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6.22 16:01

"금융사 '수익성 최우선 문화' 바뀌어야 고객 신뢰 회복 가능"

김주현(왼쪽 다섯 번째) 금융위원장이 22일 간담회 참석자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
김주현(왼쪽 다섯 번째) 금융위원장이 22일 간담회 참석자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제조기업의 국제적 위상과 비교하면 국내 금융회사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뚜렷한 1대 주주가 없어 주인을 찾기 힘든 시중은행이 대표적이다.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은 단기 경영성과만 좋게 기록한다면 연임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기는 듯 보인다. 그간 이런 믿음이 현실로 실현된 탓이다.

금융회사 인사고과는 최근 실적 평가에 따라 철저히 매겨진다. 이 결과가 금전적 보상과 승진으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임직원이 소비자와 함께 이익을 중장기적으로 추구하는데 관심을 가지기 힘들다. 조직 미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거나 내부범죄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각종 투자도 꺼리게 된다. 금융회사의 건전한 경영과 금융시장 안정, 예금자·투자자·보험계약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2016년 시행되었지만 최근 수년간 옵티머스·디스커버리·파생결합펀드의 불완전 판매로 소비자들은 큰 피해를 당했다. 대규모 횡령도 끊이지 않았다. 법에서 명시한 것처럼 지배구조가 올바로 작동했다면 이런 사건·사고는 줄었을 것이다.

(자료제공=금융위)
(자료제공=금융위)

이처럼 소비자 이익이 무시된 데에는 금융회사가 법령을 준수하고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지켜야할 기준과 절차를 말하는 '내부통제기준'을 회사별 특성에 맞춰 마련하지 않은 잘못이 컸다고 여겨진다. 내부통제는 회사가 마주치는 모든 위험의 규모와 발생확률을 낮추기 위해 임직원이 지켜야 할 일련의 절차를 의미한다. 내부조직 및 영업구조를 규율하는 규정 및 통제장치를 의미하는 내부통제는 회사 스스로 마련하는 것이 맞다. 이런 원칙과는 달리, 금융회사는 금융투자협회가 만든 '금융투자회사 표준내부통제기준'을 그대로 활용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면피'만 하면 된다고 여긴 결과다.

금융위원회의 책임도 적지 않았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시행령은 내부통제기준에 ▲업무의 분장 및 조직구조 ▲임직원이 업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하는 절차 ▲내부통제와 관련해 이사회, 임원 및 준법감시인을 수행할 역할  ▲내부통제를 수행하는 전문성을 갖춘 인력과 지원조직 등을 열거하고 있을 뿐이다. 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기관제재와 신분제재라는 불이익을 준다는 등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의무만 부과했을 뿐 실제 운영방식에 대해선 규율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금융회사 내부의 위임전결 등으로 직무권한이 하부로 위임되면서 내부통제 책임도 위임된 것으로 오해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는 점이다. 금융사고가 날 경우 대표이사 등 임원들은 내부통제 기준에 명시된 업무 분장에 따라 자신이 기울인 노력을 소명하지 않고 "하급자의 위법을 알 수 없었다"고 발뺌하기 일쑤였다. 

일시적으로 고객을 속여 상품을 팔거나 공금을 빼돌릴 수 있다. 아무리 교차점검을 하고 정당한 법적 절차를 강화한다해도 눈앞의 이익을 노린 금융범죄 근절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조직 내부의 공모나 고의적인 감독 유기가 없는 한 반복적으로, 장기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제때, 제대로 통제되고 있다면 금융범죄 유혹에 넘어갈 내부인도 줄어들 것이다.

김주현(오른쪽) 금융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함께 금융협회장 간담회를 개최하면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
김주현(오른쪽) 금융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함께 금융협회장 간담회를 개최하면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

이같은 문제를 인식, 금융위는 책임경영 확산 차원에서 ▲금융회사 스스로 각 경영진별 내부통제 책임영역 획정 ▲내부통제  운영·준수 등 일련의 과정 전체를 규율대상에 포함 ▲이사회의 내부통제 의무·권한 구체적 명시를 골자로 하는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22일 내놓았다.

가장 눈에 띄는 대책은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 도입이다.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별로 책무를 배분한 내역을 기재한 문서를 뜻한다. 임원은 자신의 책임범위 내에서 내부통제가 적절히 이뤄지도록 ▲내부통제기준의 적정성 ▲임직원의 기준 준수여부 ▲기준의 작동여부 등을 늘 점검하는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내부통제 책임을 하급자에게 떠넘기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금융위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시행령에서 의무적으로 책무를 배분해야할 업무영역을 경영관리, 위험관리, 영업부분 등 3가지 영역에서 총 20~30개 책무를 열거할 예정이다.

(표제공=금융위)
(표제공=금융위)

책무구조도 신설을 계기로 각 임원은 직책별 책무를 수행하기 적합한 '적극적 자격요건'을 갖춰야 한다. 구체적으로 전문성, 업무경험, 정직성, 신뢰성 등이다. 현재 금융회사 임원의 자격요건에는 소극적 결격요건만 있지만 앞으로는 적극적 자격요건도 추가된다. 금융사는 신규 선임은 물론 기존 임원의 직책 변경 시에도 자격 충족여부를 확인하는 의무를 진다. 금융사 임원이 되기 위한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지킬 의무도 커진다는 뜻이다.

