연간 200~800만원 순이익 기록 ▲지출 10억원당 직접고용 25.1명, 간접고용 19.7명 등 총고용 44.8명(보건사회복지서비스 산업 대비 3.5배) 등을 성과로 제시했다. 다만 참여기관이 2019년이후 둔화되면서 기관당 병상 수는 100병상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으며 전체 병상수도 7만병상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김 교수에 따르면 간호필요도 중등도 이상 환자 입원건수를 기준으로 상급종합병원은 전체 간병수요의 68.5%를 차지하는데 비해 전체 병상에서 통합병상 점유율은 16.7%에 그쳐 상대적 충족률이 24.4%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종합병원과 병원은 상대적 충족률이 각각 269%, 281.3%에 이른다. 이를 감인, 김 교수는 300병상 이상 급성기병원 중심으로 통합병동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공공병원은 전 병동으로 넓히고 상급종합병원에 대한 병동수 제한(현재 4개 병동)도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포스터=보건의료노조 홈페이지 캡처)
(포스터=보건의료노조 홈페이지 캡처)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이 이날 '보호자없는 병원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까지, 이제는 간병국가책임제를!' 발제자료를 통해 ▲통합병동 시행 중인 300병상 이상 병원 중 간호등급이 높은 병원부터 병동제한없이 단계적으로 전면 확대 ▲공공병원은 지역 관계없이 최우선적 전면 확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 매년 20%이상 확대 ▲2026년까지 300병상 이상 의료기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시행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한 것이 주목된다. 그는 "우리나라 경상의료비 규모는 2030년 400조원으로 GDP의 16%로 전망되고 건보 급여비는 2022년 82조원에서 2030년에는 152조원으로 급증할 것"이라며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의사협회, 병원협회, 간호협회, 간호조무사협회, 보건의료노조, 요양보호사협회, 돌봄 및 간병단체 등이 '내부정치'를 넘어 국민을 바라보는 '연대와 협력의 정치'를 통해 정부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간병과 돌봄의 상생모델을 만들어 '간병국가책임제'의 필요충분조건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편의와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크다. 이와 관련,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현행 간호간병통합서비스제도는 대상 환자가 대부분 경증 또는 중등도 질환이기에 중증은 여전히 고액의 간병비를 지급하거나 가족간병을 해야 한다"며 "대상을 중증으로 확대하고 간병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간병사 제도화에 나서면서 병상 상주 공동 간병방식으로 변경해야한다는 것이다.

2020년 현재 국민의 기대수명은 83.5세이지만 건강수명은 66.3세에 그친다. 아픈 채 살아가야하는 기간이 17.2년에 달한다. 간병으로 인한 고통을 더 이상 개인이나 가족에게 맡겨서는 안 될 당위성도 여기에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이던 2021년 9월 2일 보건복지부는 총파업을 앞두고 보건의료노조와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대해서는 참여를 희망하는 300병상 이상 급성기 병원에 대해 전면확대하는 방안을 2022년 상반기 중에 마련하고 2026년까지 시행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런 약속과는 달리 복지부는 현재까지도 전면확대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대해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축사에서 "2016년부터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상급종합병원과 서울 소재 병원으로 확대하면서 보완이 필요한 사항이 적지 않게 확인됐고 제도 도입의 기본 목적인 간병기능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현장의 의견이 있었다"고 언급한 것이 관심을 끈다. 이어 조 장관은 "작년 12월에 보건의료전문가, 보건의료·환자단체, 현장 전문가등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7차례에 거쳐 제도 전반의 개선방안을 논의했다"며 "상반기 내에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 발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더 이상 간병을 이유로 가족간 비극이 발생하는 것부터 막아야 한다. 간병지옥에서 벗어나려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을 탓하기 앞서 이들이 인간다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병인 등 이해관계자의 역할과 입장을 감안해 합리적인 제도개선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