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6.05 15:06

"건강보험에 가정임종급여 신설 필요"

(그림제공=김상희·인재근 의원실)
(그림제공=김상희·인재근 의원실)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탄생이 낯선 것들과의 만남이라면 죽음은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다. 수명이 길다고 오래 산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순간이 많을수록 오래 산 것이다. 살아온 날을 차분히 정리하고 좋은 기억을 한아름 품고 익숙함과 초연히 헤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웰다잉(Well-Dying)이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재근 의원은 5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주최한 '병원이 아닌 내 집에서 죽을 권리-재택 임종·가정 호스피스 제도 확대를 중심으로' 토론회 환영사를 통해 "내 집이 아닌 곳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미처 삶의 흔적을 정리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며 2020년부터 본사업으로 시작된 지 3년째를 맞은 가정형 호스피스 사업의 개선을 촉구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의료기술도 날로 발전하는 현실에서 기저귀를 찬 채 침상에서 연명치료를 받기보다는 자신이 곧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 변화 속에서 환자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인 집에서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좋은 죽음'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인재근(앞줄 왼쪽 두 번째) 의원과 김상희(세 번째) 의원이 5일 열린 '병원이 아닌 내 집에서 죽을 권리'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인재근(앞줄 왼쪽 두 번째) 의원과 김상희(세 번째) 의원이 5일 열린 '병원이 아닌 내 집에서 죽을 권리'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현실은 딴 판이다. 이날 토론회를 같이 주최한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2019년 서울대 고령사회연구단 조사에 따르면 선호하는 임종 장소로 자택을 선택하는 비율이 38%로 가장 높았지만 실제 자택에서 임종하는 비율은 15.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2016년부터 시행된 가정 호스피스 시범사업이 자리잡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제도를 이용하는 환자의 수는 연간 800명으로 전체 임종환자의 단 0.2%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더 이상 의학적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암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병원내 호스피스 병동을 거쳐 집으로 옮긴뒤 의료진이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두 번씩 방문, 환자 상태를 점검하고 적절한 완화치료를 해주는 가정 호스피스는 임종을 앞둔 환자가 집 안에서 먹고 자는데다 가족들의 보살핌도 받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는 이날 격려사에서 "누구나 집을 떠나 병원에서 죽어야 하는 불편함을 줄이면서도 의료와 돌봄의 수준은 유지해 편안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는 제도와 정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영국의 병원 사망률은 2009년부터 2019년, 10년을 비교했을 때 현저하게 감소했고 네덜란드는 20%밖에 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74.8%가 의료기관에서 숨지고 있다. 

2021년 9월 30일 울진군의료원요양병원(치매전문병동) 증축 개원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울진군)
2021년 9월 30일 울진군의료원요양병원(치매전문병동) 증축 개원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울진군)

일부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현대판 고려장'의 온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가정 호스피스가 보다 활성화되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사진 앨범이나 손때 묻은 그릇을 살펴보면서 자신의 흔적을 정리하는 작업은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존엄과 품위를 지키는 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의료기관 사망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지만 한국은 오히려 이 비율이 15%포인트 가량 높아진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과한 법률'이 2018년 2월부터 시행되었었지만 요양기관 중 의료기관 윤리위원회가 설치된 곳은 워낙 적다. 결국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대형병원으로 중환자를 이송해야만 한다. 가정 호스피스 대상자를 항암치료를 중단한 말기암 환자로 국한한 것도 집에서 숨지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급성기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할 여지가 없는 고령의 환자들은 요양병원으로 옮겨지게 된다. 요양병원은 국민건강보험이, 요양원은 노인장기오양보험이 적용된다. 65세 이상 또는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거나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입소할 수 있는 요양원과는 달리 요양병원은 의사 또는 한의사가 상주해 노인성 질환이나 만성질환 환자, 수술 이후 요양이 필요한 환자가 입원하는 의료기관이다. 내과, 가정의학과,신경과, 외과 치료 등을 받을 수 있다. 뇌경색이나 뇌출혈,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을 앓거나 암 수술이후 임종을 앞둔 노인들이 주로 입원한다. 

