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9.07 15:07
월성원자력본부 전경. 왼쪽 첫 번째가 4호기 원전. (사진제공=월성본부)
월성원자력본부 전경. 왼쪽 첫 번째가 4호기 원전. (사진제공=월성본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는 월성을 제외하고 모두 가압경수로(加壓輕水爐)이다. 가압수형 원자로에 핵연료를 잔뜩 넣고 안전장치를 제거하면 온도가 올라가다가 자동으로 식는다. 이런 안전성은 쓰리마일 원전사고에서 입증된 바 있다. 흔히 비전문가들이 원전 위험성 예시로 드는 후쿠시마, 체르노빌 모두 비등경수로(沸騰輕水爐)이다. 따라서 국내 원전이 후쿠시마, 체르노빌처럼 될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적절하지도, 과학적이지도, 보편상식에도 타당하지 않다. 게다가 후쿠시마 격납용기를 감싸는 콘크리트 외벽 두께는 고작 16㎝에 불과했지만 한국은 1m 이상이다. 북한에서 미사일이 날아와 직격해도 어지간히 센 탄두를 탑재하고 있지 않은 한 격납용기 내의 핵물질을 유출시킬 수 없다. 한국형 원전에 대한 이해 부족이 원전 안전 공포를 낳았다.”

한재욱 전국환경단체협의회 대표는 6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기후위기 대응과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한 원전 생태계 복원 및 에너지 위기 극복 전략’ 토론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한 대표는 이날 ‘탈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전에 대한 국내외 인식의 변화’ 발제를 통해 “탈원전론자들이 원전마피아라고 공격했지만 원전비리는 안 터지고 오히려 태양광 대형비리가 속출했다”며 “국제원자력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은 연료연소 과정에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우라늄의 채굴과 농축, 발전소 운영 및 해체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고려해도 다른 화석연료의 1~2%에 불과하고 재생에너지보다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형두(왼쪽부터) 국민의힘 의원,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 최영두 원자력노동조합연대 의장, 송인석 국민의힘 의원,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 최영희 국민의힘 의원 등이 6일 ‘기후위기 대응과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한 원전 생태계 복원 및 에너지 위기 극복 전략’ 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최형두(왼쪽부터) 국민의힘 의원,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 최영두 원자력노동조합연대 의장, 송인석 국민의힘 의원,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 최영희 국민의힘 의원 등이 6일 ‘기후위기 대응과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한 원전 생태계 복원 및 에너지 위기 극복 전략’ 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감산 결정 연장 등으로 지난 5일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작년 11월 이후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90달러 선을 돌파했다. 6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87.54달러로 전날보다 85센트 올랐다. 이로 인해 벌써부터 '제2차 인플레이션 쇼크'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북반구 주요 국가마다 난방을 위한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는 겨울철을 2~3개월 앞두고 원유값 강세가 지속되면 전기요금 인상 압박은 더 커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등에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를 집중하는데다 모든 분야에서의 전기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향후 전력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에너지수입액은 1908억달러로 2021년보다 549억달러 늘어났다. 작년 무역수지 적자(478억달러)보다 많았다.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고 에너지안보를 확보하려면 원전 활용률을 높여야할 것이다.

한빛원전 4호기 (사진=산업통상자원부)
한빛원전 4호기 (사진=산업통상자원부)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 1개월 만에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이미 계획된 6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고 운전 중인 원전은 수명연장없이 영구폐쇄키로 결정하면서 원전생태계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산업부는 2021년 2월 천지원전 예정구역지정을 공식 철회했다. 그 이후 코로나19가 터지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전기요금이 급등했다. 한전과 한수원은 적자기업으로 돌변했고 원전 공급망은 무너졌으며 원전 수출 경쟁력은 망가졌다. 서울대 원자력센터가 추산한 탈원전비용은 47조원에 달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전 세계 원전 발전용량이 2022년 413GW에서 2050년에는 812GW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미국은 원전 가동에 적극적이다. 조지아전력은 지난 7월 31일 조지아주 웨인즙로 인근 보글 원자력 발전소 3호기의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1996년 와츠바 원전 1호기가 가동된 이후 7년 만이다. 1979년 쓰리마일 원전 사고이후 신규 원전 건설이 정체된 상태였다.

미국 정부는 원전을 무탄소에너지이자 '2050 탄소중립'을 실천할 주요 수단으로 판단, 2020년부터 2030년까지 차세대 원전 SMR(Small Module Reactor) 개발에 46억달러의 재정을 지원 중이다. 미국 민주당도 2020년 정강에 서 원자력을 무탄소 청정에너지에 포함시키면서 48년 만에 원자력 지지로 선회한 바 있다.

