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7.13 14:35

판교 GRDP 120.8조, 17개 광역지자체 중 4위 수준…부산·인천 큰 폭 능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비수도권에 대한 공적 투자는 2018년 239조원에서 2022년 330조원으로 5년간 91조원(38%)이 늘어났다. 중앙정부의 지방이전 재원과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재원 등을 포함한 최종 통합재정지출을 기준으로 지역투자는 지난 5년간 연 평균 8.4% 증가했다. 이 기간 중 국고보조는 50조원에서 82조원으로, 지방교부세는 49조원에서 81조원으로 연평균 13% 이상 늘어났다. 국세인 부가가치세수 중에서 지방에 배분되는 비율을 말하는 지방소비세율은 2019년 15%에서 2020년 21%, 2022년 23.7%를 거쳐 2023년 25.3%로 거의 매년 올랐다.  

이처럼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예산 투입은 크게 늘어났지만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농어촌 지역의 소멸은 오히려 속도를 더하는 듯 보인다. 2019년 수도권의 인구가 비수도권을 역전한뒤 격차는 커지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2021년 연평균 인구증감률, 청년 순이동률 등 8개 지표를 이용해 지정한 인구감소지역 89곳 중에서 85곳이 비수도권에 있다. 전체 시·군·구의 80%에 이르는 183곳은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보다 많아 인구가 자연감소하는 '데드크로스'를 맞았다. 경남 합천군은 한 해 사망자가 759명으로 출생자(86명)의 8.8배에 달한다. 전남 곡성군이 8.7배로 그 뒤를 잇는다.

한화 건설부문 임직원 사진 공모전 대상 수상작 '울산대교에 피어오른 불꽃' (사진제공=한화건설)
한화 건설부문 임직원 사진 공모전 대상 수상작 '울산대교에 피어오른 불꽃' (사진제공=한화건설)

지방거점도시마저 비상이 걸렸다. 울산시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7만명이 빠져나갔다. 인구 대비 순이동자수 비율인 인구 순유출률은 2020년 -1.2%, 2021년 -1.2%에 이어 2022년 -0.9%를 보였다.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에서 3년 연속 1위를 기록 중이다. 20대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이나 충청권 등으로 이동하면서 쇠락을 거듭하는 실정이다. 매출액 상위 1000대 기업의 74.3%, 창업한지 3년 이내 벤처기업의 70.7%가 수도권에 있다. IT 기업 중에서 본사가 수도권에 있는 비율은 61%에 달한다.

경제활동의 수도권 집중이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642개사가 입주한 성남시 판교 제1, 2 테크노밸리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120조8000억원이다.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4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부산(98.7조)과 인천(97.9조)을 큰 폭으로 앞선다.

비수도권의 GRDP 비율은 2022년 47.5%로 2017년(50.4%)보다 2.9%포인트 하락했고 비수도권 일자리 비율도 48.6%로 1.6%p 떨어졌다. 막대한 지역투자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결과만 낳으면서 목표로 했던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은 처참히 실패했다. 

더 큰 문제는 지방소멸대응기금조차 나눠먹기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국회는 2020년 12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개정, 인구감소지역을 돕기 위한 근거를 마련했다. 2022년부터 2031년까지 연간 1조원씩 10년간 지원한다는 것이다. 올해 107개 기초지자체의 558개 사업에 분산 배분되면서 사업당 평균금액은 18억원에 그쳤다.

일부 지자체는 분수광장 조성 등 단체장의 선거공약 이행에 쓰거나 인구 증가와는 무관한 곳에 지출하고 있다. 정부가 지역간 형평을 감안해 재정을 지원한데다 지자체의 가용 재원 역시 한정된 탓에 단발성 소규모 사업만 진행 중인 것이다. 별다른 효과없이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서울정부청사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서울정부청사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끝내 정부는 방향 선회를 선택했다.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이 주도하는 지역활성화 투자펀드 운영방안'을 보고했다. 중앙정부 주도의 예산 집행으로는 지방소멸 흐름을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시장경제원리를 대폭 반영한 대책을 내놓았다. 향후 지자체의 대응과 움직임이 주목된다.

