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6.26 13:52
(그림제공=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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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 A씨는 보험사에 연금저축보험 5천만원, DC형 퇴직연금 5천만원, 보호대상 일반보험 5천만원(사고미발생, 해약환급금 기준)에 가입한 상황에서 사고보험금 5천만원까지 발생했다. 보험사 파산으로 돈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현행 예금자보호법과 시행령에 따라 DC형 퇴직연금은 5천만원, 나머지 상품은 모두 합쳐 5천만원을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예금보험금으로 지급받는다. 2억원 중 1억원을 날리게 된다.

#2. B씨는 은행에 보호대상 은행상품 5천만원, 연금저축신탁 5천만원, 중소퇴직기금 5천만원을 갖고 있다. 만약 은행이 문을 닫는다면 예보로터 보호대상 은행상품과 연금저축신탁을 합산, 5천만원을 받는다. 1억5천만원 중 3분의 1만 예금자보호대상이기 때문이다.  

#3. C씨는 은행에 보호대상 은행상품 5천만원과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5천만원을 맡기고 있다. 은행이 파산한다면 5천만원만 보호받는다. 중소퇴직기금은 실제 예금자인 다수의 근로자가 아니라 기금 관리 주체인 근로복지공단 1인의 예금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예보는 공단에 5천만원을 지급한다. 이로 인한 손실은 근로자들에게 돌아간다.

현행 제도에서 금융위기가 닥쳤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가상사례이다. 정부는 확정기여형(DC형) 및 개인형(IRP) 퇴직연금 예금에 한해 동일 금융회사에 예금자가 갖고 있는 일반 예금, 적금 등과는 별도로 5천만원의 보호한도를 적용할 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발생한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럼에도 불구,  기존 퇴직연금상품과 유사한 상품에 아무런 예금 보호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금융위원회는 연금저축, 사고보험금,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에 대해 예금보험한도 5천만원을 각각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예금자보험 시행령 개정안을 26일부터 8월 7일까지 입법예고했다. 예금 보호대상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르면  연내 실시된다. 이리 되면 A씨는 보험사로부터 연금저축보험, DC형 퇴직연금, 사고보험금, 일반보험까지 총 2억원의 예금보호를 받게 된다.

(그림제공=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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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의 핵심은 은행의 연금저축신탁과 보험의 연금저축보험에 예금자 보호라는 우산을 씌운다는 것이다. 2022년말 현재 연금저축보험 적립금은 439만건에 113.6조원, 연금저축신탁 적립금은 75.7만건에 15.9조원에 달한다. 

연금저축은 1994년부터 2000년까지 구개인연금저축으로, 2001년 1월부터 2013년 2월까지는 연금저축으로 팔리다가 2013년 3월부터 연금저축계좌로 판매 중이다. 일정기간 납입한뒤 연금 형태로 받으면 3.3~5.5%의 연금소득세를 낸다. 연말정산이나 종합소득신고 시 납입액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이 제공된다. 정부는 올해부터 세액공제한도를 연간 최대 600만원으로 확대하면서 연금저축 납입을 장려해왔다. 국민연금, 퇴직연금과 함께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상품이지만 그간 예금자 보호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은 사회보장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런 특성을 감안, 미국과 캐나다는 일반 예·적금과 연금성 상품을 별도 카테고리로 구분, 각각에 대해 별도의 보호한도를 적용 중이다. 해약환금급과 사고보험금에 대해서도 각각 별도의 보호한도를 두고 있다. 이런 해외 사례 속에서 개정안은 공적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이란 '3중 구조 연금' 가입을 유도해 노후 생활자금 확보를 지원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뒤늦은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자산운용사의 연금저축펀드는 실적 배당형상품이라는 점에서 현재 예금보호 대상이 아니며 앞으로도 별도 보호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자산운용사가 망하면 고스란히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림제공=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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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재산상 손해 등 보험약관에서 정한 지급사유가 발생해 보험수익자에게 지급되는 사고보험금도 예보 대상에 추가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사망이나 중대 장해 등은 가입금액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뜻하지 않는 사고를 겪은 보험 가입자에게  사고보험금이 반드시 지급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보험이 갖는 사회안전망 역할과 보험에 대한 소비자 신뢰 유지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보험계약을 해지할 때 보험계약자에게 돌려주는 해약환급금이나 보험계약기간이 끝나 지급되는 만기보험금은 앞으로도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니다. 보험계약자와 보험료납부자가 법인인 법인보험과 보증보험, 재보험, DB형 퇴직연금보험 계약, 변액보험계약의 주계약 사고보험금 역시 여전히 비보호대상이다. 변액보험계약의 최저보증금과 변액보험계약 특약의 사고보험금은 보호대상에 해당된다.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개요 (그림제공=금융위)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개요 (그림제공=금융위)

