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5.17 16:45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열린 교육개혁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사진=원성훈 기자)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열린 교육개혁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993년 3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추진에 궤를 맞춰 삼성재단이 운영하던 중동고등학교도 '한국의 이튼스쿨'을 만들자는 야심 찬 기획 이래 숱한 개혁과제들을 과단성 있게 추진했다. 일부 과제는 현장에 정착되었으나 세계적 인재들을 유치하자는 기획은 처참하게 좌절됐다. 사학에 대한 통제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평준화 정책을 극복하지 못했기 떄문이다. 오늘날 삼성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났지만 교육은 여전히 하향 평준화의 길로 가고 있다."(오세묵 전 중동고 교장)

"2022 개정교육과정과 2025년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 적용되는 2028학년도 수능과 대입 제도 개편에서 현재 제기된 문제를 극복하고 대학수학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은 수능을 약 2주 정도 앞당기고 전형기간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4개월로 줄이면서 수시와 정시를 통합하는 것이다. 고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고 '수시 납치'라는 모순을 극복할 수 있으며 대학 선택의 폭도 확대하고 수능성적을 확인한뒤 지원함으로써 불필요한 경쟁을 줄일 수 있다."(권혁제 부산교육청 창의융합교육원장)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주최한 '윤석열 정부 교육개혁에 바란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강조한 내용이다. 

자율형사립고는 연간 100만명이 태어나고 오전·오후 2부제 수업을 실시하던 시절 탄생한 고고평준화 제도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 시절 도입됐다. 당시 이해찬 교육부 장관은 "시장원리를 도입해 교육개혁을 이루겠다. 교육도 경쟁과 시장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학생들의 경쟁을 부추기는 성적 등급 책정, 포상 제도, 수업 관행 등을 죄악시하고 협력학습과 연대교육을 강조하면서 시험 없고 숙제 없고 훈육 없는 '3무(無) 학교'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좌파 교육자들이 새삼 되돌아볼 만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연간 25만명이 출생하는 인구 감소 시대를 맞아 학생의 학습능력과 적성, 기호 등에 맞춰 맞춤형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균등한 교육에 강조점을 둔 나머지 능력에 따른 수월성(秀越性) 교육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 한국 공교육이 초래한 부작용은 '국내 유학'으로 나타난지 오래다. 상당수 상류층 부모들은 제주도와 인천 송도 등에 설립된 국제학교에 유치원 과정부터 자녀를 앞다퉈 보내고 있다. 처음부터 외국 명문 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는다. 초등학생 1명에 대한 학비만 연간 4000만원 수준이다. 유치원부터 초중고 과정을 다 마치려면 수억원이 들어간다.

이처럼 부담이 크지만 수업의 질이 좋고 학생의 만족도가 높아 유명 국제학교는 입학 경쟁이 치열하다. 향후 학생의 학교 선택권이 대폭 확대되거나 사학의 자율성 제고로 다양한 교육과정이 운영되는 등 공교육 개혁이 끝내 이뤄지지 않는다면 중산층 학부모들마저 자녀의 국제학교 입학을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의무교육 단계부터 학부모의 자금력에 따른 교육 격차가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 9일 개회사를 읽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 9일 개회사를 읽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정경희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은 이날 개회사에서 1년 전 윤석열 정부 출범에 앞서 개최한 '새 정부 교육정책의 바람직한 방향' 토론회에서 제기된 각종 제언과 당부를 언급했다. 그는 ▲지난 5년간 곤두박질친 학생들의 기초학력 회복 ▲아이들을 좌편향교육·정치편향 교사로부터 보호하는 것 ▲문재인 정권이 무너뜨린 교육의 '공정성·다양성·자율성' 원칙 되살리기 ▲대학 경쟁력 제고로 국가발전 이끌 미래 인재 양성 등을 손꼽았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교육개혁을 연금개혁, 노동개혁과 더불어 국정운영의 3대 개혁과제로 제시한뒤 지난 1년간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과감한 정책 결단을 내렸다"며 "해결해야할 수많은 과제가 놓여 있고 정부 정책에 힘을 보태기 위해 여소야대 국회라는 절박한 정치상황도 타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경희 의원의 지적대로 윤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교육, 연금, 노동을 국정운영의 3대 개혁과제로 제시한뒤 반도체 인재 양성방안, 디지털 인재 양성 종합방안, 기초학력보장종합계획,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법 제정,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방안 등을 내놓았다. 산업계 인력 수요에 발맞춰 첨단 분야 인재 양성에 주력한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23년 만에 서울대 218명 등 수도권내 대학에서 817명이 2024학년도에 반도체·AI학과에서 증원된 것도 돋보인다.