지역발전이 이뤄지려면 일자리가 제공되면서 사람이 모여야 한다. 그간 국고보조사업은 정부 부처별 '톱-다운' 방식으로 추진되면서 지역실정에 부합되는 지역개발사업을 찾는데 한계가 많았고 지자체 자체 사업도 엄밀한 사업성 검증을 받지 않고 추진되다보니 경제적 파급효과가 미흡했다는 것이 정부의 자체 반성이다. 

지자체는 사업기획이나 시장에 대한 경험이 없다. 민간기업은 사업 추진의 계속성이 떨어지고 사업성도 불확실한 지자체 사업 투자에 소극적이다. 단체장이 바뀌면 전임자 공약 사업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기 일쑤 아닌가. 더구나 국비가 300억원 이상 지원되는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사업은 기획재정부 장관 주관으로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아야 하고 시도가 300억원 이상 사업을 하려면 행정안전부의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사업 추진을 위해 각종 인·허가를 받다보면 시의성 있는 사업 추진은 물건너가게 된다.

(표제공=정부)
(표제공=정부)

정부가 마련한 해법은 민간자금과 금융기업을 활용,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사업을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투자 펀드 방식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정부 재정과 지방소멸대응기금, 산업은행 출자를 통해 공공부문이 민간투자를 이끌어낼 마중물이 되는 모펀드를 조성한다. 지자체와 민간시행사, 금융회사 등이 특별목적법인(SPC)를 설립해 각종 인·허가 획득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한 자펀드 결성,  금융회사 대출 등을 통해 투자에 나서게 된다.

해당 지역과 시장을 잘 아는 지자체와 민간기업이 직접 대규모 지역개발사업을 찾아내 추진하고 적절한 프로젝트에 한해 국고를 투입한다는 결정은 그간 집행방식보다 진일보한 것만은 분명하다. 예산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정부 의지도 엿보인다.

정부는 펀드 목적과 공익성을 크게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일부 부적합 분야만 투자를 막기로 했다. 예를 들어 ▲수도권 소재 사업 ▲사행성 도박, 유흥주점, 위험물 저장·취급 시설 ▲상업용 부동산 개발 등 단순 분양수익 추구 사업은 규제된다. 지역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프로젝트를 창의적으로 빌굴할 수 있도록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한다는 결정은 바람직하다.

펀드 특성 상 당연히 정부는 프로젝트 발굴에 관여하지 않는다. 지자체와 시행사가 공익성과 수익성을 스스로 판단,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바텀-업 방식으로 진행한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월 16일 충남 부여 소재 농업회사법인 우듬지팜을 방문해 지능형농장(스마트팜)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농림축산식품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월 16일 충남 부여 소재 농업회사법인 우듬지팜을 방문해 지능형농장(스마트팜)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농림축산식품부)

국고보조나 지자체 자체 추진이 어려운 대규모 융복합 개발사업이 지역활성화 펀드의 주된 대상으로 거론된 것이 관심을 끈다. 정부는 PF나 은행 대출 등을 통한 레버리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대규모 스마트팜, 에너지 융·복합 클러스터, 복합 관광리조트 등을 대표사례로 손꼽았다.

주목되는 점은 모펀드의 자펀드 출자, 자펀드 결성, SPC 설립, PF 대출 실행 등 모든 단계에서 수익성을 바탕으로 사업이 선정되도록 한다는 정부 방침이다. 지역 안배나 정치 논리 등과 무관하게 민간이 수익성 여부를 철저하고 면밀하게 판단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모펀드 위탁운용사 내에 민간 금융전문가로 구성되는 투자심의위원회가 프로젝트별 자펀드 출자 여부에 대해 독립적으로, 최종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도록 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빠진다는 선언이다.

