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6.12 15:01
(인포그래픽제공=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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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대우조선이 매출액을 부풀리기 위해 5조원대의 분식회계를 한 것이 드러난 뒤 회사 임직원은 물론 회계감사를 맡았던 딜로이트안진 전·현직 공인회계사 4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금융위원회는 이 사태를 계기로 2017년 10월 외부감사법을 전부개정하면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상장사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감사 의무화 ▲표준감사 시간제 ▲상장사 감사인 등록제 등을 신설했다. 당시 금융위는 국내 기업회계의 대내외 신뢰를 높이기 위해 회계개혁을 단행했다고 공언했지만 시행 5년을 맞아 회계감사비용만 크게 늘어났을 뿐 기대했던 효과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는 불만이 기업에서 쏟아지는 실정이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6년 연속 감사인을 자율적으로 선임하면 이후 3년간은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자산총액 5천억원 이상 비상장회사와 모든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한다. 감사보수를 주는 기업에 대한 감사인의 '낮은 독립성'을 도입의 대의명분으로 삼았지만 회계법인과 지정 대상 회사가 감사인 지정점수와 자산총액 순서로 순차적으로 매칭되면서 정작 감사보수가 급증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2017년만해도 상장회사 평균 감사보수는 1억2131만원이었지만 2022년에는 2억7561만원으로 5년 만에 127.2% 올랐다. 연평균 상승률이 17.8%에 달한다. 감사인 지정제 도입에 따른 특수를 회계법인이 만끽한 셈이다.

재계는 감사인의 담당 주기가 짧아지면서 감사 품질은 떨어졌는데도 감사 보수만 올랐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만 실행 중인 주기적 지정제로 인해 회계투명성이 실제로 개선된 효과가 없다며 제도를 폐지하거나 최소 자율선임기간을 9년으로 늘려줄 것으로 요청해왔다.

반면 회계업계는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해 현행 제도 존속을 주장해왔다. 양측간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금융위는 12일 내놓은 '회계제도 보완방안'을 통해 감사인 지정제는 유지하면서 일부 제도만 개선하기로 결정했다. 재계가 폐지를 요청했던 연결 내부 회계관리제도도 일부를 손보면서  존치시켰다.

금융위는 회계개혁이후 상장회사 감사시간이 5년전보다 57% 늘어났고 금융감독원이 기업관계자와 공인회계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회계투명성 수준도 2018년 3.66에서 2021년에는 4.77로 상승했다며 긍정적인 성과를 시현했다고 자평했다. 문제는 IMD(국제경영개발대학원) 회계투명성평가에서 한국은 2017년 63위에서 2018년 62위, 2019년 61위, 2020년 46위, 2021년 37위로 4년 연속 올라간 뒤 2022년에는 53위로 뚝 떨어졌다는 점이다. 이같은 결과에 금융위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우리나라의 회계개혁은 대내외적으로 자본시장의 회계투명성 제고에 상당히 기여했다는 평가가 다수"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표제공=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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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만해도 상장회사 감사인 지정 비중은 6.4%에 불과했다. 2019년에는 10.4%로 소폭 상승했다. 2020년 주기적 지정제가 시행된 뒤 큰 폭으로  올랐다. 2022년에는 상장사의 52.6%가 감사인을 지정받았다. 상장사의 절반 이상이 감사인을 지정받은 것을 놓고 금융위에서도 "그 비중이 과도하게 높은 것은 문제"라고 인정했다.

기업이 경쟁입찰을 통해 감사인 선임 작업에 자유롭게 나서면 회계법인은 해당 기업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감사팀을 구성하겠다고 프리젠테이션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감사품질 제고와 서비스 경쟁이 촉진될 수 있다. 반면 현재처럼 지정제로 운영되면 회계법인은 가용한 인력 범위에서 감사팀을 편의적으로, 자체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구성하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지정감사인이 기업은 물론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아 과도하게 자료를 요구하는 등 실무에서 어려움을 빚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장원리가 훼손되면서 기업 부담만 늘어났다는 재계 주장에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금융당국은 감사인 지정제를 도입하면서 한국공인회계사회에 지정감사인 부당행위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를 통해 상담센터도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전화를 통해 감사보수의 적정성과 제도 관련 질의만 있을 뿐 정작 지정감사인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제보는 사실상 전무했다. 기업 관계자들이 한공회에 있는 신고센터가 감사인 위주로 판단할 것으로 판단한데다 신고 처리과정에서 감리권한을 보유한 금감원과 한공회에 의한 감리 조치를 우려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금융위가 편파적 분쟁조정기구를 만든 잘못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금융위는 주기적 지정제(6+3)를 유지하는 이유로 시행 이후 3년 밖에 지나지 않아 정책효과를 분석할 있는 데이터가 불충분하다는 회계학회의 연구용역 결과와 현 제도 도입이후 전체 지정 대상 기업 중 1회 이상 지정된 기업이 60% 수준으로 기업의 40%는 아직 지정감사를 받기 전이라는 점을 들었다. 지정이 종료된 이후 자유선임한 기업들의 회계투명성 수준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충분한 자료를 확보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인포그래픽제공=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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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지정감사제 운영의 합리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는 몇 개 마련했다. 현재 지정감사제 대상 기업은 3년의 직권지정기간 중 다른 지정사유가 발생하면 3년의 지정기간이 새롭게 시작된다. 직권 지정 사유 중에서 3년연속 영업손실 또는 3년연속 부(-)의 영업현금 흐름 또는 3년연속 이자보상배율 1미만 등 재무기준 미달사유는 쉽게 해소되기 어려워 한 번 직권지정되면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부작용을 감안, 재무기준 사유로 직권지정된 회사는 지정기간 중 동일한 사유가 발생해도 최소 자유선임 계약기간으로 3년(일부 1년)을 보장하기로 했다. 

