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9.14 15:54
14일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국가 빚 우려시대, 가계 빚은 괜찮은가?’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강훈식 의원실)
14일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국가 빚 우려시대, 가계 빚은 괜찮은가?’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강훈식 의원실)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지난 8월말 현재 모든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1075조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은행권과 제2금융권을 포함한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다섯 달째 늘어나고 있다. 특히 8월 증가폭은 6조9000억원으로 7월보다 커지면서 가계부채의 원리금 상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부풀어진 이유는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자영업자 생계 안정 차원에서 대거 공급된 정책금융이 사실상 상환 없이 유예되어온데다 2019년 이후 급등했다가 일부 하락한 주택을 사려는 대출이 지난 3월부터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전세자금대출 잔액이  2019년말 98조원에서 2022년말에는 180조원으로 급증한 여파도 컸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14일  ‘가계부채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강훈식 의원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14일  ‘가계부채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강훈식 의원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14일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국가 빚 우려시대, 가계 빚은 괜찮은가?’ 세미나를 통해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2022년 3분기 기준 오스트레일리아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조사 대상인 주요 17개국 중에서 오스트레일리아가 14.7%로 가장 높고 한국은 13.6%로 집계됐다. 소득에 비해 대출원금과 이자를 갚는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그는 “차주 중 30% 정도는 DSR이 5%포인트 이상 증가했다”고 우려했다.

지난 1월 13일부터 연 3.5%에서 동결된 기준금리는 당분간 내리기는커녕 추가 인상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로 인해 한국의 DSR은 더 높아질 수 있다.

한국은행은 14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긴축 기조를 상당 기간 지속하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물가 상승률이 연간 목표치를 상회하는데다 국내외 정책여건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긴축정책을 계속 펼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어 연내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이 교수는 이날 ‘가계부채의 지속가능성: 코로나19이후 차주 단위 자료 분석을 중심으로’ 발제를 통해 “신용점수가 700점 이하이고 소득 하위 30%에 속하거나 3개 이상 금융기관에 채무를 가진 다중채무자를 말하는 취약한 차주의 연체율은 종전 20%대에서 지난 2분기에 23.6%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취약한 차주는 저축은행에 몰려 있고 대출상품별로는 신용대출과 기타대출에 집중된 상황이다. 

물론 가계대출 증가를 금융위기의 전조로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다만 DSR이 높아지는 등 대출의 질이 악화되고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이 누적되면 금융위기를 촉발시킬 수 있다. 이를 감안할 때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새로 주택담보대출에 나선 차주의 50% 이상이 신용대출까지 보유했다는 점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 교수는 “소위 영끌족은 LTV(주택담보대출비율) 규제 속에서 주택을 사기 위해 신용대출까지 동원했다”며 “20대 신용대출비중 30%이상 차주 중 DSR이 10%p 이상 증가한 비중이 14.3%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강훈식(왼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강훈식 의원실) 
강훈식(왼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강훈식 의원실) 

세미나를 공동주최한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부채에 대한 우려만큼, 가계부채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진단하고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가계부채 문제를 금융권의 시스템적, 거시적으로 평가하는 관점을 넘어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한 미시적 정책 대응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30대 이하의 주택과 아파트 매매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급등 시기에서 구입하지 못했다가 집값이 상당부분 떨어졌다고 판단, 반등을 노리고 ‘저점매수’에 대거 나선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높다. 온갖 대출을 일으켜 산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자칫 큰 폭으로 떨어지거나 대출금리가 계속 상승한다면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늘 수밖에 없다. '잠재 부실 차주'가 '부실 차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때 제대로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상담과 서비스 제공이 강화될 필요성이 적지 않다.

이날 토론에 나선 문윤상 KDI 연구위원은 “재정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를 가게에 부담시킴으로써 부채가 증가했다”며 “취약한 차주는 일자리와 소득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밝혔다.

(자료=새출발기금 홈페이지 캡처)
(자료=새출발기금 홈페이지 캡처)

코로나19 사태로 기존 대출을 갚기 힘들어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재기를 돕기 위해 대출원금을 감면해주거나 금리 인하, 장기 분할 상환 등을 지원 중인 새출발기금은 오는 10월 1차 시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당초 3년간 시행한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이미 모든 방역규제가 사라진 마당에 대출만기를 늦추거나 상환을 유예할 대의명분은 사라졌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언급을 꺼리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내년 4월 총선을 의식, 연장과 유사한 조치를 시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채무조정 기금 증액부터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문제는 이처럼 연장을 위한 정책적 수단이 강구되면 이로 인한 부담도 추가된다는 점이다. 결국 모든 국민이 나눠질 수밖에 없다. 

당장 한국자산관리공사의 부실 확대가 눈앞에 닥쳤다. 캠코는 새출발기금을 통해 부실채권을 대거 사들인 결과 1999년 성업공사에서 회사명을 바꾼 이후 처음으로 올해 8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정부에 보고했다. 대손충당금 규모는 올해 403억원에서 2027년에는 4653억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괸 부작용이 본격화된 셈이다. 캠코는 향후 정부 출자를 받아 자산건전성 회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022년 10월 4일 서울 종로구 우리은행 종로4가 금융센터 소상공인·자영업자 새출발기금 전담창구에서 만기연장·상환유예 지원을 위해 은행을 찾은 한 소상공인을 상담하고 있다. (사진=이한익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022년 10월 4일 서울 종로구 우리은행 종로4가 금융센터 소상공인·자영업자 새출발기금 전담창구에서 만기연장·상환유예 지원을 위해 은행을 찾은 한 소상공인을 상담하고 있다. (사진=이한익 기자)

만기를 연장한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중에서 담보를 갖고 있고 갱생의지도 확인되는 차주를 대상으로 해당 담보의 담보인정비율을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조치를 금융채무조정 연착륙 방안의 하나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사업자 대출은 코로나사태 이전만 해도 금융업권에 따라 LTV를 80%까지 적용했지만 기준금리 인상과 레고랜드 사태로 LTV를 낮추거나 추가 대출을 중단한 상태다.

채무상환능력이 있고 정상적 영업으로 사업을 영위하려는 차주에게 LTV를 시가 대비 90%~100% 수준으로 올려준다면 공적자금 출연을 최소화하면서 신용불랑자 증가도 막을 수 있다. 채무조정을 신청하지 않고 정상적인 신용상태에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출구를 마련해주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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