대표이사가 작성하는 책무구조도는 이사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대표이사는 책무의 중복이나 공백, 누락 등 작성 미흡이나 실제 권한 행사자와 책무구조도 담당 임원과의 불일치 등 거짓작성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한 명의 임원에 여러 개 직책을 맡길 수 있지만 회사내 모든 주요 책무를 적용대상 임원에게 중복이 없고 빈틈없이 배분해야만 한다.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방인 기대효과, (표제공=금융위)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방인 기대효과, (표제공=금융위)

회사 업무의 전반을 총괄해 다른 이사의 업무집행을 감시·감독해야하는 지위에 있는 대표이사에게 내부통제 총괄관리의무를 부여한다는 것도 주목된다. 최고경영진의 의지는 내부통제문화 정착 여부를 좌우한다. 조직 전체 구성원의 인식과 가치관을 바꿔 실질적인 행태의 변화를 이끌어내야만 내부통제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우리은행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현행 법률상 대표에게 내부통제 제도 기준 마련 의무만 부여돼 있어 은행장이었던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중징계 안이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았던 선례 재발도 막기 위한 조항으로 풀이된다.

대표이사의 총괄 관리 의무는 회사 내에서 조직적, 장기간·반복적, 또는 광범위한 문제가 발생하는 등 '시스템적 실패'로 국한된다. 여러 부서에 걸쳐 장기간 누적된 문제로 발생한 금융사고에 한해 대표가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 합리적인 접근으로 분석된다.

(표제공=금융위)
(표제공=금융위)

금융위는 책무구조도 도입을 통해 금융사고 예방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금융사고가 발생했다해도 해당 임원이 '상당한 주의'를 다해 내부통제 관리조치를 했다면 책임이 경감되거나 면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당한 주의는 사전적으로, 객관적으로 예측가능한 정도의 관리조치를 취했는지 여부로 판단한다. 관리조치의 구체적인 방법과 수준은 각 회사 및 업계에 따라 자체적으로 마련한다. 하위규정에서 이와 관련된 고려사항을 명시할 예정이다. 금융당국과 업계는 모범 사례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나갈 방침이다.

(표제공=금융위)
(표제공=금융위)

내부통제 관리조치를 미실행하거나 불충분하게 실행해 관리 의무를 위반한 임원에 대해서는 면직, 정직, 감봉, 견책, 주의 등 다섯 단계로 신분제재가 부과된다. 업무집행책임자가 아닌 임원은 해임 요구, 직무 정지, 문책 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등 다소 낮은 징계가 내려진다.

이사회가 경영진의 내부통제 관리 조치를 감독, 감시하도록 하는 등 관련 책임과 권한이 처음으로 명시된다. 다만 이사회 의장을 제외한 사외이사는 책무구조도상 책임 범위에서 제외된다. 사외이사의 정보 접근성 및 업무시간 등 현실적 제약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표제공=금융위)
(표제공=금융위)

이번 제도 개선안은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을 바꿔야 시행이 가능하다. 금융위는 공청회와 설명회를 거쳐 속도감 있게 입법을 추진할 방침이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공포되면 1단계로 1년의 경과기간을 거쳐 은행·금융지주를 대상으로 우선 시행한다. 2단계로 대형 금융투자회사 및 종합금융투자회사, 대형 보험사 등은 공포후 1년6개월 이후 도입된다. 이같은 준비기간은 업계 입장에서 다소 짧을 수 있다. 전시행정에 그치지 않고 실효성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둔다는 측면에서 업권별 적용시점에서 탄력성을 부여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날 발표된 방안은 전 세계 10위 경제규모에 못 미치는 금융산업을 조속히 발전시켜야한다는 정책적 의지와 관련성이 높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고객의 정당한 이익보호나 위험관리 노력은 뒷전으로 미루고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조직문화, 그리고 그러한 방식의 영업을 하는 직원들이 인사나 보수에서 대우받는 조직문화를 바꾸지 않고는 금융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회복과 사고방지 노력이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내부통제 개선방안의 취지는 '정직하고 투명한 영업' 관행 정착으로 요약된다. 최고경영진이 이에 대한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고 신뢰성을 갖춘 정직한 영업을 통해 고객의 수익을 안정적으로 늘려 결과적으로 회사의 이익기반도 탄탄하게 만든 임직원부터 승진시켜야할 때다. 규정 중심의 규제 방식이 아니라 원칙 중심의 규제 방식이 작동되면 꼼수와 편법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경직적인 외부규제로 특정 회사 내부의 고유 위험을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부통제를 통해 위법행위를 빨리 발견, 대응한다면 규제비용을 크게 능가하는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내부통제가 원활히 작동되면 주인과 대리인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는데에도 도움을 준다. 회사와 경영진의 업무처리가 주주와 이사회의 이익에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금융당국은 평소 내부통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관련 실적도 축적해왔다면 회사에 손해가 나는 사건이나 사고가 나더라도 자신의 책임을 크게 줄이거나 아예 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임원들에게 적극 알려야 한다. 향후 실천으로 옮겨 금융사로부터 신뢰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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