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0.20 12:56
국립대 병원 현황. (표제공=보건복지부)
국립대 병원 현황. (표제공=보건복지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국립대학병원은 중증질환에 걸린 국민에게 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치과병원과 한방병원을 제외하고 전국에 걸쳐 본원 10곳과 분원 7곳이 있다. 인천과 울산, 충남에는 미설치됐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771억원, 교육부가 653억원의 국고를 지원했다. 2021년 전체 수익으로 6조 6858억원을 올린데 비해 의료비용은 7조302억원으로 3443억원의 적자가 났다. 

16개 권역 책임의료기관 중 국립대병원 14곳이 지정됐다. 인천은 가천대 길병원이, 울산은 울산대병원이 맡는다. 총 1만5688병상으로 병원급 이상 전체 공공병상의 34.9%를 차지한다. 서울대병원은 시흥에, 전북대병원은 군산에, 충북대병원은 충주에 분원 개설을 추진 중이다.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총인건비가 연평균 1~2% 수준에서 증액된다. 올해는 1.7%가 올랐다. 경직적인 규제로 인해 국립대병원 의사와 민간 사립대병원과의 연봉 격차는 날로 커지는 실정이다. 보수가 연공서열에 따라 산정되는데다 의사 수 부족으로 근로시간도 길다. 이러다보니 젊고 실력 있는 의사가 장기간 근무할 턱이 없다. 국립대병원 의사의 2년내 퇴직율은 작년 현재 58.7%에 달한다. 

서울대병원 전경 (사진제공=서울대병원)
서울대병원 전경 (사진제공=서울대병원)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서울대병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방국립대병원은 의료인력 유출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 인해 지역 의료자원 수준과 역량이 떨어지고 주민의 신뢰도 덩달아 저하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상태다.  

1998년 진료권이 폐지되고 2004년 KTX가 개통되면서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서울에 있는 '빅5’에 전국의 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현재 비수도권 환자 71만명이 '빅5'에서 치료받는데 연간 2조원을 쓴다. 이동과 숙박 등 부대 비용은 별도다. 외래진료를 예약하거나 수술을 받으려면 장기간 대기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이처럼 환자가 넘쳐나는 추세에 편승, 수도권 대학병원 병상은 대폭 늘어난다. 2026년부터 2029년까지 수도권에 9개 본원, 11개 분원이 개설될 예정이다. 향후 비수도권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를 유치하려는 경쟁이 불붙을 수밖에 없다. 이에따라 지방에서 소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 필수의료 서비스를 받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지방에 살면서 유방암이나 갑상선암, 위암, 폐암 판정을 받으면 상당수가 '빅5'에서 치료받기를 희망한다. 의료진의 실력과 장비가 지방병원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이 법적 다툼에 앞서 고위직 판사와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다수 근무하는 유명 로펌과 계약하는 것처럼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다만 중증난치질환은 수도권 큰 병원에서 치료받아야한다는 의식이 고착된다면 지역의료체계가 붕괴되면서 지역소멸도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이 우려된다.

이런 위기를 맞아 보건복지부는 19일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내놓았다. 조규홍 장관은 “국립대병원의 역량을 수도권 대형병원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높여 지역에서도 중증·응급질환 최종 치료가 완결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국립대병원의 적극적이고 탄력적인 인력 확충을 가로막는 총인건비, 정원제도 등 공공기관 규제 혁신을 추진하기로 했다. 

중요한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이행시기를 명시해온 복지부는 지방국립대병원을 '빅5' 수준으로 언제까지 끌어올린 것인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달성하기 매우 힘든 목표라는 점을 내심 인정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표제공=보건복지부)
(표제공=보건복지부)

필수의료 분야 교수 정원을 대폭 늘리고 임상교수 처우도 개선한다. 연구년을 보장하고 육아휴직에 따른 대체인력 고용을 위해 가칭 '의사인력뱅크'를 설치, 운영할 방침이다. 공공정책수가에 있어 중증·필수 분야 보상 혁신으로 최종 치료 역량을 강화한다. 행위별 수가 체제를 기본비용을 보장하며서 성과를 보상하는 체제로 개편한다. 이를 통해 중환자실과 응급실 병상·인력 확보를 위한 비용을 지원하고 필수의료센터에 대한 보상 수준도 높일 계획이다.

낡은 중증·응급 진료시설과 병상, 공공전문진료센터 등 시설과 장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정부 지원을 확대한다. 진료시설·장비에 대한 국가 지원비율을 현재 25%에서 75%로 높이고 필수진료 과목의 경우 전공의 수련비용도 국가가 지원한다. 뒤늦었지만 필요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그림제공=보건복지부)
(그림제공=보건복지부)

정부는 2006년 이후 18년째 3058명으로 묶여 있는 의대 정원을 늘린다는 의지도 분명히 드러냈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 수준인 의사 수를 늘려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고 초고령사회 전환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역에서 자란 학생이 해당 지역에서 의사로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의대의 지역인재 선발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지방대육성법에 따라 2023년부터 비수도권 의대는 정원의 40% 이상을 지역 출신 중에서 뽑고 있다. 의사 면허를 따려면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중고교를 다니라는 강력한 신호를 제시한 셈이다. 다만 의사협회의 반발을 감안, 증원 규모는 제시하지 않았다.