오세목(앞줄 왼쪽 첫 번째) 전 중동고등학교 교장과 김경회(세 번째) 명지대 석좌교수, 권혁제(네 번째) 부산교육청 청의융합교욱원장이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 9일 개회사를 낭독하는 것을 듣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오세목(앞줄 왼쪽 첫 번째) 전 중동고등학교 교장과 김경회(세 번째) 명지대 석좌교수, 권혁제(네 번째) 부산교육청 청의융합교욱원장이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 9일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는 이날 '바람직한 교육개혁의 방향과 과제'에 대한 발제문에서 윤 정부가 추구할 교육개혁의 기조로 ▲학력과 인성을 키우는 교육 본질의 회복 ▲국가가 교육활동에 간섭하는 '유모 정부(Nanny State)'에서 벗어나 학부모·교육자·학교  차원의 '교육의 자유' 확대 ▲공정한 경쟁으로 실력주의 확립 ▲학교에 대한 공적 규제 완화와 사학에 대한 운영의 자유 보장으로 교육의 다양성 추구 ▲수월성 교육으로 세계 일류 인재 양성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 교육은 획일적 평등주의에 사로잡혀 특출난 영재보다는 평균이 높은 범재만 키워내고 있다"며 "첨단산업의 성패는 초격차를 이끌 인재 확보에 좌우된다"고 단언했다. 중국 등 경쟁국의 거센 추격으로 인해 가성비가 높은 상품 '제조'만으로 잘 먹고 잘 살사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세운 애플이나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테슬라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세상에 없던 기발한 제품을 '발명'하는 천재의 출현이 가능한 기반을 지닌 국가가 되어야만 국민들의 미래도 밝다.

이를 위해 중학교의 20%, 고교의 40%, 대학의 80%가 사립학교라는 실정을 감안해 사학의 자주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손 볼 필요가 크다. K-팝이 뜨고 K-방산이 뜨는 마당에 K-교육도 성가를 얻으려면 재단의 안정적인 재정 출연을 기반으로  수업료 규제부터 철폐하면서 국내 명문사학 육성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 미국, 일본의 사립 중·고교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는 대신에 학생 선발, 교육과정 운영, 교사 채용에서도 자율을 누리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사립학교에 대한 지원을 고리 삼아 운영을 통제하고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까지 박탈하는 나라는 한국 뿐일 것이다.  

(포스터제공=정경희 의원실)
(포스터제공=정경희 의원실)

교육기본법부터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립학교를 지원·육성해야 하고 사학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설립목적이 존중되도록 해야 한다. 김경회 교수는 "문 정부의 '사학 공영화' 정책을 버리고 사학의 자주성 보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사학의 교사 선발권을 제한한 사립학교법 시행령 '개악 규정' 원상 복귀 ▲임시이사가 파견된 사학법인 정상화 과정에서 종전 이사(구재단)에게 정이사의 절반 이상 추천권 부여 등을 강조했다. 일부 사학의 비리를 모든 사학의 비리인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행태부터 지양되어야 한다. 자신의 재산을 쏟아부어 학교를 세운 설립자에게 학교경영권을 보장해주는 것은 사학의 역사와 상식에 부합하는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공부를 안 시키고 덜 가르치는 '혁신교육' 등으로 학생들의 학력은 크게 떨어진 상태다. 김 교수는 "암기는 교육의 기본이고 창의성은 지식이 많아야 꽃이 핀다"며 "학력중시 정책으로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학력 최상위국가에서 추락해 인재경쟁력이 뒷걸음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첫걸음은 전국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부활하는 것이다. 정확한 학력 진단이 나와야만 개인 맞춤형 지도도 가능하다.

윤 정부 교육개혁의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만5세 초등학교 입학 학제 개편은 여론의 반발로 철회된 바 있다. 교육전문대학원 도입 역시 교대생 등의 반대로 추진이 보류됐다. 졸속정책이란 비판 속에 추진동력을 잃은 셈이다. 

교육개혁이야말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성공 가능성이 있다. 시류와 유행만을 쫓는 정책 추진도 삼가야 한다.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이 예상되는 교육과제는 교육부가 아닌 국가교육위원회가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대학이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외국인 유학생이 없으면 교직원 봉급을 주기도 힘든 곳도 적지 않다. 앞으로 대학이 학생 선발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는 입시 완전 자유화가 이뤄져야 한다. 공정하고 타당하며 합리적인 전형 제도를 통해 신입생을 뽑는 것은 대학의 몫이자 책임이다.

권혁제 부산교육청 창의융합교욱원장은 이날 "대학의 신입생 선발권은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자율성을 허용하는 입시 자율화는 반드시 이뤄져야할 과제"라며 "대학은 국가 제도에 의지하려는 경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대학 인재상을 확립하고 수학능력을 갖춘 적격자를 선발하기 위한 역량 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기울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가가 금품 수수 입학에 대한 국민적 원성을 막기 위해 언제까지 대학입시를 관리하고 감독할 것인가. 평생교육시대를 맞아 합리적인 해법을 서둘러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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