회계부정 위험성이 큰 기업을 직권지정하는 27개 사유도 손을 본다. 재무기준 미달과 투자주의환기종목 지정 등 2개 사유는 폐지하고 감사 절차 등 단순경미한 절차 위반 14개 사유는 1차 위반시 과태료를 부과하고 2차 위반시 직권지정한다.  

(표제공=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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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금융위는 ▲거래소에 설치한 중소기업 회계지원센터를 지정감사인과 기업 간 분쟁조정기구로 활용 ▲상장사 지정감사시 감사팀 내부에 해당 산업 분야 전문인력이 전무할 경우 차기년도 감사인 지정시 기업 2개 차감 ▲30년 이상 회계사 점수 110으로 하향, 40년 이상 CPA 100점 부여 ▲재무기준 직권 기준 대상 '별도재무제표상' 재무수치 기준으로 판단 ▲회사가 지배·종속회사의 지정감사인과 같은 감사인 지정을 요청하면 사전통지부터 감사인 동일하게 지정 등 개선방안을 시행하기로 했다.

재계로부터 폐지 요청이 있었던 연결 내부회계 관리제도 역시 미봉책으로 개선되는데 그쳤다.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가 연결 내부회계 외부감사를 받기 위한 시스템을 고도화하는데 총 1100억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회사별로 6억2000만원이다. 자산 5000억원 미만 중소 비상장회사가 내부회계 관리제도를 구축하는데 7100만원을 지출해야 하고 매년 감사비용으로 5800만원이 소요된다.  

(인포그래픽제공=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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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는 2021년 12월 기업부담 완화 차원에서 도입을 1년 유예한데다 자본시장과 투자자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 자산 2조원이상 상장사는 현행 일정대로 올해 사업연도부터 연결 내부회계를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내부 상황에 따라 연결 내부회계 도입 유예를 요청한 기업에 한해 최대 2년 유예를 허용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시행일로부터 2년간은 계도 위주로 감리한다는 방침도 천명했다. 고의적으로 회계처리를 위반하지 않는다면 개선권고 위주로 조치한다는 것이다. 자산 2조원 미만은 기업 규모에 따른 역량 차이를 감안하고 시행착오 최소화를 위해 도입시기를 2024년에서 2029년으로 5년 늦춘다는 결정이 주목된다. 비용 대비 효용이 낮다는 재계의 비판을 일부 수용한 조치로 여겨진다.

금융위는 ▲감사범위를 연결기준으로 일원화한다는 차원에서 연결 내부회계 감사의견 공시기업에 대해 별도 내부회계 감사의견 공시의무 면제 ▲자산 1천~5천억원 중소 비상장회사 신규 상장시 내부회계 외부감사 3년간 유예 등의 조치도 마련했다.

금융위가 회계투명성 제고 효과가 계량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시행 초기라는 이유 등으로 들어 주기적 지정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한 만큼 이로 인한 부작용도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감사인 간 품질경쟁 저해와 지정감사인의 과도한 감사 보수 요구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지정감사제가 합리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권한을 남용하는 감사인이 신고와 조사를 통해 드러나면 금융위가 지정을 취소하고 관계자를 징계하는 등 일벌백계에 나서는 것이 마땅하다.

시장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분야일수록 법과 원칙에 따른 관치가 요구된다. 산업 전문성을 확보하고 감사 품질을 높이기 위해 적격성이 떨어지는 감사팀을 구성한 회계법인에 대한 페널티 부과도 보다 확실히 이뤄져야 한다. 회계법인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여러 사정으로 당장 고칠 수 없다면 심판이 규정을 어긴 회계법인에 레드카드를 꺼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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