(인포그래픽제공=보건복지부)
(인포그래픽제공=보건복지부)

복지부가 의사들의 요구와 민원을 대거 들어준 점이 주목된다. 필수의료 인력들이 안정적으로 진료에 나서도록 환자 사망이나 후유증 발생 등 의료분쟁이 발생할 경우 환자의 피해를 적절히 구제하면서 의료인의 법적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부담비율을 현재 70%에서 100%로 높이는 의료분쟁법 개정안은 12월부터 시행된다. 산모 사망(3000만원), 신생아 사망(2000만원), 태아 사망(1500만원) 등 기존 보상금액을 높여 실효적인 보상방안을 마련한다.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거나 별도로 특별법을 제정, 의료인 형사처벌특례 범위를 넓힐 방침이다. 의료계와 환자단체, 법률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가칭 '의료분쟁 제도 개선 협의체'를 신설, 운영하고 필수의료분야 의료배상책임보험 가입 지원을 통해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인의 민·형사상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의사협회의 체면을 살려준 결정으로 여겨진다.

윤석열 정부는 2025학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현재보다 1000명 이상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복지부는이날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 자료에서 "의대의 수용역량과 입시변동 등을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증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수 1인당 학생 8명 등 법정기준을 준수하고 있는 지를 고려해 배정하고 증원이후는 평가인증을 통해 교육여건을 확인할 방침이다. 물론 의사단체들은 증원 자체에 반대하고 있지만 이런 반발은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사법개혁위원회를 통해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을 결정했고 2007년 로스쿨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법학전문대학원 석사 학위자나 3개월 이내 취득예정자를 대상으로 변호사시험을 실시, 변호사를 양성한다는 개혁안이 나왔을 때 판사와 검사, 변호사의 대다수는 법률서비스 질 하락과 과도한 수임 경쟁을 이유로 반대했지만 눈에 띄는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변시를 통해 법조인이 대거 늘어나면서 중견기업까지 사내변호사를 고용할 정도다. 종전 정부 부처나 경찰, 지방자치단체에 국·과장급으로 임용됐던 변호사가 이제 사무관도 아닌 주무관 이하 직급으로 채용공고가 나오는 판이다.

(인포그래픽제공=보건복지부)
(인포그래픽제공=보건복지부)

국가가 부여하는 면허를 따려는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면 공급 규모를 늘려 수요를 만족시키는 것이 온당하다. 지방국립의대부터 입학정원을 대폭 늘려 지역의료 서비스를 복원하고 지역경제와 생태계를 지키는 것은 국가의 임무이자 의무이다. 의과학 분야를 키우기 위해 관련 의료인을 양성하는 노력도 절실하다.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데 적성이 맞지 않는 의사들이 신약이나 백신 등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지휘한다면 관련 기업이나 연구소의 역량이 커지면서 국가이익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는 고난도·고위험 추가 보상, 중증 응급 대응기반 강화, 저평가 항목 수가 인상, 소아 입원 보상 강화 등 공공정책 수가를 대폭 인상하는 등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1조원 규모의 건강보험재정투입계획을 11월 중 내놓기로 했다. 지역이나 필수분야에서 종사하는 의료인에게 보상을 강화하면서 형사처벌이나 의료분쟁 소송에 걸릴 여지도 줄여주기로 결정한 만큼 의사들도 정부의 진정성을 믿고 협력하는 자세를 갖추었으면 한다. 의사야말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최후의 의료서비스 제공자가 아닌가.   

필수의료 혁신전략이 성공하려면 원내 제1당의 협조가 반드시 요구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의대생 증원에 찬성한다면서도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하려다가 좌절된 ▲공공의대 신설 ▲지역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공의대는 취지와 명분은 좋지만 '지방 10년 의무 근무'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크다. 기존 의대들은 학생 수에 비해 교수 수가 많아 증원 여력이 충분하다. 새로운 의대를 세우려면 교수를 충원하고 실험실습기자재 등을 구축하는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전문의를 키우는데 10년 이상 걸린다. 기존 의대를 중심으로 입학정원을 늘리는 작업부터 선행해야 한다. 내년 4월 총선이 실시되는 만큼 가급적 빠른 시일 내 국립대병원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바꾸는 법률이 개정되고 예산과 조직도 이관되어야 한다. 관련 입법이 늦어도 총선 이전에 완료되어야 차질없는 정책 추진이 가능해진다. 민주당이 대승적으로 협조할 때다. 

'필수의료 혁신전략' 핵심과제 (표제공=보건복지부)
'필수의료 혁신전략' 핵심과제 (표제공=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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