지역개발사업은 수도권에 비해 위험과 불확실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감안, 정부는 조성된 모펀드 자금을 자펀드 후순위로 출자해 투자 실패로 인한 리스크를 공공부문이 먼저 부담하기로 했다. 아울러 프로젝트의 PF 대출에 특례보증을 제공해 낮은 금리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하고 지자체는 안정적 수익 흐름에 기여하기 위해 건립 이후 일부 시설을 일정기간 빌려쓴다는 '수요 확약'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민간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림제공=정부)
(그림제공=정부)

지자체와 민간의 빠른 의사 결정을 돕고 프로젝트 적기 추진을 위해 ▲지자체의 자펀드 직접 출자에 대한 법령 근거 마련 ▲지역활성화 투자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SPC 설립 절차 간소화 ▲지역활성화 투자펀드 활용 사업 신청시 신속처리 '패스트 트랙' 운영 ▲부총리 주재 경제규제 혁신TF에 다수 프로젝트와 연계된 공통 규제 상정 등에 나서기로 했다. 사안의 중요성과 절박성을 감안하고 투자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연내 각종 규제가 개선되고 절차도 간소화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내년 1분기 중 지역활성화 투자 펀드를 내놓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지자체의 사업발굴 역량 강화를 위해 현재 운영 중인 관계부처, 정책금융기관, 민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컨설팅단을 통해 1대 1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민간 자산운용사와 연기금 등을 대상을 오는 8월과 10월 투자설명회를 개최, 민간자본 투자 유치에 나설 계획이다. 자산운용사와 지자체 간 투자 매칭데이 행사도 10월 중 가질 방침이다. 연내 관련 법령 개정을 마치고 내년 예산에 정부 모펀드 출자금을 확정한다.

민간에서 투자를 위한 자금을 끌어모으려면 장기간 시중금리를 훌쩍 뛰어넘는 이익률이 합리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모펀드의 자펀드 출자, 자펀드 결성, SPC 설립, PF 대출 등 모든 단계에서 수익성을 바탕으로 지역개발사업이 선정돼야만 프로젝트가 제때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역활성화 투자펀드의 성패는 사업성을 갖춘데다 투자대상이 명확하고 장래 현금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제대로 발굴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지역활성화를 위해 참신한 시업 아이디어를 발굴, 지속가능한 사업계획을 마련하는 지자체가 우대받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구 유력 국회의원 등을 동원해 국고 타내기 경쟁에만 몰두하는 단체장은 퇴출 수순에 들어가는 것이 옳다. 지자체 간 아이디어 경쟁을 통해 지역을 살리고 그로 인한 수익이 지역사회와 주민에게 되돌아가는 사업이 추진되어야만 지방소멸 시기를 늦출 수 있다. 지역발전 프로젝트를 통해 성과를 입증한 단체장은 차기 선거에서 무난히 선출될 것이다. 

지역별 차별화가 어려운 현실에서 자펀드 프로젝트가 특정 사업에 집중될 우려가 있다. 정부가 복합관광 리조트나 대규모 리조트를 사업대상으로 예시한 만큼 지역별로 리조트 신설 붐이 일어날 수 있다. 태백시가 지방공기업을 통해 설립했다가 만성적자로 부영그룹에 넘긴 오투리조트의 실패가 반복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영남알프스'를 운행하는 케이블카. (사진제공=윤석문 사진작가)
'영남알프스'를 운행하는 케이블카. (사진제공=윤석문 사진작가)

관광객의 인기가 높고 안정적인 수익성도 확보되는 케이블카 사업이 지역활성화 투자펀드의 주된 사업 유형으로 앞다퉈 신청될 우려도 높다. 케이블카를 숙원사업으로 검토하는 지자체는 적지 않다. 정부는 케이블카 신청 난립 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익성을 강조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민간사업자가 '갑'의 위치에서 이익을 챙기면서 위험은 회피할 수 없도록 감독이 뒤따라야 한다.

수익성과 공익성을 겸비하지 못한 자펀드에  모펀드가 출자할 이유는 없다. 이런 차원에서 지역활성화 투자 펀드가 특정 지역에서만 출시되는 사태도 감수해야 한다. 지역안배 논리를 지역활성화 투자 펀드에서 고려하는 것은 모순이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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