소형모듈원전 단면도 (사진제공=두산중공업)
소형모듈원전 단면도 (사진제공=두산중공업)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진흥전략본부장은 이날 ‘소형모듈원전 국내 건설 필요성’ 발제에서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원자력 발전은 필수”라며 “기존 원전을 계속 운전하고 신규 대형원전을 건설하면서 SMR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SMR은 보조 전원 역할로 전력시스템의 안정화에 기여하고 분산에너지원으로서 활용이 필요하다”며 “해외 기술 실증과 함께 국내 기술 실증을 병행해 수출경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MR 내부 용융염원자로는 만에 하나 냉각장치 고장으로 원자로 노심이 녹아버리는 '멜트다운'이 발생할 경우 핵연료가 즉시 고체로 굳어지면서 방사능 유출 등 사고 가능성을 제로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더구나 핵연료 사용주기는 30년에 달한다. 대형 선박에 탑재하면 퇴역할 때까지 교체 없이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소는 SMR이 2030년 본격적인 상용화 단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시점에서 SMR을 국내에 건설, 실증연구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상용화에 성공하면 이산화탄소를 대규모로 배출하는 석탄과 LNG 발전을 대체할 수 있다. 간헐성과 계통망 고립, 편중된 설비 배치로 전력망의 불안전성을 야기한다는 약점을 지닌 재생에너지와 조화를 이루는 것도 가능하다. 최종 수출로 이어지면 해외 차세대 원전시장을 선점하면서 국익 신장에 기여하게 된다. 

SMR 국가산단 조감도. (사진제공=경주시)
SMR 국가산단 조감도. (사진제공=경주시)

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은 이날 ‘11차 전기본 신규원전 건설 필요성과 고려사항’ 발제를 통해 “새정부 출범후 최초의 에너지계획인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력 부문 외의 전기화 수요 반영 미흡으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달성이 곤란하다”며 “시스템 적합성 확보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백업설비를 구성하는데 29조원에서 45조원의 투자가 필요하”고 지적했다. 그는 “11차 전기본 수립에 조기 착수하면서 신한울 3,4호기 이외에 2034년부터 2038년까지 2기 내지 4기의 신규 원전 건설이 필요하다는 점을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6일 토론회를 주최한 송언석 의원이 개회사를 통해 스웨덴이 신규 원전 건설을 허용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6일 토론회를 주최한 송언석 의원이 개회사를 통해 스웨덴이 신규 원전 건설을 허용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날 행사를 주최한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개회사에서 “전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사용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스웨덴은 ‘재생에너지 100% 발전시스템’을 ‘비화석 연료 100% 발전시스템’으로 변경하면서 원전 확대 계획을 밝혔다”며 “더구나 신규 부지에 원전 건설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법안 개정을 통해 신규 원전 건설을 허용할 수 있도록 에너지정책까지 바꾸었다"고 소개했다. 

에너지 위기 국면을 맞아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기후위기에도 적극 대응하려면 원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원전은 안전성, 경제성, 현실성 측면에서 친환경에너지로 분류된다. 탄소중립을 도모하는 핵심 해법으로 재부각되는 실정이다.

다만 전통적인 방식의 원전 1기를 새로 건설하는데 12년이 걸린다. 지자체 공모 등을 통해 신규부지를 확보해야 한다. 부지가 결정돼도 사업준비 49개월, 건설준비 22개월, 시공 및 시운전에 74개월이 소요된다. 이를 감안할 때 원전 업계에선 2036년 이전에 후속 신규 원전 준공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정 단축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경주SMR 국가산업단지 조감도. (사진제공=경북도)
경주SMR 국가산업단지 조감도. (사진제공=경북도)

한국의 원자력 산업과 수출이 최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생태계 복원 작업 속도부터 높여야 한다. 전문인력의 재양성, 업계 위기 극복과 투자 재개를 위한 금융지원, 연구개발비 증액  등이 요구된다. 

빠른 시일 내 신규 원전 건설을 통해 일감이 안정적으로, 지속적으로 공급된다는 믿음이 업계에 확산되는 것이 절실하다. 보다 효율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한다는 조건 속에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 조치도 특정 시기에 얽매이지 말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차세대 혁신형 SMR 개발을 위해 '한국형 SMR 표준설계인가' 획득이란 관문부터 통과해야 한다. 정치권도 원전 진흥에 힘을 모을 때다. 국회는 계류 중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을 서둘러 통과시켜 높은 방사선을 갖고 있는 사용후핵연료가 신규 저장시설에서 안전하게 보관되도록 협력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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