중소퇴직기금은 국민들에게 아직 생소한 제도이다. 상시 30명 이하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도입률을 높이고 근로자의 안정적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2022년 4월부터 근로복지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공적 퇴직연금제도이다. 공단이 노·사대표 및 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제도운영위원회 의사결정에 따라 직접 적립금을 운용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한다. 사용자의 부담금 수준이 임금의 12분의 1이상으로 결정되어 있고 근로자가 운용에 따른 위험을 진다는 점에서 DC형 퇴직연금과 유사한데도 예금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는 지난 4월부터 5년간 수수료를 전액 면제하고 월소득 242만원 미만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부담금의 10%를 3년간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중소퇴직기금 가입을 장려하는데도 근로자별로 보호하지 않았고 별도 보호한도도 없었다는 문제를 이제야 보완한 것이다. 

신협, 수협, 새마을금고는 연금저축 공제 및 기타 공제상품을 취급하면서 별도의 예금자 보호제도를 운영 중이다. 상호금융권도 연금저축공제, 사고보험금(공제금)에 대해 별도 보호한도 적용을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권과 상품특성이 같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신용협동조합법 시행령을, 해양수산부는 수산업협동조합의 부실예방 및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행정안전부는 새마을금고법 시행령을 각각 개정할 예정이다.

(그림제공=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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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보험한도는 2001년 예금자보호법에서 5천만원으로 설정한이후 경제성장이나 국민 소득 증가와 관계없이 변화가 없었다. 국회에는 한도를 1억원 이상의 범위에서 금융업종별로 구분해 정하고 중대한 금융경제 상의 위기 등 긴박한 필요가 있는 경우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예금 전액을 보호한다는 내용 등이 들어간 법률 개정안 11개가 상정된 상태다. 금융위는 국회 요구에 따라 8월에 예보 제도 개선과 관련한 TF 논의결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국회에서 심층적인 토론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는 지난 3월  자산 기준 16위 규모의 실리콘밸리뱅크 파산 사태가 발생하자 보호한도(25만달러)에 관계없이 예금 전액을 보증하면서 전체 금융권으로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영국의 보호한도는 8만5천파운드, 일본은 1천만엔이다. 한국의 보호한도가 현저히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1억원 이상으로 올릴 경우 금융회사가 예보에 내는 예금보험료도 덩달아 오르게 된다. 이 경우 금융사는 대출금리 또는 수수료 인상 등으로 고객에게 떠넘길 우려가 높다.

현행 5천만원 한도에서도 10개 금융사에 5천만원씩 분산예치하는데 총 5억원이 들어간다. 이 정도의 금융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은 극소수이다. 예보 적용을 받은 예금 중 5천만원 이하 예금자 비율이 98%를 넘는 현실에서 보호한도 확대는 나머지 2% 고액금융자산가에게 혜택을 몰아주는 결정이란 비판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예금자 보험제도에서의 국제적 정합성 달성을 위해 한도 상향이 필요하다해도 단계적으로 조정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예금보험요율 인상에 따른 부담을 대다수 가입자가 지도록 만든다면 형평성 결여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한도 상향의 이익을 보는 집단이 부담하는 것이 합당한 조치다. 뱅크런을 막는다는 예금자보호법 취지에 부합되는 제도 개선을 위해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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