의료기관이 아닌 요양원은 물론 요양병원에 입원한뒤 건강한 상태로 퇴원하는 환자들은 극히 드물다. 환자의 발이나 손을 묶거나 하루종일 몽롱한 상태에 있도록 약물을 투여하거나 심지어 항문에 배변 매트 여러 장을 억지로 집어넣는 등 각종 노인 학대 사례가 끊임없이 드러나는 실정이다. 요양병원 입원을 앞둔 환자가 "죽으러 가는 기분이야. 동네 사람들 요양병원 갔다고 돌아온 사람 아무도 없어"라고 한탄한 발언이 방송에 보도된 바 있다.

의료수가를 높이고 요양보호사 고용 등을 늘린다고 이런 비극이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내 집에서 죽을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보장해주는 것이 요구되는 이유다. 요양시설과 응급실을 오가다가 숨지도록 만드는 '연명셔틀'과 임종 직진까지 의학적으로 의미는 없지만 의료기관에 돈벌이 수단이 되는 치료와 투약이 반복되는 현실부터 바로 잡아나가야 한다.

김윤(맨 오른쪽) 서울대 의대 교수가 '병원이 아닌 내 집에서 죽을 권리'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윤(맨 오른쪽) 서울대 의대 교수가 '병원이 아닌 내 집에서 죽을 권리'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와 관련,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웰다잉을 위한 노인돌봄체계 개편방안'을 통해 "OECD 국가에 비해 적지 않은 돈을 노인돌봄에 쓰고 있는데도 현대판 고려장과 간병살인이 계속되고 있다"며 그 이유로 ▲노인 돌봄재정의 비효율성(재정 분절성) ▲장기요양 관리체계 사각지대에 있는 요양병원 ▲장기요양 재가서비스 부족 등을 손꼽았다. 해결 방안으로 "장기요양보험 대상을 지역돌봄이 필요한 노인 약 11%로 확대해야한다"며 "지역사회 삶을 보장하기 위해 재가서비스의 양과 종류를 확대하고 요양병원을 장기요양보험으로 이전, 재정의 통합성을 이뤄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국 모든 시군구에 인구 6만명 당 1개의 재택의료센터와 인구 1만명 당 1개의 통합재가센터를 지정, 운영하면서 장기요양 대상 노인 누구나 방문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재택의료센터는 방문진료, 방문간호, 방문재활 등을 통해 장기요양보험 대상 노인에게 포괄적인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 주치의 역할을 한다. 통합재가센터는 장기요양보험 등급인정자(시설입소 저위험자)에게 방문요양, 주야간 보호 및 방문간호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곳이다.

집에서 숨지면 보호자가 고인의 사망 원인을 두고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사망진단서를 받기 위해 임종 직전 병원을 찾아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 가정 내 임종지원을 통해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김 교수는 "가정 호스피스 대상자를 말기암에서 비암성질환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건강보험에 가정임종급여를 신설, 생애 말기 24시간 간병비로 최대 2개월 , 월 300만원 이내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가정임종급여 지출과 재택의료센터를 가정형 호스피스로 지정, 운영하는데 소요되는 예산(2022년~2026년 약 1.5조원)은 임종환자 진료비 절감으로 재정중립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요양보험 간병비 급여화로 사적 간병 부담 절감 및 간병의 질 높이기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기능 분화와 전환 ▲통합적 노인건강돌봄조직 및 지불제도 도입을 강조했다.

정치권과 정부가 할 일은 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아니라 가장 편하고 머물고 싶은 집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국민들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다. 자택 임종을 가로막는 규제를 없애고 불편함을 줄여나가는 것이 시급하다. 가정 호스피스 수혜자가 늘어날 수 있도록 대상자를 넓히는 조치부터 단행될 필요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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