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5.19 16:51
서유석(왼쪽 다섯 번째)한국금융투자협회장, 김정재(여섯 번째) 국민의힘 의원, 류성걸(일곱 번째) 국민의힘 의원이 19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 토론자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원성훈 기자)
서유석(왼쪽 다섯 번째)한국금융투자협회장, 김정재(여섯 번째) 국민의힘 의원, 류성걸(일곱 번째) 국민의힘 의원이 19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 토론자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중·저소득계층의 연금 수령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단순한 연금세제가 요구된다. 55세 이전 IRP(개인형 퇴직연금)를 중도해지 없이 유지하고 55세 이후 퇴직할 때 퇴직급여(IRP적립액+퇴직일시금)를 연금으로 전환하면 일정 한도(1억5000만원 또는 2억원)내 전액 비과세 검토가 필요하다. 비과세에 들어가는 재원은 퇴직일시금 7분위(2억 초과) 이상 고소득계층의 세제 혜택 축소를 통해 마련한다." (이경희 한국연금학회 수석부회장·상명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그래프=강성호 센터장 발제문 캡처)
(그래프=강성호 센터장 발제문 캡처)

2022년 현재 국민연금 노령연금 급여액은 월평균 58만6000원이다. 실질 소득대체율이 21.9%에 그친다. 기초연금을 더해본들 퇴직 이전 소득 대비 30% 안팎이다. 중위소득에 미달하는 노인의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이유다. 중산층도 주택연금까지 받아야만 노후생활이 가능하다. 

국민연금 국제 비교 (표=강성호 센터장 발제문 캡처)
국민연금 국제 비교 (표=강성호 센터장 발제문 캡처)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24년째 9.0%이다. 독일(18.6%)이나 일본(18.3%)의 절반 수준이다. 저부담·고급여 설계에 따른 수지불균형 속에서 저출산·고령화 속도까지 너무 빨라 국민연금 기금은 오는 2055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큰 마당에 보험료율을 대폭 높이려는 시도가 총선을 앞두고 이뤄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 선거가 끝난 뒤가 국민연금 개혁의 적기이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만큼이나 어려운 과제다. 향후 100세까지 살게 될 초고령사회를 맞아 퇴직연금과 사적연금이 패키지로 마련되어야만 대다수 국민들이 노후 걱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 국민 개개인이 알아서 노후 자금을 마련하라고 방치하는 것은 복지국가 모델과는 거리가 멀다. 퇴직연금에 대해 국가가 소득공제나 세액공제 등의 미끼를 제공하면서 가입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제한하는 것은 개인의 재산권 침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다층소득보장제도의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퇴직연금의 중도인출 허용 사유가 신규 주택 구입, 임차보증금 마련, 요양비용, 파산선고, 천재지변 등으로 광범위해 연금제도의 본령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노후 재원 확보를 위해 영구장애, 사망, 기대여명 1년 이하 등 위급상황으로 엄격히 제한하면서 운용 중인 미국이나 영국, 호주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을 높이는 것과 함께 저소득층과 중소 사업장의 가입률 제고도 절실히 요구된다.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이 19일 열린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이 19일 열린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19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를 주최했다. 류 의원은 개회사에서 "한국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27.1%, 개인연금 가입률은 10.9%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이마저도 중도해지되거나 일시금으로 소진되고 있어 사적연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정적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개혁뿐만 아니라 사적연금의 역할 제고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퇴직연금의 종신연금화를 위해 일시금 지급을 제한하고 운용구조의 효율화 등으로 수익률을 제고하자는 논의는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근본적인 개선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나마 작년에 30인 이하 사업장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퇴직연금기금제도가 도입되고 사전지정운용제도와 적립금 운용위원회 의무화가 실시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로 여겨진다.

(그래프=강성호 센터장 발제문 캡처)
(그래프=강성호 센터장 발제문 캡처)

강성호 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센터장은 이날 '노후준비 강화를 위한 세제 개선방안' 발제를 통해 "연간 소득 8000만원 이상의 사적연금 가입률이 47.1%인데 비해 2000만원 이하는 0.1%에 그친다"며 "300인 이상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91.4%이지만 5인 미만은 10.6%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개인연금 가입률은 2013년 14.8%를 정점으로 매년 하락, 20211년에는 10.9%까지 떨어졌다. 국민연금에 늘 밑도는 수익률을 기록하면서도 은행이나 증권사, 보험사는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겨왔다. 개인연금을  내야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여기는 국민이 늘어난 것은 당연하다. 

강 센터장은 "한국의 DB형, DC형 퇴직연금의 세제 혜택은 각각 17%와 14%로 OECD 전체 평균 26%에 비해 낮다"며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다양화해 가입을 유도하고 연금화도 유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독일의 리스터연금처럼 취약계층에 대한 보조금 지원 ▲가입자 특성을 감안한 세액공제율 상향 ▲환급형 세액공제 도입 ▲세제적격개인연금 분리과세 한도 1200만원을 2000만원 이상으로 상향 ▲퇴직일시금에 적용되는 퇴직소득공제(100분의 40) 축소와 연금화 재원 활용 ▲퇴직금 연금 수령 시 퇴직소득세 감면율 확대 등을 제시했다. 그는 "10년 초과 연금 수령 시 퇴직소득세의 50% 수준으로 감면하고 종신연금 수령 시 70%를 감면하자"고 주장했다.

서유석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이 9일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축사를 읽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서유석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이 9일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축사를 읽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기획재정부와 국회 정무위원회를 겨냥한 강 센터장의 이같은 요구는 많은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를 유치해야 수익성이 향상되는 보험업계의 속사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다만 현재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퇴직금 과세 제도를 강화하자는 제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경희 교수는 이날 토론에서 "연금전환 시 퇴직소득세의 30% 또는 40% 감면은 한도가 없다"며 "모든 소득 분위에서 연금을 받아야할 필요성이 있는데도 대부분의 과세혜택이 고소득계층에 편중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정한도까지는 전액 비과세하고 초과분만 과세하는 단순화를 통해 중·저소득계층의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연금선택은 곧 비과세'라는 넛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퇴직급여 과세체계가 복잡하다보니 금융회사의 재무상담서비스는 절세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고 있다. 상류층에 비해 일시금이 아닌 연금을 받아야할 필요성이 절박한 집단은 중·저소득층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개입할 책무를 갖고 있다.

(포스터제공=류성걸 의원실)
(포스터제공=류성걸 의원실)

사적연금 활성화는 정부의 세제 지원 강화만으로 결코 달성될 수 없다. 누구나 수긍할 만한 목표 아래 타당한 개선방안을 내놓지 못한 채 서두른다면 자칫 금융회사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핵심은 운용효율성과 수익률을 동시에 제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에 대한 금융당국의 포지티브 규제 완화도 요구된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날 '다층연금체계에서 사적연금제도의 역할' 발제를 통해 "미국이나 영국, 호주는 근로기업 사용자 관련 자산에 대한 10% 또는 5% 투자 제한 이외에 운용규제는 없으며 장기투자 자산으로서 시장위험보다는 ALM(자산부채관리) 위험을 강조하고 위험자산의 분산투자를 강제한다"고 소개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퇴직연금 감독 규정 및 시행세칙을 통해 퇴직연금 유형별로 위험자산 편입비중을 규정한데다 투자가능 자산과 적립금 운용수단을 열거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포지티브 규제가 수익률 저하의 공범일 수 있다.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고 '분산된 위험의 글로벌 포트폴리오' 구축을 돕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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